2007년이었다. 독일 푸마 본사가 이랜드의 뒤통수를 쳤다. 15년 동안 이랜드한테 맡겨왔던 푸마의 한국 판권을 회수해서 2008년부턴 푸마 코리아를 통해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랜드는 푸마를 장성시킨 장본인이었다. 이랜드는 반격을 개시했다. 이랜드는 푸마 대신 뉴발란스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의 매출을 수직 상승시켰다. 2013년 한국 매출은 4000억원을 넘어섰다. 반면에 푸마는 뒷걸음질을 쳤다.
이랜드는 이번엔 푸마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이랜드는 2013년 미국 스포츠웨어 케이스위스를 인수했다. 자기 브랜드를 손에 넣었다. 뉴발란스는 이랜드의 케이스위스 인수를 이해 상충을 이유로 반대했다. 소용없었다. 이랜드가 아쉬운 건 뉴발란스였다. 이랜드는 2013년 전세계 최초로 뉴발란스 키즈를 런칭했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의 시장을 아동화 영역까지 확대시켰다. 대리점주가 본사 영업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었다.
이랜드는 흔히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한 기업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실이다. 최근 수년 동안 M&A 시장에선 이랜드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분야도 가리질 않았다. 패션 브랜드부터 호텔과 골프장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심지어 LA다저스 인수전에도 명함을 내밀었을 정도였다. 이랜드는 패션 일변도의 사업구조를 의, 식, 주, 휴, 미, 락까지 모두 6개 사업군으로 확대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당연히 이랜드의 M&A는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단 이랜드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현금흐름과 신용등급은 언제나 걱정거리다. 사실 이랜드는 신용 시장에선 200%를 넘나드는 높은 부채비율과 30%가 넘는 차입금 의존도 때문에 이미 감시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이랜드는 M&A를 멈춘 적이 없다. 아직은 무너진 적도 없다.
비결은 이랜드의 마술 같은 현금창출능력이다. 푸마와 뉴발란스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드는 이랜드 특유의 턴어라운드 전략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의 원동력이다. 이랜드 같은 소매유통기업에서 현금창출능력이란 결국 장사수완이다.
보통 패션브랜드는 탑다운식으로 성장한다. 백화점에서 거리 상점으로 다시 시장으로 브랜드를 유통시킨다. 이건 패션 유통의 상식이다. 유행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랜드는 바텀업식 유행을 만들 줄 안다. 거리시장에서 백화점으로 옮겨간다. 이랜드는 대중의 눈높이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마케팅을 벌인다.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수요에 봉사한다.
게다가 이랜드의 유통망은 지방 중소도시의 중심가나 시장으로 거미줄처럼 분포돼 있다. 생활 밀착형 브랜드란 얘기다. 뉴발란스만 해도 일단 10대나 20대의 눈높이에 맞춘 중저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보통 10대와 20대는 유행의 최종소비자다. 사실 이건 1980년 이랜드가 잉글런드라는 이름의 작은 옷가게를 이대 앞에 냈을 때부터 이어져온 전략이다. 이랜드는 항상 거리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경청은 장사의 기본이다.
이랜드는 중국 시장에선 이롄이라고 불린다. 이랜드의 2013년 매출은 10조원을 돌파했다. 중국 매출이 이랜드 성장을 견인했다. 이랜드가 중국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거리에서 답을 찾는 바텀업 방식에 있다. 이롄은 매주 중국 도시 곳곳에서 거리 패션 사진을 찍는다. 옷소매의 길이부터 바지의 색깔까지 꼼꼼하게 분석한다. 거기에 맞춘 옷을 출시한다. 여느 패션 브랜드들과는 정반대다. 패션의 수요는 첨단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사실 다른 패션 브랜드들도 알고는 있다. 단지 그런 옷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패션 산업은 생산자의 욕망이 투영되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다.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든단 얘기다. 물론 패션은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은 옷을 소비자가 입고 싶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는 시장이다. 다만 그건 이랜드의 방식이 아닐 뿐이다.
이랜드식 역혁신이다. 한국에서 이랜드는 1990년대에 유행했던 브랜드였다. 이제 한국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브랜드로 이동했다. 이랜드는 중국의 2000년대와 한국의 1990년대를 똑같이 놓고 접근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1990년대 한국 소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랜드에 열광했다. 그들의 눈높이엔 H&M이나 자라보단 이랜드가 맞았다.
이랜드가 계속해서 반보 뒤쳐진 듯한 해외 브랜드를 인수하는 이유다. 이미 한국에선 소비가 끝낸 브랜드지만 중국이나 신흥 시장에선 이제 수요가 생겨나는 브랜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혁신은 첨단 장치가 달린 선진국형 고가 제품보단 신흥국에선 거꾸로 기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합리적인 제품이 더 잘 팔리는 현상에서 온 용어다.
이제까지 패션 브랜드들 중에선 이런 리버스 이노베이션을 경영에 접목한 사례가 없었다. 이랜드는 한국 시장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있다는 걸 간파했다. 선진국의 유행을 이해하면서도 신흥국의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단 얘기다.
말은 쉽다. 사실 유행과 허세를 쫓기 마련인 패션 회사에서 역혁신을 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반 제조업체에서도 제품 개발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역혁신을 거부하기 십상이다. 한국의 경쟁 패션 회사들이 자존심을 세우며 혁신 경로만 추격할 때 이랜드는 자존심을 버리고 역추격을 감행했다. 지금까진, 이랜드가 이기고 있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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