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유통 너나없이 ‘단가 후려치기’여전

 “매년 반강제적인 납품단가 인하가 이뤄집니다. 이를 거부하면 주문 축소 등 보이지 않는 보복을 받게 됩니다.”

“거래기업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이나 대만업체가 단가를 비교합니다.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우리 제품이 비쌀 수 밖에 없는데, 중국 제품과 가격을 비교해 일방적으로 단가인하를 통보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경제민주화의 진전과 동반성장 분위기 확산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의 횡포는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특히 사회적 이슈로도 떠올랐던 ‘납품단가 제값받기’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제조 원가는 2012년과 비교해 2013년 5.7%, 2014년 7.2% 올랐지만 대기업 등에 납품하는 단가는 2013년 0.8%, 2014년 0.4% 오르는 데 그쳤다
또 대기업→중견기업→중기업 등으로 3단계 이상 하청을 받는 영세 업체에서는 납품 단가가 오히려 2012년과 비교해 2013년 0.1%, 2014년 0.4% 하락했다.

경기도 소재 한 대기업의 2차 밴더사 대표는 “동일한 제품에 대해 첫번째 납품가격을 100%로 가정하면, 자발적이라는 명분하에 매년 반강제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도 최저임금이 7.2% 올랐는데 오히려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채산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대기업의 횡포는 납품단가 인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익명의 한 중소기업인은 “시중에서 자재를 사다 쓰고 싶지만 납품기업에서 계열사 제품을 쓰라고 강요한다”면서 “시중 자재보다 비싸고 품질은 낮다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볼멘 소리를 했다. 같은 업종의 다른 중소기업인도 “계열사 자재를 쓰다가 제품에 불량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협력업체의 책임으로 치부해 물품대금에서 공제한다”고 말했다.
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계열사가 납품과정에 끼어들어 일종의 통행세를 받는 관행 역시 여전하다고 중소기업인들은 지적한다.

대기업의 횡포는 제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백화점, 대형유통업체 등 유통업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공정위가 올해부터 대형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게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납품단가의 10% 정도를 공제하던 관행들을 철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대형유통업체들은 이를 우회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식품제조업체 대표는 “판매장려금이 폐지되자 유통사들이 1000원이던 납품단가를 900원에 책정하고, 거기에다 신상품 입점비, 진열장려금 등을 합당한 공제로 인정하는 판에 새로운 공제항목들 마저 생겨버렸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 백화점 업계의 횡포도 심각하다. 관련 중소기업인들은 “과도한 입점수수료 문제는 공정위가 나서도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다”, “입점업체로부터 직원을 파견받아 자기 직원처럼 부려먹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기업이 여전히 중소기업을 상대로 납품단가 후려치기, 특허나 인력 빼가기, 보복성 거래 취소 등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다”며 이러한 불공정 거래가 지속되고 있는 원인을 ‘힘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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