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기호지세(騎虎之勢)란 말이 있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중간에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즘 북한에 부는 시장 경제 바람이 기호지세에 비유된다. 북한 기업과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6·28방침’으로 불리는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북한은 이를 ‘우리식 시장경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북한의 주민생활 경제는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 물가는 치솟아 쌀 1㎏를 구매하려면 한달 치 월급을 줘야 한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 돈의 가치는 추락해 환율은 1달러에 북한 돈으로 8000원에 달한다. 북한 근로자의 한달 급여(4000~5000원)가 1달러도 안 되는 꼴이다.

북한 주민 80%가 시장 활동 중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북한 지도부와 당국을 믿지 않고 스스로 생존 방도를 찾고 있다. 그것이 시장경제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밑으로부터의 시장 경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 규모가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농민시장과 암시장 등을 중심으로 한 북한 경제활동의 상당수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주민의 80% 이상이 시장 활동을 통해 일정한 수입을 얻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UN의 2008년 북한 인구조사 통계를 토대로 북한의 시장화 진전 정도를 계산한 결과 시장화 비율은 83%로 추산했다. 통일평화연구원의 탈북자 조사에 따르면 시장을 비롯한 비공식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이 70~80%에 달한다고 한다.

메뚜기 시장(단속을 피해 돌아다니는 암시장) 등 새로운 형태의 시장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달리기 장’, ‘똑똑이 장’이란 용어도 등장했다. ‘달리기 장’은 단속 요원을 피해 비공식 시장 활동하다가 망을 보는 사람이 단속원이 떴다 하면 모두 시장 보자기를 싸고 뛰어서 다른 곳에서 시장을 펼치는 것을 이른다. ‘똑똑이 장’은 일종의 방문 판매이다. 집집마다 방문해 문을 살짝 똑똑 두드려 물건을 몰래 거래 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소와 협동단체도 시장 거래에 참여하고 있으며, 거래되는 물품은 식료품에서 수입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이 망라돼 있을 정도다. 텃밭이나 개인 뙈기밭 등에서 생산된 사적 경작물과 각종 가내 부업의 생산물 그리고 공장과 기업소, 농장 등에서 절취한 제품이나 원료 등의 각종 물자, 지방별 특산물 등 다양하다. 국영 및 외화상점에서 권력층이 헐값으로 구입해 유통시킨 물건과 공식, 비공식적으로 중국 등 외부로부터 유입된 물품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입물자 교류도 확산
생산재 분야에서도 시장경제가 급속도록 확대되고 있다. 국내산 원료와 자재를 물물교환거나 상호 판매하기도 하며, 공장 및 기업소간 과부족되는 일부 원자재와 부속품들을 유무상통하기도 한다. 평양과 원산, 흥남, 청진, 남포 등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수입물자 교류시장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산 원료와 자재, 설비를 수입해 국내기업에 공급한다.
기본적으로 각급 공장·기업소 가동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기계제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북한의 공장·기업소 관계자들은 시장에서 물품을 직접 구입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문을 하거나 수입된 물자를 공장간 교류하기도 한다.

북한경제는 이미 ‘보이지 않은 시장경제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므로 당국의 통제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시장기능의 확대로 개인과 기업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성과에 따른 분배가 도입되고 개별 경제주체의 책임이 강화되고 있다. 생산 계획 수립부터 판매 및 가격 결정, 이익 배분 등에서 기업에 권한을 일정 부분 일임했다. 근로자의 급여도 기술을 가진 직원들은 하루에 일반 근로자의 한 달치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급여 차등화도 시행하고 있다.
 

올바른 시장경제 확산토록 해야
통일로 가는 준비는 북한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확산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시장가치 공유를 통해 북한이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도록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암암리에 북한의 사적경제 세력이 확산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밑으로부터의 생계를 위한 시장경제 바람이 불고, 이것이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 사례에서 보듯이 남북경제협력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북한에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를 학습시켜 나갈 수 있다. 통일 준비단계에서나 통일 이후에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북한에 들어가야만 북한에서도 시장경제의 꽃을 피울 것이다. 60~70년대 한국경제 성장 과정에서 기여한 우리 중소기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북한에 널리 전수한다면 북한에서도‘대동강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글 :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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