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뉴스=이권진 기자] #1. “대기업의 2차 밴더로 전자부품을 가공해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제품에 대해 첫 번째 납품가격을 100%로 가정했을 경우, 자발적이라는 명분하에 매년 반강제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시키고, 납품단가 인하를 불수용할 경우, 주문 축소 등 보이지 않는 보복을 당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하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7.2%인데 납품단가는 오히려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는데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이 현행 22% 수준에서 25%로 인상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경기 소재 전자부품 제조업체, 매출 76억, 상시종업원 45명>

# 2. “제품을 납품하는 경우 실제 거래 당사자끼리 계산서를 주고 받아야 하지만 일부 대기업에서는 그들이 지정한 계열사(주로 MRO) 등을 우회하도록 하면서 계열사 이윤만큼 납품 단가를 낮추도록 강요하고 관련 계열회사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서울 소재 전기·전자부품 제조업, 매출 150억, 상시종업원 75명>

비정상적인 대기업 관행에 시달리는 중소제조업체들이 직접 토로한 현장의 애로사항이다. 올해 들어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창조경제와 내수 활성화를 비롯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3대 추진전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중소제조업체들이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가격 인하, 대·중소기업 불공정 거래 등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경영환경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경제에서 대부분의 중소제조업들은 사실상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경영환경은 중소제조업체의 사업체수, 종사자수, 생산액, 부가가치 등을 나타내는 위상지표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연구원(원장 김세종)이 발표한 ‘중소제조업 주요 위상지표 변화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2007년 이후 5년간·OECD 국가패널 기준)를 살펴보면 중소제조업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중기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중소제조업 주요 위상지표가 약화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대·중소기업간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 중소제조업의 주요 지표들이 대기업에 비해 약화되면서 격차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업체 및 종사자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생산액 및 부가가치 역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기업과의 격차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안팎으로 쪼그라든 중소제조업
무엇보다 중소제조업 사업체 및 종사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만하게 증가했지만 전체 사업체 대비 비중은 모두 감소세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중소제조업 사업체는 2007년 대비 3000개 감소했으며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회복세를 보이며 전체 비중이 줄어들었다.
중소제조업 종사자 역시 2008년에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서서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업체 수 추이와 비슷하게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회복세를 기록했다. 이러한 중소제조업의 외형적 변화는 생산액과 부가가치 부문에서도 악영향을 미쳤다.

중소제조업 생산액 및 부가가치는 전체적으로 완만히 증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기업과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2012년 중소제조업 생산액 및 부가가치는 2007년 대비 각각 235조원, 64조원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사업체 대비 비중은 3.0%포인트, 2.9%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대·중소기업간 생산액 및 부가가치의 차이가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형적인 규모와 내부 경쟁력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중소제조업은 인력난 심화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중소제조업의 임금격차 확대는 2002~2007년 기간 중 대기업의 59.4%에 달하던 중소기업 평균 임금 수준이 2008~2013년에는 54.5%로 감소하면서, 전문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는 생산성 둔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중소제조업의 연평균 임금격차는 2008년 약 179만원에서 2013년 240만원으로 확대됐다.
 

경기악화가 내적동력 상실케 해
중기연구원은 결과적으로 “최근 중소기업의 위상 변화는 기본적으로 경기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소제조업 혁신능력 부진 및 대·중소 임금격차 확대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우선 경기요인의 경우, 2000~2007년 평균 4.9%에 달하던 국내 GDP 평균 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2008~2013년 평균 3.2%로 둔화됐다. 경기 민감도가 대기업 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중소제조업체가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경인 셈이다. 

아울러 경기악화는 중소제조업 혁신능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R&D 지출을 줄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는 중소제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등을 감소시키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온 것. 실제 한국의 기업부문 R&D 지출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대부분이 대기업이고, 종사자 250명 미만의 중소기업 R&D 지출은 2012년 기준 OECD 평균인 33%에도 미치지 못하는 24%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의 위상 변화는 구조전환 과정에서의 장기적·추세적 요인이 아닌 경기적 및 중소기업 내적 역량 등의 요인에 주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적 대안 절실
중기연구원은 이번 보고서에서 “정부는 대·중소 불균형 성장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중소기업간 불균형 성장을 완화하기 위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 및 지나친 기술, 인력 유출 등을 개선해 동반성장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제조원가와 납품단가의 격차는 중소제조업의 손톱 밑 가시 가운데 대표적 사례다. 2011~2013년 사이 수급 중소제조업의 제조원가는 8.3%포인트 상승한 반면, 납품단가는 0.6%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단가 합리화 및 불평등계약, 납품금액 확정방법상 불이익 등의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중기연구원  관계자는 “사내 부설연구소를 보유한 중소기업의 42%가 핵심기술 및 인력의 대기업 유출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바와 같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핵심인력을 빼앗아 유사한 경쟁업체를 설립하는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에 대해 기술임치제도 확대 적용 등을 통한 제도적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중기연구원은 경기 하강기에 경제여건 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해 대내외 경제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중소업체들이 자생력 및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현재 지연되고 있는 내수 경제 활성화 법안들의 신속한 도입을 통해 소비 진작 및 경기회복을 견인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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