汎삼성가와 ‘삐걱’벼랑 끝에 선 ‘마이웨이’
“이재현 회장을 선처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달 28일이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항소심을 심리하고 있던 서울고법 형사10부에 탄원서가 제출됐다.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에 이재현 회장의 둘째 삼촌인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부인 이영자 씨까지 참여한 범삼성가의 탄원서였다. 어쩌면 이재현 회장의 경영 인생에서 삼성의 도움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이재현 회장에게 삼성은 늘 위협이었고 장벽이었으며 극복할 대상이었다. 이재현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이지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이병철 창업주는 장손 이재현 회장을 무척이나 아꼈다. 할머니 박두을 여사도 작고할 때까지 장손 이재현 회장과 함께 살았다. 집안에선 당당한 장손이지만 집밖에선 비운의 황손이라는 모순적 상황이 이재현 회장의 탈삼성 행보를 가속화시켰다.

이재현 회장은 리틀 호암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할아버지를 빼닮았다. CJ그룹의 사훈은 사업보국과 인재제일과 합리추구다.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삼성 창업 이념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반면에 삼성그룹에선 이병철 창업주의 흔적이 지워졌다. 삼성그룹은 호암의 사업을 계승 발전시킨 이건희 회장의 기업이다. 이재현 회장은 CJ그룹을 호암의 정신을 계승한 적통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 했단 의미다.

반면에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은 가문의 적통인 이재현 회장과 그룹의 본산인 제일제당의 분리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1994년 10월 이건희 회장은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임명한다. 이학수 신임 사장은 “그룹 분리라는 말은 쓰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이재현 회장을 견제했다. 당시 이재현 회장의 나이는 서른 네살이었다. 경영 전면에 나서기엔 젊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조카 이재현 회장은 삼촌 이건희 회장에게정면으로 맞선다. 결국 이학수 차장은 한 달만에 삼성으로 원대 복귀한다.

이때부터 이재현 회장의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삼성그룹의 어마어마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창희 회장의 새한그룹도 출발 선상에선 이재현 회장보다 유리했다. 끝내 분해해체됐다. 제일제당은 1996년 공식적으로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그룹을 빠르게 다각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재현 회장이 처음부터 취약한 지배 구조에서 출발했단 게 문제였다. 이 회장은 제일제당 지분 18%를 쥐고, 안으로는 그룹을 지배하고 밖으론 신규 사업에 진출하고 옆으론 삼성의 견제를 극복하기엔 버거웠다. 이런 삼중고가 이재현 회장을 분열시킨 원인이 됐다. 사실 이 회장은 밖으론 유능한 경영인이었다. 영화와 방송 시장에 진출했고, 홈쇼핑 시장에 뛰어들었고, 제일제당을 설탕 제조사에서 고부가가치 라이신 제조업체로 탈바꿈시켰다.

안에선 소유권 강화를 위해선 모든 걸 불사하는 오너였다.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해외 유령 회사가 인수하게 하는 탈법적 방식으로 자기 지분을 강박적으로 늘렸다. 옆에선 삼성이라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조카였다. 이맹희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의 유산 상속전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재현이가 삼성으로부터 독립할 때 미행하고 CCTV로 감시하고 장손의 할아버지 성묘도 방해하고, 그동안 건희가 조카에게 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나열하는 것이 저 자신도 부끄럽습니다.”

삼성가의 적통다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재현 회장의 강박은 양날의 검이었다. 속도를 내기 위해 지름길을 선택했던 게 화근이 됐다. 2008년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을 관리하던 CJ간부가 살인 청부 혐의로 기소됐다. CJ비자금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게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1600억원 대의 횡령과 배임과 탈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구속됐다.

이재현 회장은 2013년 8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다리 근육이 마비되는 CMT 유전병도 앓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8월 14일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CJ를 세계적인 그룹으로 완성시키는 게 길지 않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현 회장은 올해 54세다. 평생을 삼성을 능가해서 이병철 창업주의 당당한 적자로서 인정받는데 바쳤다. 1996년 제일제당그룹의 자산총액은 2조원에 불과했다. 2014년 현재 CJ그룹의 자산총액은 24조원이다. 삼성을 이기고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카카오에 합병된 포털사이트 다음을 한때나마 인수하려고도 했다.
이재현 회장은 그저 재벌 3세가 아니라 CJ그룹의 창업주로 불린다. 이재현 회장은 할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처럼 진정한 창업에 성공했다. 너무 서둘렀다.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할아버지도 명암을 함께 지닌 기업인이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그늘까지 닮고 말았다.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 선고는 이달 4일 열린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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