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샤넬을 있게 한 어제의 ‘그곳’
패셔니스타를 꿈꾸는 이들의 안목을 키워줄 전시들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문화 샤넬: 장소의 정신’전은 패션 관련 전시가 어떤 방식으로 기획·전시·홍보되고, 관람객 동선을 유도해야 하는지를 과시하는 빼어난 전시다.

전시의 주인공은 패션 디자이너의 전설 가브리엘 샤넬. 샤넬 하우스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2007년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2011년 상하이 현대 미술관과 베이징 국립예술관, 지난해 광저우 오페라하우스와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 이은 6번째 대규모 전시라니, 패션에 관심 없는 이라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주요 일간지 한면을 산 전시 광고에는 여성 얼굴 측면을 스케치한 단순한 선과 전시 제목만을 명기했다. 무료 전시지만 예약자를 우선하며, 전시 작품이 모두 수록된 두툼한 책자도 무료로 나눠준다. 천장 높은 너른 공간은 어둠에 휩싸여 있고, 부분 조명만이 투명 관 속에 놓인 500여점의 전시물을 비춘다.

검은 양복 차림의 진행요원들이 길 잃은 관람객을 위해 작은 플래시를 비춰 준다. 앱을 실행해 이어폰으로 설명을 들으며 전시물을 보고 나면, 세계 유명 감독들이 만든 샤넬 광고를 연대순으로 감상할 수 있다.
샤넬과 패션 관련 화보집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방조차 컴컴하지만 소파와 독서 등이 있어 패션계 인사라도 된 양 비스듬히 앉아 벽돌 두께와 무게의 책장을 넘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문화 샤넬: 장소의 정신’전은 코코 샤넬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대상들을 통해 영감을 얻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전시다. 따라서 그녀가 디자인한 의상을 맘껏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샤넬과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의상, 보석, 시계, 향수 등의 창작품을 볼 수는 있지만 사진, 책, 오브제, 서신, 원고, 엽서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소뮈르, 파리, 도빌, 베니스, 할리우드, 뉴욕 등으로 이어지는 샤넬의 여정을 큐레이터 장-루이 프로망은 10개 장으로 정리했다.

‘오바진의 규율’코너에서는 오바진의 고아원에 맡겨진 샤넬이 수녀원 바닥을 장식한 해, 달, 별 문양,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얽힘 문양, 전례 도구에 수놓인 밀 이삭 문양과 원석에 새겨진 까멜리아, 수녀복이나 고아원복에서 얻은 영감을 읽을 수 있는 식이다.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면 샤넬이 부유한 연인과 예술가들과 함께 한 장소, 그 곳에서 본 다양한 직업군의 의상이나 인상적인 건축과 예술품이 샤넬의 의상과 보석, 향수 탄생에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샤넬의 삶에 등장한 모든 것이 디자인의 원천이 됐다니, 평범한 이로선 한없이 부럽고 자신의 초라함을 인식케 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글 :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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