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폭스바겐은 붕괴 직전이었다. 1990년 독일 통일의 특수로 폭스바겐도 반짝했었다. 1993년쯤 되자 통일 특수도 사라져버렸다. 지독한 경기 침체가 몰아닥쳤다. 대중차 시장에 자리해 있던 폭스바겐은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폭스바겐이 위치한 소도시 볼프스부르크는 폐허에 가깝게 변해갔다. 도시 고용의 60%를 폭스바겐이 책임졌다. 폭스바겐이 흔들리자 볼프스부르크의 실업률은 1996년 무려 17.9%까지 치솟았다.

폭스바겐은 최악의 경기 한파가 불어닥쳤던 1994년부터 볼프스부르크 시 정부와 함께 생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폭스바겐도 살고 볼프스부르크시도 살고 독일 경제도 사는 길을 찾는 게 목표였다. 답은 아우토슈타트였다.

폭스바겐은 1999년 가을 볼프스부르크 시정부와 합작으로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아우토슈타트는 단순히 폭스바겐의 거대 본사를 세우는 토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지역사회 및 국가 경제와의 상관 관계를 면밀하게 고려한 계획이었다.

폭스바겐한테 아우토슈타트는 낙후된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해줄 기회였다. 폭스바겐은 유명한 아우토튀르메를 설계했다. 소비자들은 아우토슈타트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에 투숙한 다음 강철로 세워진 22층 신차 출고장 아우토튀르메에서 자신이 주문한 자동차가 태어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폭스바겐 자동차를 생활의 일부이자 또 하나의 가족으로 격상시켰다. 폭스바겐은 아우튜슈타트를 통해 한차원 높은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었다.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는 모두 4개의 사업 부문(혁신캠퍼스·경험세계·부품공급망·인력공급망)을 구축했다. 혁신캠퍼스는 폭스바겐을 중심으로 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기획이다. 경험세계는 테마파크다. 자동차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거대한 소비 생태계를 조성했다. 덕분에 볼프스부르크는 공장 도시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도시로 진화했다. 부품공급망과 인력공급망 사업은 폭스바겐을 정점으로한 전후방 산업 파급력을 증폭시켜줬다.

2000년 개장한 아우토슈타트 프로젝트는 폭스바겐도 살리고 볼프스부르크도 살리고 결국 독일 경제도 살렸다. 폭스바겐은 BMW와 벤츠를 누르고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로 군림하게 됐다. EU 경제공동체가 확대되자 폭스바겐한텐 유럽 전체를 겨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결국 독일 경제는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도약했다. 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과 독일 경제의 백년 대계였다.

현대판 아우토슈타트 프로젝트
이게, 현대차그룹이 삼성동 한전 부지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현대판 아우토슈타트 프로젝트다. 사실 현대차그룹은 1990년대의 폭스바겐과 닮은 꼴이다. 당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던 폭스바겐처럼 위급하진 않다. 그때의 폭스바겐처럼 도약의 계기를 절박하게 찾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선 건 맞다. 더 위로 치고 올라가려면 결국 브랜드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을 곱절은 키워야 한다. 단순히 품질 혁신을 외치고 브랜드 광고 좀 한다고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폭스바겐이 위기 속에서 아우토슈타트라고 하는 발판을 찾아냈던 것처럼 말이다.

현대판 아우토슈타트는 서울시와 한국 경제에도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앞으로 상당 기간 총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저성장 불황을 겪을 공산이 크다. 정부의 돈 풀기 정책만으론 역부족이다.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가 한꺼번에 꼬여버린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곧 현대차의 위기다. 독일 경제가 고꾸라지면서 폭스바겐도 망할 뻔 했다. 현대차그룹은 10조원을 투자해서 한전 부지를 인수했다. 10조원은 그대로 한전 부채를 갚는데 쓰이게 됐다. 명분만은 아니다. 크게보면 실리다.

서울시는 코엑스와 삼성동과 잠실을 하나로 묶는 거대 국제 업무 지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결국 그 랜드마크는 현대차 본사다. 자동차라고 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들어설 오락, 호텔, 업무, 전시 시설을 통해 서울의 강남 지역이 재정의된다. 이제까지 강남은 아파트값 비싼 부동산 지구에 불과했다. 현대차 본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산업 지구로 거듭난다.

10조5500억원은 큰 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전 부채를 탕감해줬다는 명분에 동의하긴 어렵다. 단기 수익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국내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노조도 경영진의 대규모 투자가 달가울리 없다. 언론들도 인수 경쟁자였던 삼성전자가 응찰가로 4조6700억원을 써냈다는 점을 들어서 비판적이다. 사실 한전부지의 감정가는 4조원 남짓이었다. 현대차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4조원 짜리 땅에 4조원을 적어냈다면 인수 의사가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현대판 아우토슈타트는 2023년 완공이 목표다. 폭스바겐판 아우토슈타트는 20년 장기 프로젝트였다. 지금도 아우토슈타트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폭스바겐이란 기업과 볼프스부르크라는 도시와 독일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현대판 아우토슈타트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다. 현대차와 서울시 그리고 한국 경제를 도약시킬 도전이 시작됐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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