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상직 산업자원부장관이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적합업종제도를 만들 때 가지고 있던 취지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청장으로 있는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난 10일 열린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서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이 한 말이다.
한 청장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대기업들이 두부, 순대, 어묵, 탁주 등 52개 품목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해제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국회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나오게 됐다. 그는 “다소 무리한 대기업 입장이 나온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 청장은 “발표된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중기청의 의사를 (대기업계에) 분명히 전달했다”며 적합업종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기업의 무리한 입장 표명에 대해서도 직접 해당 업계에 전할만큼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

사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논란은 올해 중소기업 정책 가운데 가장 뜨거운 이슈 중에 하나였다. 당연히 10월에 개최된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올라올 문제꺼리였다. 적합업종 100개 품목 및 업종 가운데 올해 제조업 82개 품목의 권고기간 3년이 만료돼 재합의 여부를 결정하려 했지만, 대기업계의 브레이크로 자꾸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도 그동안 줄기차게 정부와 국회에 적합업종제도의 강화를 요구해왔다. 지난 9월에 개최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의 간담회에서도 적합업종제도의 문제에 따른 업계의 어려움을 최우선적으로 호소했다. 이날 최 부총리도 “중소기업적합업종 문제는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부터 관심이 높았던 분야로 부작용이 완화될 수 있도록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중기청과 동반위가 잘 협의하기를 바란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적합업종 흠집내기
이처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한정화 중기청장도 지지하는 적합업종제도에 대해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 국회의원은 너나 할 것 없이 대기업계와 이를 운영하는 동반성장위원회를 지탄했다.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동반위가 지난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중기 적합업종 운영 개선방안은 그동안 대기업들이 요구해오던 사항이 그대로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이는 사실상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노 의원은 동반위가 적합업종지정으로 인한 산업계, 소비자 피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대기업계, 언론계 등의 비판에 대비해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신랄하게 꼬집어 말했다.

노 위원은 “대기업 편향적인 적합업종 개선방안은 중소기업 보호육성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처사이며 경제민주화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중기 적합업종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중소기업, 중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적합업종제도 훼손 의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전경련과 중기중앙회가 각각 분석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대해 전경련이 제도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오 의원은 “전경련 보고서의 중소기업 표본수는 655개인 반면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연구원에 의뢰한 표본수는 5024개로 표본수에서 큰 차이가 났다”며 “전경련이 적합업종제도의 효과를 분석하면서 적합업종 중소기업의 표본을 자산 100억원 이상의 기업으로 정한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의도성이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별법, 통상마찰 우려 없다”
적합업종제도와 관련해 오영식 의원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통상마찰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할 바 없다”며 일축했다. 오 의원은 “정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직접 운영하고 위반기업에 대해 처벌 등의 조치를 할 경우, 대기업의 이행력을 담보해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을 보다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이를 위해 지난해 4월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밖에도 동반위의 독립적인 정책운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동반위가 전경련 100억 예산에 발목이 잡혀 대기업 눈치만 보다가 코앞으로 닥친 재지정 미합의 업종 75건에 대해 대책 없이 차일피일 시간만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동반위의 운영예산은 전경련 100억원, 중기중앙회 10억원, 산업부 17억원, 중기청 16억원으로 구성됐다.

대기업의 中企 위장도 ‘비판’
대기업들은 적합업종제도를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공공구매시장에 대해 끝없이 탐욕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영식 의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자간 경쟁입찰에 참여자격을 갖추고 있는 3만924개 중소기업 가운데 16개 중소기업이 위장 중소기업으로 밝혀졌다. 이는 중기청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수시 조사한 결과다.

전체 공공구매 시장은 113조원 규모로 중소기업제품 구매는 78조8000억원 수준이다. 중소기업 공공구매가 전체의 69.7%를 차지하는 셈이다. 중소기업 제품 구매 가운데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를 위해 대기업 등의 공공입찰 참여 제한 필요성을 중기청장이 인정해 지정하는 제품 207개 품목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시장(약 20조원)으로 공공기관 입찰에 국내 중소기업만 참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의 입찰참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영역이다.

현재 위장중소기업 16개 중 4개는 검찰에 고발돼  수사 중이며 나머지 12개 기업은 중소기업 확인서 발급과정에서 업체 스스로 자진신고해 조달시장에서 퇴출됐다. 오 의원은 “중소기업의 경쟁영역에 대기업이 편법을 동원해 입찰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또 있다. 조달 시장에서 위법을 저지르는 대기업에 가하는 제재는 유명무실한 반면 중소기업에겐 가혹하다는 것이다.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13일 조달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은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아도 대부분 행정소송을 제기해 처분이 정지된 것으로 드러났다. 7월 현재까지 제재 처분을 받은 대기업 18곳 중 처분이 정지된 기업은 17곳에 달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159곳 중 23곳만 정지되는 등 소송을 제기할 비용이 없는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됐다.


중소기업 특허 탈취하기도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은 특허청 국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특허가 사실상 대기업의 특허 빼앗기로 악용되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홍 의원은 “중소기업이 기술이나 장비를 단독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거나 획득한 이후 대기업에 납품하려고 하면, 납품 조건으로 단독특허를 취소하고 공동특허를 낼 것과 다른 회사에는 납품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어쩔 수 없이 공동특허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특허청은 특허등록 이후 공동권리로 된 경우가 최근 5년간 단 3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현장에서는 특허등록 전 출원 이후나 아예 납품 회사의 제품 중 특허 신청이 안 된 것을 대기업이 특허를 신청하거나 하는 등의 사례가 넘쳐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 의원은 “특허등록 이후 공동특허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의도가 좋은 의도인지 어떤지를 파악해야 하는 등 우리 중소기업의 특허보호에 특허청이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허 분쟁은 ‘갑’인 대기업에게 ‘을’의 처지인 중소기업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오래된 ‘손톱 밑 가시’다. 이번 국감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문제가 시작된 서오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특허 분쟁이 화두가 되기도 했다. 서오텔레콤은 2001년 LG유플러스에 사업을 제안, 공동사업을 추진하다가 2003년 LG유플러스가 독단적으로 알라딘 폰에 해당 서비스를 탑재해 출시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13일 개최된 미래창조과학부 국감장에 출석한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기술 관련해서 세차례나 만났고 LG유플러스에서 자료 요청도 했으며 기술설명을 요청해 변리사와 함께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LG유플러스는 “그런 적이 없다”고 일관된 주장을 폈다.

우상호 의원은 “최양희 장관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관행을 없애겠다고 밝힌 만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헌 의원도 “중소기업이 어렵게 만든 기술을 대기업이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철저한 관리 감독을 주문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