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명물인 리알토 다리. 아치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다리를 넘어가면 귀금속과 가죽 제품을 파는 점포가 줄지어 서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경험’도 대물림
베네치아 리알토 수산시장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이곳에 가려면 베네치아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다리인 리알토 다리부터 찾아야 한다. 골목 곳곳에 붙어 있는 노란색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다리에 도착했다. 귀금속과 가죽 제품 등을 파는 점포들이 다리 위에서 골목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아케이드 점포들과 그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베네치아의 아침은 활기찼다.

다리 아래로 펼쳐진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니 현지인들이 장을 보는 친근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14세기 경에 형성돼 지금까지 사람들이 찾는 베네치아 유일의 수산시장이다. 수산시장 광장(Campo della Pescheria)은 1907년에 지어졌는데, 신고딕 양식으로 최근 새로이 단장했다.

지중해의 햇살을 받고 자라 때깔부터 다른 과일, 야채 시장을 지나, 드디어 수산시장 건물에 들어섰다. 고풍스러운 건물 입구에는 큰 천이 걸려 있어 햇빛을 가려 줬고, 천 위에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사자 모양이 새겨져 있다. 둥근 아치 형태로 만들어진 건물은 사방이 트여 있어 환기도 잘 됐다.

시장의 상인들은 조금이라도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고자 부지런히 가판대에 얼음을 깔고 생선을 진열 중이었다. 한눈에도 한국의 수산시장과는 어종이 많이 달라 보였다. 아드리아해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들은 팔딱 팔딱 살아 움직이는 듯 싱싱하고 매끈한 자태를 뽐냈다. 연어와 송어, 농어와 가리비 등이 투명한 얼음 위에서 주황빛,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분이 생선 한마리를 두고 상인과 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생선 손질법이나 조리법을 알려 주는 것일까? 아니면 안부를 묻는 것일까? 장을 보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서두름이 없다.

시장을 둘러보니 얼굴이 닮은 사람들이 같이 장사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사람은 생선을 손질 중이었는데, 연륜의 깊이를 나타내듯 아버지는 값이 비싼 연어를, 아들은 조그마한 생선의 비늘을 벗겨내고 있었다. 가업을 잇는 듯 아들은 얼굴이 썩 밝아 보이진 않았다. 새벽 일찍 나와서 장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분들로 인해 베네치아 어시장이 명물이 되고 살아남은 것임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시장이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비밀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몸으로 체득한 경험과 지혜를 물려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아닌 머리로만 한 경험에는 결코 세월을 이길 수 있는 내공이 담겨 있지 않다.

-글 : 이랑주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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