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융합, 또 다른 ‘반 고흐’와의 조우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평가받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 대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일화가 있을까?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생전에 그림 한점 팔아본 게 전부였던 가난한 화가, 경제적·정신적 지원자였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수백통의 편지 사연,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낸 광기, 까마귀 나는 밀밭에서 권총 자살로 37살 짧은 생의 마감 등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들을 익히 알고 있다. 죽고 나서야 천재성, 몰이해, 가난, 광기, 자살, 요절 등 예술가에게 떠올릴 수 있는 극적 이미지를 모두 구비한 화제성과 함께 가장 비싼 대접을 받는 작가가 돼 예술의 평가와 시장의 이중성을 숙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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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10년의 기록’전은 반 고흐의 진품을 단 한 점도 볼 수 없는 전시회다. 대신 그의 그림을 바탕으로 디지털 작업을 한 움직이는 화면을 볼 수 있다.

풀 HD급 프로젝터 70여대를 사용해 4m 이상의 대형 스크린 곳곳에 모션그래픽 작업을 거친 디지털 이미지 기반 작품이 투사되므로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흐의 그림 속 풍경 안으로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전시장 전면과 측면, 바닥에 비춰진 영상이 수시로 바뀌므로 적어도 한 코너에서 10분 이상을 머물며 감상하는 것이 좋다. 조명과 영상, IT 과학 기술이 결합한 미디어아트 전에 선보이는 고흐 작품은 300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림과 스케치는 성직자와 화가, 두가지 길에서 갈등하던 반 고흐가 가족들의 실망을 뒤로 한 채 동생 테오의 제안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위대한 화가로의 도약’, 재능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네덜란드 시기’,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 그림을 통해 밝고 대담한 색채를 구사하며 쇠라의 점묘법을 익히게 된 ‘파리 시기’, 프로방스의 아를로 이주해 자신만의 색채와 화풍을 확립한 ‘아를 시기’, 죽기 전 70여 일 동안 머물며 80여점의 그림 안에 모든 열정을 쏟아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까지 반 고흐 그림의 전환점이 된 시기별로 배치했다.

전통 회화에 첨단 기술을 적용한 ‘반 고흐, 10년의 기록’ 전은 뜻밖에도 국내 제작사 미디어 앤아트의 김승철, 서두원이 감독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거친 붓 놀림과 뚜렷한 윤곽선의 인물이나 풍경이 칠해지는 순서를 보여주는, IT 강국다운 회화 해석과 전시 방식을 칭찬해야 하는지, 미디어 아트전 등에서 시도됐던 기술의 집중과 확대로 봐야 하는지, 관람자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질 것 같다.

전시장 한쪽엔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놨고, 고흐 그림 이미지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찍어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전시회에 맞추어 개봉한 TV용 영화 <반 고흐: 위대한 유산> 일부도 상영되고 있다.

네덜란드 감독 핌 반 호브의 2013년 작 <위대한 유산>은 1879년,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던 반 고흐(바리 아츠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1959년, 반 고흐가 남긴 그림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고흐의 조카인 또 한명의 빈센트 빌럼 반 고흐(예로엔 크라베)가 큰아버지의 그림을 팔고자 화상들을 만나는 여정을 병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반 고흐가 죽던 해에 태어난 테오의 아들이다. 삼촌의 이름까지 물려받은 조카는 ‘반 고흐의 조카’가 아닌 자신으로 살고 싶어 고흐의 그림들을 팔려고 한다. 그러나 아내와 손녀와의 대화 등으로 인해 유산을 보존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덕분에 네덜란드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반 고흐 미술관이 개관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전한다.

- 글 :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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