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타짜’김승연 회장…M&A ‘예술’로 승부수

한화그룹이 사내에 대규모 인수합병 전담 조직을 꾸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한화가 시장의 인수합병 전문가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단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몸값도 상당했다. 자연히 특급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2014년으로 접어들면서 한화가 조만간 빅딜의 포문을 열거란 얘기들이 많았다.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인수합병 정예병들을 한데 모아놓았으니 곧이어 전투를 개시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한화는 차세대 성장 동력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한화의 주력 산업은 크게 한화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과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이다. 석유화학은 갈수록 업황이 나빠지는 상태였다. 금융업은 캐시카우지만 미래 성장성엔 한계가 있는 성숙한 사업이었다. 세번째 화살로 적극 추진했던 태양광 사업은 실책과 불운이 겹치면서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한화는 다시 한번 인수합병이란 마법에서 활로를 찾아보기로 했다. 한화는 인수합병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다. 원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출귀몰한 금융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걸로 유명하다.

오너의 배짱과 선수의 기교가 결합된 인수합병 전문가다. 덕분에 한화의 인수합병은 실패 사례도 없지 않았지만 몇차례 예술적인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여름 한화는 마침내 전투를 개시했다. 삼성그룹에 삼성탈레스 인수를 제안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삼성탈레스는 방위산업 시스템 전문업체다. 레이더를 비롯한 군용 전자 장비를 생산한다. 한화가 삼성탈레스에 눈독을 들인 건 전환적 발상이었다.

원래 한화의 뿌리는 한국화약이라는 방산업체다. 정작 한화는 방위산업 분야에서 너무 오래 뒤쳐져 있었다. 탄약이나 로켓탄 같은 재래식 무기를 주로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선 중요성이 줄어든 무기들이다.

한화 안에서도 방위산업은 ㈜한화로 통합되면서 회사의 상징적 뿌리로서만 남아 있었다. 매년 여의도에서 열리는 불꽃 축제 정도가 바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한화는 미국 국방전문매체 디펜스 뉴스가 지난 여름에 발표한 세계 100대 방산업체에도 들지 못했다.

반면에 삼성탈레스는 현대 전자전에선 필수적인 통신장비와 탐지장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삼성탈레스를 인수할 수만 있다면 한화가 생산하는 재래식 미사일에 전자 조준 장치를 결합해서 스마트 로켓을 개발할 수도 있다.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단 얘기다.

인수합병은 단순히 회사를 사고 파는 게 아니다. 1 더하기 1은 2가 되면 안 된다. 1 더하기 1이 20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인수합병은 재무와 금융과 전략과 정치와 노무와 분석과 예측을 결합해서 보이지 않던 미래를 그려내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다. 한화가 추진한 삼성탈레스 인수는 분명 예술적인 측면이 있었다. 기업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역량과 기업 외부의 역량을 결합해서 시너지를 증폭시킬만한 딜이었다.

그런데 삼성 측이 역제안을 해왔다. 한화에만 예술가들이 있는 게 아니었다. 삼성에도 예술가들이 있었다. 삼성은 한화에 삼성탈레스의 지분 50%를 갖고 있는 삼성테크윈까지 한꺼번에 인수하라고 요구했다. 삼성테크윈은 K-9 자주포와 K-10 장갑차를 생산하는 국내 1위 방산업체다. 그것만 보면 한화로서도 군침이 도는 제안이었다. 단박에 한국 방위산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삼성테크윈은 TA-50 훈련기를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지분 10%까지 갖고 있었다. 장차 정책금융공사가 갖고 있는 지분 26.4%마저 인수한다면 한화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최강의 방위산업체가 될 수도 있었다. 한국의 록히드마틴 말이다.

문제는 삼성의 예술적 야심이었다. 삼성은 전자와 금융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단순화시킬 작정이었다. 그러자면 석유화학이나 조선해양 같은 업황이 악화되고 있는 비주력 사업들을 정리정돈할 필요가 있었다. 삼성은 삼성테크윈과 지분구조가 얽혀 있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까지 패키지로 매각할 작정이었다. 한화 입장에선 방산을 원하면 화학까지 인수해야만 했다. 인수가격이 2조원 가까이로 늘어났다. 당장 한화가 감당하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침대 사러 갔다가 집을 사게 된 꼴이었다.
이때 한화의 예술적 상상력이 포개졌다. 유화 업황이 안 좋다지만 어차피 한화는 삼성처럼 석유화학 산업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주력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해법이다. 물론 덩치만 키운다고 유화업계의 공급과잉과 경기침체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적어도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규모로 넘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렇게 한화는 삼성과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빅딜의 과정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다. 정작 한화의 예술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화의 사업구조 재편은 이제 시작이다.

한화의 인수합병 조직은 적어도 6개 이상의 빅딜을 매만지고 있다. 6개 이상의 외부 투자은행들을 움직이고 있단 얘기다. IB 위에 IB 수준이다. 기존 사업을 팔고 미래 성장 동력을 사오는 파격적인 빅딜도 고려되고 있다. 원래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 서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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