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해상왕국’ 서울서 살아나다
류큐(琉球)왕국. 신화 속의 아름답고 영롱한 왕국이 연상된다. 더구나 사라진 왕국이라니 애련하기까지 하다. 류큐 왕국은 1429~1879년, 일본 최남단인 오키나와제도에 존재했던 독자적인 왕국을 이른다.

일본보다는 대만에 가까운 섬들로 이뤄진 류큐국에는 약 3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13세기 전후에는 ‘아지’라 불리는 지도자가 각지에서 나타났다. 1429년 중산국의 쇼하시왕이 호족 세력을 통일하면서 류큐 왕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중계 무역으로 황금기를 구가해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키웠던 류큐 왕국.

1609년, 임진왜란의 여세를 몰고 온 사쓰마번의 침입으로 일본 막부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류큐 왕국은 특산물 수탈에다 세금 징수 등 착취를 당한다. 1872년, 류큐현으로 일본에 편입됐으며, 1879년엔 강제 병합으로 오키나와현이 설치되면서 ‘류큐’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류큐 왕국 보물’전에는 해상왕국으로 번영을 누렸던 류큐 왕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조선과의 관계 등을 알게 해주는 유물 200여점이 선보인다. 

오키나와의 역사 코너에는 류큐 왕국 지도, 류큐 왕국의 항로를 그린 지도 병풍, 류큐의 역사서인 중산세보가 전시돼 있다. 슈리성 코너에선 벽면 하나를 채운 슈리성 사진과 영상물, 그림, 건축 도면책 등을 볼 수 있다.

류큐 왕국 제1대 왕이 즉위한 1406년부터 일본에 병합되는 1872년까지 왕실 주거, 왕의 집무와 의례 공간으로 사용됐던 슈리성은 태평양전쟁 중 대부분 전소됐으나 1992년 오키나와의 본토 복귀 20주년을 기념해 주요 건물을 재건했다. 성곽 일대는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실물로는 쇼씨 왕조의 왕실 유물이 손꼽힌다. 470여년간 류큐 왕국을 통치한 쇼씨 왕조는 나하항을 통해 수입한 각국의 다양한 재료로 의상, 칠기, 도자 등의 고급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나하시역사박물관 소장의 일본 국보인 국왕의 의례용 의상, 국왕의 왕관, 보주 무늬 빙가타(류큐 고유 염색법) 겹옷, 왕실용 모란·새·창포 무늬 빙가타 겹옷 등의 의상과 왕실 의례용 기물인 누메우스리 등을 볼 수 있다.

류큐 왕국의 생활 문화 코너에선 궁정 악사의 연주 그림, 재현한 전통 악기를 볼 수 있다. 정치는 남성이 했지만, 각종 의례에서 신에게 제사 지내는 역할은 여성이 담당하고, 여성이 군역·농업·상업에 종사하기도 했다는 류큐 왕국의 여성 옷차림 그림, 비녀, 반지 등을 통해 왕족, 사족, 평민 여성을 상상해볼 수 있다.

류큐 왕국의 외교와 교역 코너에선 1372년 중국과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해상 왕국으로 황금기를 구가했던 시기의 무역선과 일본 에도 막부에 사절단을 파견하는 모습 등을 그린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고려 장인이 만든 기와에 특히 눈이 머문다.

우리나라는 14세기 이전부터 류큐 지역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조선은 류큐 왕국을 유구국 또는 류구국으로 부르며 우호 관계를 지속했다고 한다. 조선은 류큐에 불교 경전·사서 등의 서적과 사원 건축술을, 류큐는 조선에 희귀 동·식물과 병선 제조술을 전해주었음을 류큐국과 우리나라의 기록과 고지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과 조선의 선과 미감이 읽히는가 하면, 남방 섬나라의 색채와 섬세함에 압도되기도 하는 류큐 왕국 보물들. 그 먼 옛날, 배를 타고 오갔던 여러 나라 사람들 꿈이 읽히는 듯하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