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 12월 23일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대대적인 신비전선포식을 개최했다. 인천공항은 ‘도약 2017 0 TO 5’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2017년까지 모두 여섯 가지 목표를 달성하겠단 내용이었다. 안전사고를 0까지 낮춘다. 환승객을 1천만명까지 늘린다. 매출은 2조원을 돌파한다. 인천공항 3단계 사업을 완수한다. 공항종사자는 4만명을 넘어선다. 여객 5천만명 시대를 연다.

박완수 사장은 지난 10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박완수 사장이 취임할 때까지 인천공항의 사장 자리는 무려 7개월 동안이나 비어 있었다. 박완수 사장의 전임자 정창수 사장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로 출마하려고 불과 취임 9개월만에 사퇴해버렸다. 인천공항은 사실상 2014년을 기장 없는 항공기 신세로 보낸 셈이다. 박완수 사장이 취임 3개월만에 이례적인 비전 선포식을 연 건 그래서다. 인천공항한테 2015년은 2014년과는 같아선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해서 비행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2014년은 인천공항한텐 영광과 위기가 교차한 해였다. 인천공항은 2014년에도 국제공항협의회의 공항서비스평가, 즉 ASQ에서 9년 연속 1위 자리에 올랐다. ASQ는 항공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정작 현실적으론 위기의 조짐들이 그득했다. 원래가 기업의 위기는 전성기일 때 시작되기 마련이다. 역사상 어느 기업도 전성기의 함정을 피해가진 못했다.

전성기의 함정은 대체로 3단계로 전개된다. 우선, 기업의 구성원들이 성공의 열매를 나눠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경쟁사들의 동태를 놓치기 십상이다. 둘째로, 이제까지의 성공에 취해서 사업 환경 변화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뒤늦게 위기를 인식했지만 그동안 해왔던 성공방정식을 답습하면서 잘못된 대응으로 일관하게 된다.

인천공항 위기의 전조는 정창수 사장의 갑작스런 사임이었다. 사실 정창수 사장은 인천공항의 제2도약기를 책임져야했던 인물이었다. 인천공항의 제1도약기를 마무리한 인물은 전임 이채욱 사장이었다. 강동석 초대 사장이 인천공항의 초석을 놓았다면 4대 이채욱 사장은 4년 4개월 동안 인천공항의 기장을 맡으면서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채욱 사장은 인천공항을 한마디로 공기업 같지 않은 공기업으로 만들었다. 공기업하면 떠오르는 방만 경영과 나태 노동이 인천공항엔 없었다. 비결은 인사에 있다.

공기업 경영이 방만해지고 나태해지는 건 외부 인사 청탁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직장을 철밥통이라고 여기는 조직 분위기에 주인 의식은커녕 상호 감시도 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문화까지 확산되면 조직의 경쟁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채욱 사장은 인사에서 부서 공모제를 도입했다. 본부장은 처장만, 처장은 팀장만, 팀장은 팀원만 임명하는 방식이다. 본부장이 조직 말단에 낙하산 직원을 내려 꽂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자연히 인사 부패가 사라진다. 역대 사장들처럼 이채욱 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지만 공기업에 사기업 같은 경영 전략을 접목시켜서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배가시켰다.

2013년 1월 이채욱 사장이 물러난 뒤 이어진 후임 인사는 그렇지 못했다. 정창수 사장에 이어진 박완수 사장도 경남도지사 새누리당 후보 자리를 놓고 홍준표 지사와 격돌했던 정치인이다. 사장부터 낙하산 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게다가 지표상으론 아직 인천공항은 잘 나가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조직에도 모럴 해저드가 확산되기 쉽다. 공기업 같지 않았던 인천공항의 경쟁력이 훼손될 적기다. 이게 1단계 내우다.

2단계 외환도 이미 시작됐다. 인천공항의 환승객수와 환승률은 2014년 3월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환승률은 허브 공항의 위상과 직결되는 지표다. 유럽의 허브 공항인 프랑크푸르트의 환승률은 42%에 달한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은 31%다. 인천공항은 15%선이다. 원인은 동북아 허브 공항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나리타와 하네다, 중국 북경과 푸동 공항이 모두 허브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인천공항한텐 김포공항이란 내부 경쟁 상대도 있다. 한때 50%가 넘었던 환적률 역시 40%대로 내려앉았다.

승객과 화물 양쪽에서 모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천공항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일본의 환승객과 중국의 환적물을 모두 빨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일본 쪽 환승객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결국 관건은 3단계 진행 여부다. 2015년에도 인천공항을 둘러싼 내우외환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인천공항은 2015년부터 이른바 3단계 사업에 집중할 작정이다. 2013년 9월에 착공된 제2여객터미널은 4조9000억원이 투입되는 역사다. 결국 규모면에서 동북아 경쟁 공항을 압도하겠단 뜻이다. 문제는 내부의 모순과 외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채 규모만 키워선 오히려 위기만 키울 수 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인천공항을 둘러싼 바깥의 민영화 논란은 인천공항 경영을 자꾸만 정쟁화시키고 있다. 기업 경영이 이념화되면 제대로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정치인 출신 CEO가 이끄는 공기업에선 말할 것도 없다. 인천공항은 지금이 전성기다. 전성기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비상이냐 추락이냐는, 2015년에 달렸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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