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변호인> <명량>을 잇는 <국제시장>의 흥행과 <허삼관>의 개봉, 그리고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의 인기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로 특징지을 수 있겠다.

반면 2015년 벽두 외화 시장은 실화, 실존 인물 소재 영화들로 관심을 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룬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 등이 기대작들이다.

실존 인물 영화로 안젤리나 졸리의 세번째 연출작 <언브로큰>을 빼놓을 수 없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더불어 미국 시각의 이분법적 영웅담이라고 폄하할 요소가 있지만, 실존 인물이 겪은 일이라는 데야 성조기가 화면을 도배하든, 일본 우익이 반발하든 뭐라 하겠는가. 이런 지지 심경은 <언브로큰> 도입부의 ‘a true story’(실화) 자막에서 기인한다. “실화에 기초했지만 단지 영감을 받았을 뿐, 영화 내용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따위의 구구한 변명을 달지 않은, 타인의 첨언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간결하고 단호한 자막에서 감독 안젤리나 졸리의 결기가 읽힌다.  

<언브로큰>에 대한 칭찬은 이야기 고르는 안목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이라는 놀림에 반항했던 말썽꾸러기 소년. 형의 격려로 달리기에 입문한 뒤 19살 되던 1936년, 올림픽 사상 최연소 선수로 베를린올림픽 육상 5000m 미국 국가 대표로 출전해 8위를 기록하며, 4년 후 동경올림픽 금메달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전쟁 발발로 1941년 미 공군에서 복무하던 중 태평양에 추락해 47일간 3000km를 표류하며 굶주림, 태양, 상어, 태풍과 싸운다. 하필 일본군에 구출돼 850일간 포로수용소에서 수용소장 와타나베의 혹독한 고문을 견뎌내고 생환한 사나이 루이스 잠페리니(1917~2014).

자연과 인간이 가한 극한의 고통을 견뎌낸 잠페리니에 관한 영화 프로젝트는 잠페리니의 이웃에 살던 안젤리나 졸리에게 이른다. 안젤리나 졸리는 형제 감독 조엘과 에단 코헨의 시나리오, 로저 디킨스의 촬영 등, 쟁쟁한 스텝들 도움으로 <언브로큰>을 완성했다. 달리기 연습과 올림픽 출전, 비행 전투와 폭격, 표류, 포로수용소 묘사에서 고전 영화들에서 익히 봐온 장면들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안일하다고 비판할 수 있는 기시감은 유연한 편집과 일관된 메시지 덕분에 곧 잊힌다. 

일명 ‘새’로 불렸던 일본군 포로수용소 소장 와타나베는 유독 잠페리니에게 혹독하게 굴어, 일본 우익들로부터 “안젤리나 졸리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반발을 자아내고 있지만, 일본 우익이 기억해야 할 것은 독방 감금, 고문, 매질, 탄광 채굴 노동, 십자가형벌을 겪은 잠페리니가 훗날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언브로큰>은 극적 삶을 극복한 불굴의 의지, 신에게 귀의하여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었던 인간애에 압도돼 영화 속 잠페리니가 아닌, 재해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구에서 함께 살았던 인간으로서의 잠페리니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즉 뒷이야기가 더 무성한 영화라는 함정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인물을 발굴하고 영화로 만들어 잊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할리우드의 선택, 안젤리나 졸리의 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영화계는 끊임없이 좋은 이야기 거리를 찾고 있으며, 찾아낸 이야기 중 어느 것을 중심 삼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제작진, 그리고 시대 상황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 글 :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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