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남자’거부 어려운 제안…‘피해 최소화’해법은 정치력
사실 2012년 11월 치러진 미국 대선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패색이 짙었다. 일단 실업률이 7.9%에 달했다. 위기의 오바마 선거 캠프에 구원 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데이비드 플루프였다. 데이비드 플루프는 오바마의 재선 전략을 통째로 바꿔놨다.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대통령은 풀뿌리 선거 운동으로 승리했다. 플루프는 중앙당을 중심으로 2012년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은 진행 중이었다. 백악관 선임고문이었던 플루프는 후보들 중에 유독 롬니만 물고 늘어졌다. 자연히 오바마 대 롬니의 구도가 형성됐다.

플루프는 우선 오바마가 이길 수 있는 상대를 골랐다. 롬니였다. 오바마가 자신한테 가장 유리한 무기를 들고 롬니를 상대하게 만들었다. 중앙당의 돈과 영향력이었다.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했다. 플루프는 오바마의 장자방으로 불렸다.

지난 2월4일이었다. 바로 그 데이비드 플루프가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방한 기자 회견을 가졌다. 오바마 행정부를 대변하러 온 게 아니었다. 우버의 정책전략담당 부사장 자격이었다. 플루프는 2013년 백악관을 떠났다. 미국 정가에선 흔한 풍경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문고리 권력을 붙잡고 늘어지는 한국과는 다르다. 플루프는 두번의 대선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만든 남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제 민간 영역에서 명성을 돈으로 바꿀 차례였다. 플루프는 우버를 선택했다.

마침 우버는 전세계 정부를 상대로한 규제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우버의 본질은 단순한 위치 기반 택시 서비스가 아니다.  우버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차세대 진화 모델이다.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서비스에서 출발했다. 이메일과 메신저가 대표적이다. 그 다음 단계가 사람과 상품을 이어주는 서비스였다. 이베이나 지마켓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온라인 투 온라인이었다면 사람과 상품은 온라인 투 오프라인이었다.

다음 단계가 사람과 각종 오프라인 서비스와의 연결이었다. 오프라인에서만 존재했던 각종 서비스들을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시켜주는 일이었다. 그 선두에 바로 우버가 있었다. 오프라인 택시를 기반으로 한 운송 서비스의 온라인화였다. 문제는 이런 오프라인 서비스들은 이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규제틀 안에서 운영되고 있단 점이었다. 이런 규제들은 서비스의 수요자들과 공급자들을 보호하고 통제하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런 규제를 유지하면서 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들한테 모두 세금을 받는다.

우버가 오프라인 택시 서비스를 온라인화시키려면 규제 당국인 정부와 서비스 공급자와 서비스 수요자 사이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정치다. 우버 비즈니스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인 이유다. 우버는 전세계 53개국 277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한다. 그렇다면 외교다. 우버의 창업자인 트라비스 칼라닉이 플루프를 삼고초려했던 이유다.

우버의 외교관 자격으로 방한한 데이비드 플루프는 기자회견장에서 스타 정치전략가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롬니를 상대방으로 지목했던 것처럼 아시아에선 IT선진국이자 삼성 스마트폰의 종주국인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다. 플루프는 미국 한인 사회와도 깊은 유대 관계가 있다. 게다가 최근 한국 정부는 규제 완화를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데이비드 플루프는 한국 정부에 기사 등록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2012년 대선 때처럼 우버한테 가장 유리한 무기를 꺼내들었다.

정부가 우버 기사의 면허증을 발급하라는 얘기였다. 플루프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우버를 규제하세요.” 그건 우버를 또 하나의 택시 사업자로 인정해달라는 의미였다. 대신 카드 결제 과정에서 일부나마 세금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기업과 정부의 이해 관계를 일치시켜서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얘기였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시장을 파괴한다. 피해자가 생긴다고 시장의 수요와 기술의 진화를 억지로 막을 수도 없다. 증기 기관이 개발됐던 산업 혁명 시절부터 반복증명된 진리다. 차라리 피해 영역을 최소화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건 기술자나 기업가의 몫이 아니다. 바로 정치인의 영역이다. 정부의 역할이다.

다만 모든 정부가 기술 혁신의 혜택을 극대화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 정치력을 가진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하는 우버 입장에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버가 정부가 해야 할 몫까지 떠맡고 나섰다. 플루프가 우버의 부사장으로 변신해서 공개적으로 기사 등록제를 제안한 이유다. 이미 몇몇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은 플루프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버를 합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플루프의 제안을 거부해도 그만이다. 택시 업계는 환영할 일이다. 고민은 남는다. 정부가 기술의 파괴적 혁신으로부터 언제까지나 국민들을 지켜줄 순 없다. 기술 혁신의 혜택을 누리고 싶은 국민들의 불만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도 없다. 자칫 사람과 서비스를 이어주는 인터넷의 진화 흐름에서 한국만 도태될 수도 있다. 오바마를 당선시킨 남자는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고 돌아갔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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