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작고한 법정스님과 소설가 최인호가 생전에 나눴던 대화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 2015년 3월)가 출간됐다.
한 시대를 같이 느끼고 살아온 최고의 에세이스트와 소설가가 생전에 행복, 사랑, 가족, 자아, 말과 글, 삶, 시대정신, 지식, 고독, 베풂과 종교, 죽음 등 11가지 주제에 걸쳐서 나눈 깊이 있는 사색의 기록이다.

두사람은 1980년대 초반 월간지 ‘샘터’에 각자 ‘산방한담(山房閑談)’과 연작소설 ‘가족’을 연재하면서 잡지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이들은 첫 만남 이후 30년 가까이 친형제와도 같은 깊은 애정을 느끼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는 두사람이 건강하던 시절인 2003년 4월, 서울 성북구 길상사 요사채(승려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지어진 절집)에서 나눈 대담의 기록이다.

최인호는 법정스님이 2010년 3월 11일 폐암으로 입적했을 때 자신도 암 투병 중이었다. 투병 중에도 문상을 마친 최인호는 상가에서 모진 눈보라를 이기고 피어난 노란빛의 영춘화가 눈에 띄었다. 그의 머릿속에 문득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말한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란 금언이 떠올랐다.
그는 그 금언을 책의 제목으로 정하고 법정스님의 기일(忌日)에 맞춰 출간하려 했으나 2013년 9월25일 눈을 감고 말았다.

뒤늦게나마 책으로 나온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에서 두사람은 사랑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사랑이란 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저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겁니다.” (법정) “요즘 사람들은 사랑과 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래 전 명동인가에서 젊은이 둘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됐는데, 서로의 눈을 깊이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서로의 우주를 바라보는 듯,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습니다.” (최인호) 두사람의 대화는 행복에 대해서 이어진다. “행복이란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지요.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법정) “작고 단순한 것에 행복이 있다는 진리를 요즘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밤이 돼야 별은 빛나듯이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최인호)

마지막 부분에서 최인호가 물었다. “스님께선 어느 책에서나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법정스님이 대답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도 살 만큼 살았으면 그만 물러나야지요.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최인호는 책을 끝내면서 “법정스님과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숙세(宿世)의 것임을 깨달았다. 법정스님과 나는 둘이 아니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썼다. 결국 두사람의 깊은 인연은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남게 되었다. 두사람은 ‘별들의 고향’에서 만나고 있을 것이다. 

글: 이채윤·삽화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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