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열전] 고중환 ㈜금성침대 대표

고중환 ㈜금성침대 대표의 침대와의 인연은 중학교를 졸업한 1971년부터 시작됐다. 패기 넘치던 10대에 침대회사 기능공으로 입사한 후 지금까지 침대 매트리스 및 구조체 개발에 40여 년간 한 길을 걸어왔다.

침대 매트리스의 스프링 연결 클립개발, 4면 지퍼 매트리스, 체압 분포에 따라 스프링의 강도에 차이를 둔 7존 매트리스, 매트리스 가장자리 보강 등 21건의 특허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그 모든 기술이 현재 금성침대에서 구현되고 있다.

금성침대가 국내 유명가구의 대부분의 침대를 OEM으로 생산하며 우리나라 3대 침대전문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고 대표의 치열한 기술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고 대표가 침대회사에 입사한 1971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침대가 고가의 사치품으로 분류됐다. 침대 관련 기술자도 거의 없었다. 고 대표는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에 열중했다.

“태생적으로 궁금한 것을 못 참아요. 궁금한 것은 꼭 알아내야 했고,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그 과정이 조금이라도 비효율적이다 싶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고 대표는 침대에 사용되는 클립의 생산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매진했다. 철판 원장을 그대로 프레스에 넣어 가공을 하면 철판에서 버려지는 부분이 40~50%나 됐다. 생산율이 낮았을 뿐만 아니라, 자재낭비도 심했다. 고 대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클립의 배치를 다르게 하는 금형을 직접 연구했고 결국 롤 형태의 철판으로 클립을 생산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들어냈다.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한사람이 하루에 1500개를 생산하는 것이 최대였던 당시에 고 대표가 개발한 자동화 기계는 분당 200개가 생산돼 1일 최대 18만개에서 20만개의 생산이 가능했으니 침대업계로서는 획기적인 개발이었다.

침대시장이 점차 성장한다는 걸 느낀 고 대표는 과감히 회사를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클립생산을 시작했다. 금성공업이 만드는 클립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침대업체가 찾아왔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제품을 받아갔을 정도였다. 지금도 당시 고 대표가 발명한 클립 제조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니 당시 개발된 클립의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클립의 인기가 알려지면서 경쟁회사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클립의 생산만으로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고 대표의 매트리스 커버로 사업을 확장했다. 침대가 생활가구로 인식되며 국내 매트리스 누비시장의 대부분을 독점하게 됐다. 발상의 전환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면서 우리나라 침대 자재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공장의 화재로 잠시 위기를 맞기도 한 고 대표는 2001년, 금성침대랜드를 ㈜금성침대로 법인전환 했고, 2002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침대회사와 기술제휴 해 한국인에 맞는 ‘플렉서레이터’를 내장한 매트리스를 출시해 허리가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냈다.

고 대표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트리스는 세탁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4면 지퍼방식의 매트리스커버를 개발하면서 분리세탁이 가능한 매트리스를 출시했다. 2004년 출시된 이 제품은 지금까지도 소비자 선호상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지난 2008년에는 ‘제7회 100대 우수특허대상에’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소비자 중심의 매트리스 기술개발은 매트리스에 대한 고 대표의 열정의 산물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 제일 먼저 직접 사용함으로써 그 성능을 모두 직접 확인했다. 일년에 8번 정도 매트리스를 바꾼다는 고 대표는 지금도 깨끗하고 편안한 침대를 만드는 방법을 찾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성침대라면 예전에는 모르는 분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고 찾아옵니다. 저는 이것이 기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영자였다면 아마 광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가진 것이 기술이었으니, 늦더라도 기술로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것이 제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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