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정준양 비자금’정조준
녹아내리는 ‘철의 왕국’

2011년 6월9일이었다. 삼성동 포스코 본사에선 포스코패밀리 사랑받는 기업 선포식이 열렸다. 당시 정준양 포스코그룹 회장이 경영서 <위대한 기업에서 사랑 받는 기업으로>의 저자인 라젠드라 시소디어 벤틀리대 교수와 함께 무대 정중앙에 섰다.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는 5개 이해 관계자인 지역사회, 협력업체, 투자자, 고객, 임직원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돈도 잘 번다는 걸 10년의 통계 자료를 통해 나름 입증했다. 정준양 회장은 말했다. “포스코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사랑받는 기업입니다. 오늘 선포식을 계기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기업으로 거듭납시다.”

결과적으로, 포스코는 사랑받는 기업에서 의심 받는 기업으로 전락해버렸다. 일단 포스코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상태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인천 송도에 있는 포스코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베트남에서 벌인 해외 공사비를 부풀려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있다. 규모는 100억원대에 이른다. 포스코는 담당 임원들이 공사 발주처에 리베이트를 제공할 목적으로 자의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해명했다. 회사와는 무관하단 얘기다. 포스코는 사랑 받는 기업 선포식 이후 가치경영실을 설치해서 사내외에 윤리 경영을 강조해왔다. 이번 일로 포스코의 윤리 경영에 흠집이 났다.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검찰이 베트남에서 국내로 유입된 자금이 포스코 본사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적으로 비자금이 조성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해당 비자금의 용처를 수사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연루 혐의가 드러난 두 포스코 임원 이외에 다른 포스코 경영진한테까지 검찰의 칼끝이 미칠 수도 있단 얘기다. 순식간에 포스코가 비리의 온상으로 의심 받는 형국이다. 만일 현 경영진의 연루 의혹까지 사실로 드러난다면 현재 포스코를 이끌고 있는 권오준 회장 체제까지 흔들릴 수 있다.

포스코 수사의 전초전에 불과할 수 있다는게 진짜 공포다. 원래 검찰 수사 방식 가운데 언론과 짜고 치는 고스톱 성향도 더러 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언론이 보도하는 게 기본이지만, 언론 보도가 앞서나가면서 수사 방향을 선도하면 검찰이 그런 의혹이 있다면서 못이기는 채 수사를 확대하는 것도 수사 기법 중 하나다.

포스코 수사는 이완구 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이틀만에 전격 개시됐다. 포스코 수사가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수사라는 정황 증거다. 그렇다면 검찰의 칼끝이 겨냥하고 있는 수사 대상은 따로 있단 뜻이다. 원래가 검찰 수사는 각본 있는 드라마에 가깝다. 수사 전개 과정의 시나리오가 다 짜여진 상태에서 액션에 들어간다.

언론은 정준양 전 회장을 지목하고 있다. 정준양 회장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포스코를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포스코는 엄청나게 덩치를 불렸다. 계열사가 31개에서 71개로 두배 넘게 늘어났다. 정준양 회장이 2010년 추진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는 포스코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의 지분 60.31%를 3조3724억원에 인수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이 잘못은 아니다. 헐값인 회사를 비싼 값에 사들였다는 게 문제였다. 당연히 부채는 높아지고 자산 가치는 떨어져버렸다. 정준양 회장 재임 기간 동안 포스코는 무려 10조원을 차입했다. 결국 2014년 포스코는 20년만에 신용 등급을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후임 권오준 회장의 취임 일성이 부실 계열사 정리였던 것도 그래서였다.

검찰의 칼끝이 정준양 회장한테 미칠 경우 정준양 재임기는 요즘 포스코 내부 여론처럼 정말 잃어버린 5년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아니었단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사랑 받는 기업 선포식 같은 행사도 썩은 속내를 감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게 된다. 포스코는 다시는 윤리 경영 운운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사실 정준양 회장은 MB정부와 직결돼 있다. 그래서 언론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동태에도 주목하고 있다. 특수1부는 현재 MB정부의 자원외교비리를 수사하고 있다. 정준양 재임기 포스코는 MB정부 자원외교의 선봉장이었다. 특히 15건에 이르는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손을 댄 대우인터내셔널은 자원외교의 최전선에 있었다.

정준양 선임 과정에 MB정부의 실세들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재기되는 상황이다. 검찰 입장에선 포스코를 수사한다는 건 결국 자원외교의 본진을 친단 의미다. 포스코는 MB정부의 4대강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이쯤 되면 전선이 어디까지 넓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포스코 잔혹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말았다. 1994년 취임했던 4대 김만제 회장 이후 7대 정준양 회장까지 임기를 채운 최고경영자는 없다. 정부 지분이 전혀 없고 외국인 주주 지분이 절반이나 되는 기업이 정권의 입김에 너무 쉽게 흔들렸다.

단지 오너가 없어서가 아니다. 경영 실적보다 정권과의 거리가 더 큰 실력으로 인정받는 포스코의 경영 문화가 자초한 결과다. 정준양 회장은 그걸 바로잡겠다며 사랑받는 기업을 선포했다. 언론들은 정준양 포스코야 말로 MB정권의 사금고나 다름 없었던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그렇게 포스코는 정권의 사랑만 받는 기업이 되고 말았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