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신호 켜진 소상공인 경제

▲ 지난 17일 서울 청계천로 한국산업용재협회에서 열린 ‘소상공인·전통시장 현장 간담회’에서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 세번째)이 회의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오명주 기자

한국경제의 풀뿌리라고 할 수 있는 소상공인의 최근 경영 여건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음식업, 서비스업, 소매업, 유통업 등에 종사하는 영세상인들은 계속되는 경기악화로 여전히 매서운 한겨울에 시달리는 신세에 직면해 있다.

일부 상권에서는 폐업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으며, 경제위기 때마다 업종 전환으로 돌파구를 찾던 소상공인들도 “더 이상 업종을 바꿔도 답이 나오지 않을 만큼 경기가 나쁘다”고 아우성이다.

그나마 유동인구가 많아 장사가 그럭저럭 유지될 것 같은 서울 지역의 알짜 상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구 쇼핑타운 거리에 있는 한 상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기훈(가명·55세)씨는 “20년 넘게 한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견뎌냈지만,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되는 적도 없었다”며 “연 매출이 작년 보다 50%나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종업원을 3명이나 잘라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지방의 소상공인 경기는 거의 울상일 지경이다. 젊은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대전 궁동의 대학로에서 주점을 하고 있는 최상민(가명·46세) 씨도 “요즘 젊은 사람들의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라며 “남는 장사는 바라지도 않고 매달 월세 내는 것에 안도하며 근근이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소상공인들은 하나 같이 “조만간 ‘폐업’ 카드를 꺼내야 할지 모른다”며 현장의 심각성을 전했다.

폐업 가속화…조사마다 ‘적신호’
이는 일부 소상공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소상공인의 경영 실태는 전반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처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2월 ‘자영업자 진입 및 퇴출 추계와 특징’ 보고서를 통해 “새롭게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문을 닫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며 소상공인 폐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자영업 퇴출자는 65만6000명으로 진입자 58만2000명을 넘어섰다. 통계 수치 상으로 따진다면 7만5000명이나 되는 소상공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셈이다.
현재 휴·폐업을 고려하는 소상공인의 수치도 높게 나타나고 있어 이런 폐업 증가세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지난 1월 전국 주요도시 소상공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소상공인의 일과 생활 만족도 조사’에서 최근 1년 사이 휴폐업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24.0%로 조사됐다. 10명 중 2.4명은 휴폐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

더 큰 문제는 휴폐업 시 사업재기를 위한 위험에 대비하느냐는 질문에 39.2%가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답해 폐업 이후 소상공인들에게 안전판이 없다는 점이다.

자영업자 수는 외환위기 때 실직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면서 꾸준히 증가했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창업보다 폐업이 많아지면서 현재 하락 추세에 놓여 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국내 자영업자 현황과 업종별 생멸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근로자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2.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이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의원(새누리당)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폐업 현황에서도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자영업 폐업건수는 793만8683건에 달했다. 업계 전문가는 “매년 8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폐업 도미노로 쓰러지고 있다는 건 상당히 심각한 결과”라며 “폐업 대란에 빠진 국내 소상공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원책에 현장 애로 적극 반영해야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지난 17일 경영 위기에 빠진 소상공인 현장을 돌며 정책적인 지원책 마련에 함께 고심하기도 했다. 박 회장이 서울 청계천 주변 상권에서 만난 소상공인 대표들은 하나 같이 정부가 소상공인의 고통을 방치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박창숙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장은 “소상공인 관련 지원 정책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은행 저리융자 지원책이 많아지긴 했지만, 지원 자격을 얻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융자를 받더라도 내수부진으로 매출이 지지부진해 제때 상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현장과 떨어진 정부 정책의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이날 소상공인 관계자들은 △영세 소상공인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필요 △아웃렛·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체의 진출에 대한 골목상권 보호 필요 △적합업종 관련 이슈 확대 및 법제화 추진노력 요망 △MRO가이드라인 재지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 요청 등의 구체적인 건의내용을 박성택 회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박성택 회장은 “취임 후 첫 외부활동으로 이곳을 찾은 이유는 소상공인 현장의 생생하고 솔직한 애로를 듣기 위해서였다”며 “문제의 답은 결국 현장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소상공인 문제는 중기중앙회 차원에서 업종별로 전문화, 세분화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 사업확대…소상인 생계 침범
이날 유재근 한국산업용재협회장(중기중앙회 부회장)은 박성택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출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다들 공감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질 못하고 있다”며 “특히 지방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형마트들은 지역상권을 붕괴시켜 더욱 문제”라고 호소했다.
유 회장의 지적처럼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사업 확대는 지역상권을 초토화시키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중기중앙회가 전국 패션업종 중소기업 202개를 대상으로 ‘대기업 아웃렛 입점에 따른 지역상권 영향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대기업의 아웃렛이 들어서고 나서 인근 지역의 유사 패션업종 관련 사업자들의 84.2%가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대형 유통망을 기반으로 대형마트, 백화점에 이어 아웃렛 매장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어 지역 소상공인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에 따른 안전장치로 중소기업적합업종의 확대와 법제화 추진 등이 필요하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한 목소리다. 이와 관련 중기중앙회는 내년 초에 있을 15개 업종의 적합업종 재합의 시 제과 및 외식업을 중심으로 이슈대응에 적극 노력할 방침이며, 조속한 신규 지정확대 및 적합업종 법제화를 국회와 정부 등과 함께 논의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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