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음악에 갇힌 박진영 엔터시장 트렌드 ‘역주행’
3월23일 오전이었다. 또 <디스패치>였다. <디스패치>는 걸그룹 <미쓰에이>의 간판 배수지가 한류스타 이민호와 2개월째 열애 중이라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수지와 이민호는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데이트를 즐겼다. <디스패치>는 그들의 몰래 데이트를 몰래몰래 취재했다. 부인하기엔 증거가 명백했다. 수지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도 결국엔 열애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날 오후였다. 코스닥 상장사 JYP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곤두박칠치기 시작했다. 장초반 주당 5000원대까지 바라봤던 주가는 오후들어 4775원까지 떨어졌다. 수지의 열애설 한방으로 순식간에 시가 총액이 100억원 가까이 증발한 셈이었다.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수지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게 문제였다. 수지가 소속된 간판 걸그룹 <미쓰에이>의 컴백이 불과 일주일 앞이었다. <미쓰에이>의 컴백 성공 여부는 2015년 JYP엔터테인먼트 매출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게 자명했다. <미쓰에이>는 <2PM>과 함께 JYP엔터테인먼트의 양대 캐시카우다. <2PM>과의 계약 연장에는 성공했지만 <2AM>과의 계약은 만료됐다. <미쓰에이>가 반드시 트리플 에이급 대박을 터뜨려줘야 했다.

불안했다. <미쓰에이>는 사실상 <씨스타>나 <걸스데이> 같은 라이벌 걸그룹에 추월당한 상태다. 수지의 존재감으로 가까스로 격차를 메우고 있었다. 하필 이때 수지의 스캔들이 터졌다. 투자자들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수지의 스캔들은 JYP엔터테인먼트의 약점을 다시 한번 노출시켰다. JYP엔터테인먼트는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3대 연애 기획사로 불린다. 명성으론 어깨를 나란히 할만 하지만 숫자로만 보면 한참 기울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2014년 실적만 봐도 자명해진다. SM엔터테인먼트는 매출 2955억원에 영업이익 408억원이었다. YG엔터테인먼트는 매출 1549억원에 영업이익 231억원이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매출 485억원에 영업이익 82억원이었다. SM에 비하면 회사 규모가 6분의 1이고, YG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란 얘기다. 그나마 2014년에 턴어라운드를 해서 이 정도다. 2013년엔 JYP엔터테인먼트 홀로 25억원 적자였다.

아이러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경쟁사들보다 먼저 연습생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중의 재능들을 입도선매했단 얘기다. 아이돌 산업의 본질은 인재 비즈니스다. JYP의 눈 밝은 프로듀서 박진영은 산업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JYP를 통해 데뷔까지한 스타들은 많지 않다. 적잖은 인재들이 중도에 JYP를 떠났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걸그룹 <EXID>의 하니, <씨스타>의 효린, <시크릿>의 송지은,  <2NE1>의 씨엘, <애프터스쿨>의 레이나가 대표적이다. JYP는 아이유와 구하라도 놓쳤다. 둘다 한때는 JYP의 연습생이었다. 인재를 먼저 모아놓긴 했는데 결국 흘려버린 셈이다. 놓친 기회는 자신한텐 위기가 되고 상대한테 찬스가 된다. 자연히 JYP의 성장세는 한풀 꺾였다. 동시에 SM과 YG 같은 경쟁사들이 앞서가는 빌미가 됐다.

JYP는 <2PM>과 <미쓰에이> 같은 소수 캐시카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결국 수지 스캔들 한방으로 회사 전체가 들썩들썩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인은 음악이다. 음악 산업에 기반한 연예기획사들이 음악에 집중하는 거야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정반대다. 음악을 버려야 기획사가 산다. 이미 아이돌 시장에게 음악은 본질이 아니라 의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SM이 맨 먼저 이걸 간파했다. SM은 조립식 음악을 만든다. 전세계 작곡자들한테 음악을 수입해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고 소속 아이돌들에게 하나씩 입혀본다.

제조업 공장에 가깝다. 이게 SM 컨텐츠의 약점이긴 하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예술적인 자유로움이 부족하다. YG가 SM의 음악 제조 공정에 예술가적인 포장까지 덧붙였다. YG 소속 아이돌들이 끊임없이 아티스트처럼 구는 이유다.

거꾸로 JYP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흐름에 역행한 셈이었다. JYP연습생들이 JYP를 떠난 이유도 대부분 JYP와 음악적 방향이 달라서였다. JYP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박진영은 추구하는 음악 성향이 분명하다. 한때 박진영은 분명 미다스의 손이었다. <원더걸스>의 텔미나 <2PM>의 하트비트를 써낼때만 해도 그랬다. 후크송의 원조도 박진영이다.

그렇게 JYP는 원맨 프로듀서 체제에 가깝게 운영되면서 다양성을 상실했다. 누구도 영원히 유행의 첨단에 서 있을 순 없다. 이미 음악 시장은 전혀 박진영 이후 세대의 젊은 작곡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박진영이 경쟁사 프로듀서들보다 음악적 색깔이 강하고 재능이 특출났던 탓에 JYP는 SM 같은 오픈 이노베이션에 무심해지고 말았다. 흐름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연연하다 혁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열애설로 주가가 진동한 게 JYP만의 약점은 아니다. 아이유의 열애설이 터지자 소속사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사흘 동안 4% 넘게 빠진 적도 있었다. 엔터 대장주인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역시 각종 스캔들로 주가가 흔들려본 경험이 있었다. 시장은 JYP를 더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수지 탓만은 아니다.

- 글 : 신기주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사라진 실패」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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