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기업은 성공불융자금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조사 받고 있다. 경남기업은 석유공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 캄차카 서부 육상 이차 광구에 대한 석유 탐사 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시기에 큰 기대를 모았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각종 비리와 대규모 손실로 얼룩지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시공능력평가순위 26위, 협력업체가 1400여개에 이르는 경남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검찰은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을 수사 중이다. 경남기업이 해외석유개발 사업 등의 명목으로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 등으로부터 거액의 융자금을 받는 과정에서 횡령과 배임 등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기업은 러시아 캄차카 석유광구 탐사 등 8건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석유공사로부터 330억원의 성공불융자금을 제공받았다. 성공불융자금 제도란 자원개발처럼 위험도가 높은 사업의 위험을 정부가 나눠 부담해 준다는 차원에서 사업이 실패할 경우 정부가 빌려준 융자금 전액을 감면해 주는 제도다.

또한 경남기업은 마다가스카르 니켈광산 개발 사업을 위해 광물자원공사에서 130억원을 일반 융자 형태로 지원받기도 했다.
검찰은 경남기업의 자금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성 회장의 측근인 한 모 부사장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각종 의혹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경남기업은 지난 2006년 러시아 캄차카 사업 계약을 계기로 47억원의 성공불융자금을 받았으며 이후 꾸준히 늘려 나가다가 2008년에는 250억원을 추가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남기업은 1년 뒤인 2009년 건설업체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 판정을 받고 부실기업으로 분류됐고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경남기업의 성공불융자금은 계속 늘었고 2009년에도 40억원대의 성공불융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재무상태가 좋지 못한 경남기업이 정부에서 융자받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측은 부실기업으로 분류됐음에도 불구하고 융자를 지속적으로 받은 만큼 회계 서류 등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욱이 검찰의 수사 방향이 당초 경남기업이 자원외교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휘말린 성공불융자금과 일반 융자금 비리 의혹에서 점차 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경남기업 계열사 여러 곳에 대한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국세청과 관세청에서 받은 세무조사 결과 외환 거래 내역을 토대로 경남기업 담당 직원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경남기업 특수관계인이 대주주이거나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가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성완종 회장의 부인이 소유한 하청업체 코어베이스와 계열분리 업체 체스넛 등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계열사를 동원해 하청업체에 줄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자금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이에 성완종 회장의 부인 동 씨를 소환해 조사했으며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된 동 씨는 경남기업 비자금 조성 창구로 의심되는 코어베이스·체스넛 등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이 조만간 성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자본잠식에 해외 자원개발사업 비리 의혹 관련 검찰 조사까지 받고 있는 경남기업이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법은 경남기업이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경남기업은 워크아웃 절차 진행과 건설업황 저조세로 신규 수주 등이 감소해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제출한 것.

또한 워크아웃 진행 과정에서 주요자산 매각이 지연된 것도 회생절차 개시 신청의 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경남기업은 채권단에 930억원의 전환사채 출자전환과 긴급 운영자금 1100억원 지원을 요청했지만 자금지원안이 부결된 바 있다.

상황이 이에 다다르자 입지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 성완종 회장의 성공신화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에 아버지가 새엄마를 들이면서 다음해 초등학교를 중퇴했다. 후처에 밀려 서울로 식모살이를 간 엄마를 찾아 나선 그의 주머니에는 달랑 100원이 있었다.

특히 1960년대 후반인 23세에 1000원을 밑천 삼아 화물중개업을 시작했으며 자본금 200만원으로 26살에 건설업(서산토건)에 뛰어들었다. 1982년 대아건설을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하며 한때 2조원대 매출을 찍자 언론은 ‘입지전적 인물’이란 말로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경영난과 검찰 수사로 또 위기에 몰리면서 어쩔 수 없이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성 회장은 “젊음과 피땀을 바쳐 이룬 회사지만 회사와 직원들을 살릴 수 있다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려 놓겠다”고 밝혔다. 경남기업은 성 회장의 또 다른 분신이다. 

- 글 : 김규민 기업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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