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긴 건 SW 아닌 HW일 뿐 ‘제2 토종 또봇’ 시간문제
또봇이 또 팔렸다. 중국계 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이 영실업의 인수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영실업은 애니메이션 <또봇>을 기획하고 완구 또봇을 제조한 완구회사다. 또봇 완구는 4세부터 5세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가히 람보르니기급 인기 상품이다.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의 영실업 인수 타이밍은 완벽하다. 5월이면 <또봇>의 중국 본토 공략이 개시된다. 애니메이션 <또봇>은 5월1일부터 어린이TV채널 툰맥스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동시에 또봇 완구도 베이징과 상하이의 주요 백화점을 통해 유통된다.

애니메이션 <또봇>은 이미 동남아에 방영돼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 대박에 이어 해외 대박도 기대해 볼만한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은 오랫동안 공들여온 최대 시장이다. 결국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은 영실업이 다 차려놓은 밥상 위에 숟가락만 얻는 왕서방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영실업은 역시 중국계 사모펀드인 헤드랜드캐피털 파트너스의 소유다. 사실 헤드랜드는 이번에 퍼시픽얼라이언스에 영실업을 매각하는데 성공하면 먼저 왕서방이 된다. 퍼시픽얼라이언스의 영실업 인수예정가는 250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헤드랜드캐피털은 2012년 12월 영실업을 600억원에 사들였다. 인수 2년여만에 19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셈이다. 세배 장사다. 왕대박이다.

또봇이 예상대로 중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다면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은 수년 안에 영실업을 재매각할 공산이 크다. 차익실현을 위해선 필연적이다. 그때쯤 중국 실적까지 더해진 영실업의 시장가는 비약적으로 커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헤드랜드가 벌어들인 1900억원의 시세차익은 지난 2년여 동안 한국 시장에서의 성과와 아직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당연히 수년뒤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의 재매각 가격도 똑같은 셈법을 따를 공산이 크다.

허점이 하나 있다. 영실업이 <또봇> 애니메이션과 3단 변신 또봇완구를 처음 선보인 건 2009년이었다. 당시 영실업은 완구산업의 풍운아 김상희 대표가 경영하고 있었다. 지금의 영실업이 1980년 김상희 대표가 창업한 영실업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김상희 대표는 원래 영실업을 2007년 5월 118억원에 비전하이테크에 매각했다. 누적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내린 고육책이었다.

비전하이테크는 영실업을 통해 코스닥에 우회 상장됐다. 그 뒤로 영실업은 코스닥 기업 사냥꾼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영실업은 슈퍼개미 비초를 필두로 서너명의 선수들 손을 타다가 끝내 상장 폐지됐다.

대신 김상희 대표는 2008년 새로운 영실업을 창업했다. 말하자면 영실업 2단 변신이다. 또봇을 만들어서 기적처럼 영실업을 재건했다. 그런데 또봇은 기적이 아니었다. 한국 완구 시장의 한계와 약점을 꿰뚫어본 전략적 성공이었다. 완구가 애니메이션과 합체해야한다는 건 상식이 된지 오래다. 일본 반다이가 만들어낸 성공방정식이다.

김상희 대표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방송국이 주도권을 쥐고 완구 회사는 장난감 판매라는 부가판권만 챙기는 반다이 모델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걸 체득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완구를 고려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기 일쑤였다. 어린이들은 만화에서 본 것처럼 작동하지 않는 완구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완구 제작 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방영을 해버리는 방송국 탓에 힘들게 장난감을 시장에 내놓아서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새로운 영실업은 완구 회사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이미 영실업이 만들어놓은 로봇을 캐스팅하는 형태였다. 완구 회사가 컨텐츠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애니메이션과 완구 회사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또 또봇은 6,7세 위주인 반다이의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와 3,4세 위주인 로이비쥬얼의 <로보카폴리> 사이 시장을 정밀 타격했다. <또봇>은 정확하게 4,5세 위주다. 영실업한텐 완구 공장이 없다. 완구제조사라기보단 완구기획사다. 제조는 아웃소싱한다. 애플 모델이다. 영실업은 자기만의 성공방정식을 완성했다. 영실업의 진짜 기업 가치는 또봇이 아니라 이런 성공 경험에 있단 뜻이다. 홈런을 친 선수가 또 홈런을 치기 마련이다.

정작 헤드랜드에 인수된 뒤 영실업은 또봇 같은 홈런을 또 만들어내지 못했다. <바이클론즈>는 <또봇> 정도는 아니다. 아직은 <또봇>이 곧 영실업이다.

원인은 왕서방들이다. 중국계 사모펀드들이 넘치는 차이나머니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 인수에 관심을 가진지는 오래됐다. 모두가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소비재 기업을 인수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중국 진출로 매출을 키워서 차익을 실현하겠다는 동일한 전략들이다. 영실업이 대표적이다.

단기차익이 목적인 왕서방들은 황금알을 낳는 법보다 황금알에 더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실업은 황금알을 낳는 법을 알고 있는 기업이다. 어렵게 찾아낸 한국 완구의 성공방정식을 갈고 닦으면 일본의 반다이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수도 있다.

왕서방의 단기 자금들을 기반으로 추구하기엔 왕 큰 장기 비전이다. 영실업이 3단 변신을 완성하기 위해선 결국엔 왕서방을 대체할 진짜 주인이 필요하다. 그게, 영실업 델타트론이 되는 길이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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