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꿈꾸는 사람들] 삼진기업

삼진식품의 박종수 대표는 창업주의 4남으로 1986년 7월 대표로 취임한 이래 2대째 가업을 이어 가며 지금까지 어묵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또한, 박종수 대표의 장남인 박용준 실장이 박대표의 가업을 잇기 위해 3년 전부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온 박재덕 창업주가 1950년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에서 어묵 제조를 시작해 1953년 ‘삼진어묵’이라는 간판을 내건 것이 그 역사의 시작이다. 부산어묵의 원조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산어묵 제조업체로서, 변함없는 자부심과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선하고 위생적인 어묵 개발에 매진 중이다.

부산 어묵 시대를 열다
100% 수제 어묵만을 생산·판매하는 부산 영도 제1공장과 HACCP(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 식품의 생산부터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에서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요소가 해당 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 시스템)에 입각해 완공한 장림 제2공장을 필두로 하루 20톤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생산을 지속하며, 삼진식품만의 유일무이한 수제어묵 제품을 끊임없이 탄생시키고 있다.

삼진식품의 성장은 부산 지역 어묵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50년대를 넘어 60년대 초 어묵 수요가 더욱 크게 증가하자 삼진식품에서 기술을 배운 기술자들이 제 살길을 찾아 대거 독립하기 시작했고, 환공어묵, 영진어묵 등의 업체들이 삼진의 뒤를 이어 호황을 누렸다. 부산 이곳저곳에 어묵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삼진식품의 기세 앞에서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시대를 잘 만난 덕도 있겠지만, 삼진식품이 시작부터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데는 그 나름의 법칙이 있었기 때문. 박종수 대표는 “삼진어묵이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재료와 높은 어육 함량이라는 두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라며 창업주의 기업정신을 앞서 강조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보통의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마진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겠지만, 삼진식품은 이윤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오직 어묵의 품질에만 몰두했다. 품질 우선의 정신은 어묵 제조 방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00% 수제 공정으로 운영되는 영도 제1공장에는 전통 방식 그대로 맷돌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제조되는 어묵 고로케는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위생적인 대량 생산을 위해 신설한 장림 제2공장에서도 연육 함량 70% 이상의 제품 기준을 지켜간다. 연육의 높은 질 또한 삼진식품의 특장점이다. 풀치, 돌돔, 알래스카산 명태 등 최고급, 최고가의 재료만을 공수하며,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최고의 장인들이 전통 방식에 따라 재료를 꼼꼼히 다루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삼진식품에도 위기가 있었으니, 박종수 대표가 가업을 승계하던 시점이다. 1986년, 건강이 악화된 박재덕 창업주가 가업을 이어받을 자녀를 불러들였다. 그가 바로 4남의 막녀였던 박종수 대표였다.

다른 업종과 사업에 몸담고 있던 아들들이 뒤늦게 가업에 손댈 수는 없던 터라 그나마 젊고 승계 의지가 있던 막내가 가장 듬직했던 것. 어묵 공장에서 나고 자라며 보고 배운 게 어묵 제조였으니 큰 부담은 없었으나, 박종수 대표는 승계와 동시에 위기를 타개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박종수 대표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부산 지역을 다시 휘어잡으며, 매출은 매년 30~40%씩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승계 이후 한번의 후퇴 없이 꾸준한 매출 증가를 보이던 삼진식품은 2011년에 제2공장 신축으로 생산 규모를 대거 증대하며 본격적으로 전성기의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제2공장 신축이 한창이던 2011년 말, 미국 공인회계사 출신인 박 대표의 장남 박용준 씨가 사업에 가세하면서 매출은 더욱 가파른 속도로 증가했다. 2011년 20억, 2012년 40억, 2013년 80억의 매출로 해마다 매출 100%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2014년 역시 상반기에만 60억원 이상을 달성했다. 이렇듯 박종수, 박용준 부자는 성공적인 승계의 선례를 완성해가고 있다.

미래어묵산업을 준비하다
3대 박용준 실장이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을 찾았을 때는 주변의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어묵 업계에 갑작스레 뛰어든 젊은이의 패기가 남들 눈에는 다소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다.

“미국 뉴욕주립대학을 나와서 회계사로 일하다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오게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협심증에 공황장애까지 앓고 계셨는데, 위기감을 느끼셨는지 함께 공장을 운영해볼 것을 권유하시더군요. 처음 부산에 왔을 때, 좋은 직장 그만 두고 한계에 다다른 어묵 산업에는 뭐하자고 발을 들이느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 한계 앞에서 오기를 가지고 고민을 시작한 겁니다. 어묵 집안의 승계자로서 사명감이 생겼거든요.”

어묵 산업을 이끄는 주류 기업으로서 앞장서 어묵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업의 전통은 지키되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과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을 개발해 어묵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선도한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인종차별, 학벌차별을 겪으며 아웃사이더 같은 기분이 들곤 했어요. 하지만 부산에는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고, 또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에 절로 의지가 생기더라고요. 처음부터 승계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하나씩 의지대로 이뤄갈수록 가업을 승계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삼진어묵의 명성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번져가고 있다. 동남아와 미국, 호주로 수출을 비롯해 어묵의 종주국인 일본까지 역수출이 될 정도. 그간 3대가 이끌어온 담백한 부산 어묵의 맛, 이제 그 담백하고 명료한 기업 정신으로 한국 어묵의 미래를 이끌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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