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 백릿길 하동야생차 구간을 걷는 여행자들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고운 햇살 담긴 차 한잔 나누고 싶은 봄날이다. 좋은 차 한모금을 머금으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 향기가 입안에 퍼져 거친 말을 뱉을 수 없고, 맑은 찻물을 내려다보며 마음까지 겸손해진다. 차 맛을 위해 평생을 바친 제다 명인을 만나러 하동 화개로 간다.

‘왕의 차’ 재배지, 화개동
하동 야생차의 시작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고, 왕은 지리산 화개동 일대에 심으라고 명한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가 화개동에서 재배됐다. 하동의 야생차를 ‘왕의 차’라 부르는 까닭이다.

지리산 화개동은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곳으로, 지금도 양안의 산자락 곳곳에는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을 덖는 다원이 있다.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든 안개를 먹고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향이 좋은 차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다원까지 20여곳에 이른다.

그중 화개제다는 화개동에 자리한 많은 다원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홍소술 명인(대한민국 식품명인 30호)은 1950년대 말 우연한 기회에 하동의 야생차를 마신 뒤, 부산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화개동으로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높은 값으로 찻잎을 수매하고, 차나무 종자를 산에 심게 했다. 밭농사를 주로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차나무를 심으며 화개동 일대가 야생차 밭이 됐고,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올해 86세인 홍소술 명인은 좋은 차나무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찻잎을 따던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찻잎을 덖은 100년 넘은 가마솥은 선친이 쓰던 것으로,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다.

쌍계제다는 하동 야생차의 명성을 전국에 알리며 다양한 전통차를 만드는 김동곤 명인(대한민국 식품명인 28호)이 운영하는 다원이다.

화개동 토박이로 1975년 쌍계제다를 설립하고, 차를 덖는 일뿐 아니라 차와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쌍계제다에서 만든 녹차와 전통차, 다양한 허브티와 한방차는 티이즘(teaism)이라는 브랜드로 포장돼 전국 백화점에 매장을 두고 있다. 대기업의 차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좋은 차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찻잎을 수확하는 시기에 따라 곡우(양력 4월20일경) 전에 따는 초세작, 그 이후에 따는 세작, 5월 중순에 따는 중작, 그 이후에 따는 대작으로 나뉜다. 초세작부터 중작 정도면 좋은 차를 만드는 데 손색이 없는 것으로 친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초세작으로 만든 차도 덖는 과정에서 잘못되면 차 맛을 버리고, 중작도 잘 덖으면 맛과 향이 좋은 차가 된다.

차의 모든 것…칠불사·차문화센터
칠불사는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깃든 고찰이다. 다도 이론을 정립하고 차 문화를 꽃피운 초의선사가 이곳에 머무르며 책을 쓰고, 그 유명한 ‘동다송’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다가 복원된 아자방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와 대웅전 뒤편으로 조성된 야생차 밭이 눈길을 끈다.

하동 차 시배지에 가면 화개동 일대에 처음 차나무를 심은 김대렴 공의 추원비가 있다. 언덕을 따라 심긴 차나무 사이를 걸으며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음미하고,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화개천 물줄기를 조망하는 즐거움도 누려보자.

차 시배지 아래 자리한 하동 차문화센터는 하동 차 재배의 역사를 비롯해 차를 우려 마시는 다구 등을 전시한 차문화전시관과 차체험관으로 구성된다. 차체험관에서는 차 덖기를 비롯해 떡차 만들기, 다식 만들기, 다례 체험 등이 상시 진행돼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차와 찻잔은 불가분의 관계다. 좋은 찻잔은 차의 떫은 맛을 부드럽게 만들고, 찻잔의 촉감과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해 오감을 즐겁게 한다. 진교면의 백련리 도요지는 조선 시대 가마터로,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살던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전한다. 일본이 국보로 자랑하는 이도다완의 원류를 백련리 일대로 보는 이들도 있다.

지금도 여러 도예가들이 백련리 일대에 자리 잡고 혼을 담은 도예 작업을 한다. 그중 길성도예는 일본까지 명성이 자자하다. 폐교된 초등학교에 작업 공간을 마련하고, 평생에 걸쳐 작업한 도예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길’과 차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한옥 다실을 지었다. 차와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그윽한 다향을 음미할 수 있다.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하동 구간은 화개장터에서 하동송림공원이 있는 섬진교를 잇는 약 21km 길이다. 총 네구간으로 나뉘며, 구간마다 특색 있는 이야기를 담고 조성됐다.

화개장터에서 녹차연구소까지 야생차 구간(3.2km)은 대숲과 야생차 밭이 어우러진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부드러운 강바람을 맞으며 하동의 봄날이 깊어간다.

■여행정보
○당일 여행 코스
칠불사→쌍계사→차 시배지→하동 차문화센터→쌍계제다→화개장터→화개제다→백련리도요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날 / 칠불사→쌍계사→차 시배지→하동 차문화센터→쌍계제다→화개장터→화개제다→백련리도요지
둘째날 /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걷기→하동송림공원
○관련 웹사이트
 - 쌍계명차(쌍계제다) www.sktea.com
 - 하동 문화관광 tour.hadong.go.kr
 - 칠불사 www.chilbulsa.or.kr
○문의 전화
- 쌍계제다 055-884-8100
 - 화개제다 055-883-2233
 - 칠불사 055-883-1869
 - 하동 차문화센터 055-880-2895
 - 길성도예 055-883-8486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77
○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구례구역, KTX 하루 2회(05:20, 13:50) 운행, 약 3시간 소요. 구례구역에서 구례-구룡 농어촌버스 승차, 구례터미널 정류장에서 구례-중한치 농어촌버스로 갈아타고 하천리 정류장 하차, 약 1시간50분 소요.
[버스] 서울남부터미널-화개시외버스공용터미널 하루 10회(06:30~22:00) 운행, 약 3시간50분소요.
○자가운전 정보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화엄사 TG→산업로 따라 약 7.8km 진행→하동·화엄사·마산·토지 방향 우측 도로→구례로 따라 약 14.9km 진행→화개삼거리에서 쌍계사 방향 좌회전→화개로 따라 약 280m 진행→쌍계제다 시음 공방
○축제와 행사 정보 : 하동야생차문화축제 : 2015년 5월22~25일, 화개면·악양면 일대, 055-880-2377, festival.hadong.go.kr
○주변 볼거리 : 불일폭포, 청학동, 삼성궁, 평사리공원오토캠핑장, 화엄사, 청매실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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