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연 걸린 듯 전방위 비리 의혹

50년 전 박범훈은 피리 부는 사나이였다. 중학교 시절 트럼펫을 불었던 박범훈은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리와 인연을 맺었다. 당대의 피리 대가들을 사사하며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박범훈은 스승 지영희 선생의 피리 가락에 서양식 작곡 개념을 도입했다. 이게 오늘날 국악 피리의 교본으로 통하는 박범훈류 피리 산조의 출발이다. 박범훈이 작곡한 피리 산조 <신모듬>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국악창작곡으로 선정됐다. 박범훈의 피리는 듣는 이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소리로 유명했다.

박범훈은 2005년 2월 중앙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중앙대학교는 김희수 재단이사장이 운영하고 있었다. 김희수 이사장은 재일교포다. 일본 자금을 끌어와서 중앙대를 인수했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졌다. 처음에 중앙대에 대한 투자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김희수 이사장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박범훈 총장이 해결사로 나섰다. 여러 재벌들과 중앙대 인수 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위기의 중앙대를 구할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다. 2008년 박범훈 총장은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를 성사시킨다. 누가 봐도 성공적인 빅딜이었다.

그해 중앙대학교에 지원한 수험생 숫자가 이례적으로 폭증할 정도였다. 100년 역사의 두산그룹이 마침내 중앙대학교를 통해 육영사업이 참여한다는 것도 상징적이었다. 박범훈 총장이 중앙대학교를 명문대로 도약시킬 기틀을 마련했단 평가를 받았다. 박범훈의 피리 산조가 흑석동에 울려퍼지는 형국이었다.

박범훈의 피리 소리에 흑막이 있었다는 의혹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2008년 중앙대학교를 1200억원에 인수했다. 2007년 당시 두산그룹 박용오 명예회장과 7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년 사이에 뚜렷한 이유 없이 두 배 가까이 인수가격이 높아졌다.

두산그룹 이외에 다른 재벌도 중앙대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박범훈 당시 총장이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폭등한 인수가격과 연결되면서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범훈 총장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현직 총장의 행보로는 이례적이었다. 2011년 2월 중앙대 총장을 그만둔 뒤엔 이명박 청와대의 교육문화수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2011년 중앙대학교는 교육부로부터 두개의 특혜성 혜택을 받는다. 2011년 7월 서울본교와 안성분교를 통합시키는데 성공한다. 분교에서도 본교를 졸업한 것과 같은 효력이 생겼단 뜻이다.

사실상 중앙대의 서울 정원이 그만큼 늘어난 효과가 있다. 그만큼 대학 교육 수요자인 수험생들 사이에서 중앙대의 인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론 대학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대학 서울캠퍼스의 정원은 수도권 규제의 일부로 단단히 묶여있다.

그런데 교육부가 본교와 분교의 통폐합을 허용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건 2011년 3월이었다. 박범훈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지 불과 한달만이다. 중앙대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2011년 4월 본분교 통합을 결의했다. 2011년 6월 법안이 통과됐고 2011년 11월 양 캠퍼스가 통합됐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일이 불과 반년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박범훈 당시 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반대하는 교육부 직원을 좌천시켰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또 있다. 중앙대학교는 2011년 정권 60명인 간호학과를 정원 240명인 적십자간호대학과 합병했다. 원래 수도권정비법에 따르면 이런 합병의 경우 정원을 줄이게 돼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2012년 2월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덕분에 정원 300명이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중앙대학교에 특혜를 준 꼴이 됐다.

지난 수년 동안 중앙대학교는 경쟁대학교에 비해 광폭 행보를 거듭해왔다. 두산그룹은 중앙대학교를 기업화시키기 위해 속도를 내왔다. 컨설팅을 좋아하는 두산답게 컨설팅회사 액센츄어에 의뢰해서 중앙대 개혁안을 마련했다. 2016년도부터 학과제를 폐지하고 단과대별 신입생을 모집하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을 추진했다가 극심한 학내 내홍을 겪었다.

두산그룹에 인수된 이후 중앙대학교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래도 믿음은 있었다. 재단과 학교가 중앙대학교라는 교육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생산적 쟁투를 벌이고 있다는 믿음 말이다. 방향은 달라도 서로 선의는 공유하고 있을거란 믿음 말이다. 반대편에서조차도 중앙대학교가 대학교육 혁신의 첨단에 서려고 애써왔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 대학이 어떤 식으로든 변해야 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어쩌면 이 모든 게 한낱 박범훈의 피리 소리에 홀린 난리법석이었을지도 모르게 됐다. 심지어 부인 명의로 동대문 두산타워에 상가를 분양 받았다거나, 딸의 중대 교수 임용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나, 고향 양평에 개인 자격으로 세운 중앙국악연수원을 통해 정부 보조금을 유용했다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이런 저질 개인 비리까지 드러나면, 오직 모교 중앙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변명조차 통할 수 없게 된다. 50년 전 청아했던 박범훈의 피리는 혹세무민의 만파식적으로 변질돼버리고 말았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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