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張’추문 겹쳐 풍전등화
동국의 철기 시대는 끝났다. 지난달 24일 동국제강은 중구 수하동의 사옥 페럼타워를 삼성생명에 4200억원에 매각하기로 계약했을 때 기둥이 뽑혔다. 이번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횡령과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면서 깃발까지 꺾이고 말았다. 장세주 회장은 가까스로 구속은 면했다. 동국제강은 이미 오너 부재의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간 상태다. 풍전등화다.

페럼은 라틴어로 철을 뜻한다. 페럼타워는 동국제강이 창사 이래 본사로 사용했던 수하동 건물을 2007년 재개발한 빌딩이다. 동국제강의 34년 역사가 응축된 건축물이다. 동국제강의 자존심이었다. 동국제강은 유동성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페럼타워를 매각하고 말았다.
소용없었다. 페럼타워 매각으로 부채비율은 207%에서 177.6%로 다소 줄었다. 실적 부진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동국제강은 2012년부터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2014년 당기순손실은 2299억원에 달했다. 금융권에서 페럼타워뿐만 아니라 골프장 페럼클럽 매각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던 이유다. 패럼타워 매각에도 불구하고 한국신용평가는 동국제강의 신용등급은 A-에서 BBB로 강등했다. 부정적이란 뜻이다. 한푼이 급한 동국제강한텐 악재였다. 동국제강의 총차입금은 3조원대를 넘어선지 오래다.

동국제강이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린 건 후판 탓이다. 철강제품 중에서도 후판은 두께가 6mm가 넘는 두꺼운 제품을 일컫는다. 주로 배를 만들거나 다리를 놓을 때 쓰인다. 동국제강은 후판의 원조다. 1971년 한국 최초로 후판을 생산했다. 한국 조선산업이 성장하자 동국제강도 동반성장했다. 후판이 오늘의 동국제강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동국제강의 후판 사랑도 유난했다. 창업주 장경호 회장부터 2대 장상태 회장까지 후판 생산 설비를 꾸준히 증설해왔다. 3대 장세주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업 불황이 문제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후판의 주요 수요처인 조선업황이 악화됐을 때 불길이 동국제강으로 옮겨붙는 건 누가봐도 시간문제였다. 정작 동국제강은 오히려 후판 생산 시설을 확장했다. 이미 2006년에 1조원을 들여서 인천 후판3공장을 증설했다. 여기에 2009년 인천공장에 5000억원을 더 투자했다. 현재도 브라질에 1조원을 들여서 뻬셍철강(CSP) 제철소를 짓고 있다.

원래 위기일 때 투자를 늘리는 쪽이 위기가 끝났을 때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법이다. 위기에 투자하는 게 나쁜 게 아니다. 이번엔 위기의 양상이 달랐다는 게 문제였다. 조선업과 후판 철강의 동반 부진은 중국 조선업과 후판 철강업체들의 급성장과 관련이 있었다. 위기의 요인이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동국제강이 위기에 투자를 늘려도 위기의 지배자가 되기보단 위기의 피해규모만 키우기 쉬웠다. 장세주 회장은 후판에 집착했다.

브라질 CSP 제철소는 원료 공급처와 남미 후판 수요를 노렸다는 점에선 적절한 전략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포스코의 인니 제철소와 유사한 맥락이다. 브라질 북동부의 중공업 산업단지인 세아라주에 위치한 CSP 제철소 역시 후판이 주생산 품목이다. CSP엔 동국제강과 포스코와 브라질 철광석 채굴업체 발레가 공동출자했다. 문제는 자금 흐름이었다.

동국제강은 CSP 제철소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CSP 제철소는 빨라야 올해 말에나 완공 될 예정이다. 조선업 불황이 후판 불황을 촉발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들어오는 돈은 말라버렸는데 나갈 돈은 많으니 동국제강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도 채권단과 업계는 동국제강을 가혹하게 몰아붙이진 않았다. 동국제강은 1년전인 2014년 6월부터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재무 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올해초 동국제강이 형제 회사인 유니온스틸을 합병한 것도, 끝내 페럼타워를 매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동국제강의 후판 올인 전략은 외통수에 가까웠다. 어차피 중후장대한 철강 산업의 특성상 동국제강이 3M처럼 획기적으로 주력 산업을 바꾸긴 쉽지 않다.

장세주 회장처럼 선대의 유지를 받들지 않았어도 후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단 얘기다. 그래서 채권단도 당분간은 동국제강의 자구 노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강 산업의 전략적 한계와 기간산업적 중요도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 이때 장세주 회장의 횡령과 원정 도박 사건이 터져버렸다. 사실 장세주 회장은 재벌계의 타짜라고 불릴정도로 도박을 즐겨온 걸로 알려졌다. 시한 폭탄이었단 얘기다. 검찰은 장세주 회장이 회사 돈을 횡령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 자금으로 썼다고 보고 있다.

장세주 회장은2004년 회사 돈으로 개인 채무를 갚은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이번처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횡령 혐의였다.

장세주 회장은 법원의 영장 실질 심사가 있기 5시간 전에 105억원이나 되는 횡령액을 한꺼번에 입금시켰다. 후판에 집착하면서 회사를 3조 원대 부채 기업으로 만든 최고경영자로선 낯부끄러운 짓이다. 덕분에 피해는 동국제강이 보고 있다.

동국제강은 채권단과 업계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이제부터 동국제강의 위기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다. 신용의 위기다.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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