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삼성, 이건희 부재 1년

2014년 5월10일 저녁 10시56분 경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한남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일단은 주치의가 있는 강남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상황이 너무 긴박했다. 결국 자택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이건희 회장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겨우 맥이 돌아왔다. 다시 구급차에 실려서 강남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어느새 날이 바뀌어 있었다. 2014년 5월11일 새벽 0시15분 경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급성 심근경색의 치명적 후유증인 뇌손상 만큼은 피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강남삼성병원 의료진은 11일 새벽 0시40분부터 2시간여 동안 저체온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의 체온을 32도 안팎으로 낮춰서 일종의 동면 상태를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피가 뇌에 몰리는 걸 막아준다. 의료진은 뇌손상을 예방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1년이 지났다. 이건희 회장은 지금도 강남삼성병원 20층 VIP병실에서 투병 중이다. 이건희 회장의 병세는 꾸준히 호전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심근경색을 일으켰던 심장을 비롯해서 신체 기능 대부분이 안정적으로 회복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낮에는 휠체어 운동 같은 재활치료도 시작했다. 밤에는 7시간 이상씩 수면을 취하고 있다.

인지 기능이 문제다. 이건희 회장은 주변의 자극에 어느 정도 반응은 하지만 의사 결정을 할 정도로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다. 2015년으로 접어들면서 ‘회장님’이라는 주변 소리에 시각 반응을 보였다고 알려진 게 희소식의 전부다. 당연히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경영에는 전혀 간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희 없는 삼성이 1년째 지속되고 있단 의미다.

원래가 이건희 회장은 매일 출퇴근을 하는 농사꾼형 CEO는 아니었다. 한남동 자택과 승지원에 머물면서 업무 보고를 받고 외부 인사를 만나면서 깊은 통찰을 얻고 넓은 화두를 던지는 비저너리형 CEO였다. 이건희 회장의 통찰은 곧 삼성의 미래전략이 됐다. 대신 일상적인 경영 대소사는 거의 대부분 전문경영인한테 맡겼다. 계열사 사장단과 그룹 미래전략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그룹 내부에 유기적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 놨다. 이건희 부재가 당장 삼성의 경영 혼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구조적인 요인이다.

비저너리형 리더 ‘이건희’
지난 1년만 놓고 보면 이건희 회장이 없어도 삼성그룹은 건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다. 21세기 기업간 경쟁은 비저너리들의 각축장이다. 이른바 통찰력 전쟁이다. 21세기는 선견지명의 시대다. 20세기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주요 제조업들은 대부분 지식기반산업으로 진화했다. 숙련 기반 기술만큼이나 지식 기반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식기반기업은 반드시 미래와 현재, 통찰과 조직, 비전과 실행이라는 두바퀴로 달린다. 통찰만 있고 비전을 실행할 조직이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 거꾸로 조직만 있고 통찰이 없으면 하청 공장으로 전락한다. 삼성과 애플 같은 초일류 기업들은 예외 없이 비저너리와 실행 조직이라는 두바퀴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전세계 제조업은 동시다발적 패러다임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20세기 내내 자동차는 내연 기관이었다. 이제 기업들은 전기자동차냐 수소자동차냐를 놓고 선택을 해야만 한다. 컴퓨터만 해도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시계로 끊임없이 분화되고 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술경영 환경이 펼쳐지고 있단 말이다. 어떤 기술이 시장을 지배할 지 통찰해내는 자가 미래의 주인이 된다. 지금은 기술의 거대한 변곡점이다. 어느 때보다 비저너리가 절실하다.

이건희 회장의 공백이 더 커보이는 이유다. 이건희 회장은 탁월한 비저너리였다. 스티브 잡스처럼 청바지 입고 뉴발란스를 신고 화려한 프리젠테이션만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비저너리는 현재의 이곳저곳에 흩어진 미래를 조각 맞춰서 다가올 내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존재다. 선견지명이다. 잡스한텐 자신이 읽어낸 미래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전달력이 있었고 이건희 회장은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의 디지털 혁신과 2000년대의 반도체 혁신과 2010년대의 스마트폰 혁신을 고비마다 삼성에 정확하게 비전을 제시해줬다. 물론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 된 게 이건희 회장 혼자만의 업적은 아니다. 이건희 회장이 멀리 볼 수 있었던 것도 삼성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건희라는 비저너리가 없었다면 삼성도 길을 찾는 건 어려웠다.

이건희 회장이라고 날 때부터 선견지명을 가졌던 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1일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사 내용은 진부하다. “우선 본인은 삼성이 지금까지 쌓아 온 훌륭한 전통과 창업주의 유지를 계승하여 이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문구가 맨 앞에 등장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같은 표현도 등장한다. 취임사 속에 이건희의 비전은 없다. 이병철의 후계자만 있을 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할 때쯤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이젠 너무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곤 다 바꿔라”는 어록도 이 때 나왔다. 그만큼 기업에 확신에 찬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경영자로 변신해 있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5년 동안 이건희 회장은 말라깽이가 될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겨우 선견지명을 얻었다.

갤럭시S 시리즈 이후
지금 삼성은 애타게 비저너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년 동안 삼성전자는 갤럭시S5와 갤럭시S6를 차례로 출시했다. 갤럭시S5는 실패했다. 처음엔 스마트폰 시장의 포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애플의 아이폰6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분석이 무색해졌다. 아이폰6가 흥행한 건 이제까지 삼성이 쥐고 있던 일반 대중 시장을 잠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삼성 역시 갤럭시S6로 애플의 안방을 노렸다. 원점에서 다시 개발했다. 결국 갤럭시적인 갤럭시가 아니라 아이폰적인 갤럭시를 만들었다. 훌륭한 역공이었다.

제품에 대한 평가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런데도 판매 실적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한국 시장에선 단통법 핑계가 흘러나오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제품 공급 불균형 얘기가 나온다. 지난 4일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끝내 이른바 ‘천만대 선언’을 안 했다. 삼성전자는 매번 최단기간 갤럭시 1000만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실패작인 갤럭시S5때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신종균 사장은 <어벤져스> 시사회장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아이언맨> 갤럭시S6를 출시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다들 시장을 뒤집어놓을 헐크 같은 갤럭시를 기대했었다.

슬슬 비전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다. 갤럭시S5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사 갤럭시S6를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만든다는 전략은 나무랄 데가 없다. 역시 삼성은 스스로를 혁신할 줄 아는 초일류다. 다만 스마트폰 시장이 점유율 게임으로 접어들었다는 게 진짜 문제다. 삼성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파이는 커지지 않는다. 업의 본질이 이렇다면 삼성 내부의 누군가는 갤럭시 너머를 보고 있어야 한다. 판을 뒤흔들 준비를 해야만 한다. 경기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삼성만의 선견지명이 무엇인지 시장에 드러내 보여줘야 한다. 원래는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었다.

이재용의 삼성 그리고 미래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지 1주년을 즈음해서 <조선일보>와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선일보>는 오다가다 마주칠 때마다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고 단서를 달았다. 덕분에 이재용 부회장도 부담 없이 자신의 비전을 언론에 드러낼 기회를 얻은 건 사실이다. 여기서 이재용 부회장은 기업 승계, 비주력 계열사 정리, 금융지주사 같은 지배구조 이슈에 대해선 비교적 구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덕분에 기업 내부 이슈들에 대해선 상당부분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대외 이슈들에선 오히려 불확실성이 커졌다. 관건은 미래 신사업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말했다. “미래 신사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회사의 최고 기밀입니다.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할 게 없는 건 다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짊어졌던 짐을 넘겨받을 운명이다. 비저너리로서의 역할이다. 아직 젊다는 건 핑계다. 이건희 회장도 젊었다. 해냈다. 갤럭시S6 다음엔 갤럭시S7이 아니라 어쩌면 로봇이어야 하는 이유다. GM이나 IBM처럼 삼성을 바꾸는 혁신일 수도 있다. 아직은 비전은 없고 조각만 흩어져 있다. 그게 무엇이든 결국 프랑크푸르트 선언만큼의 파괴력이 필요하다. 내년에도 삼성이 갤럭시S7의 천만대 선언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언론플레이나 하고 있다면, 미래는 없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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