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 경남기업 상장폐지

경남기업은 끝내 상장 폐지됐다. 2015년 4월15일이었다. 4월14일 화요일은 경남기업의 마지막 거래일이었다. 최종 주가는 113원이었다. 42년 역사를 자랑했던 경남기업의 초라한 말로였다. 그렇게 경남기업은 죽었다.

끝이 아니었다. 경남기업에 얽힌 특혜 의혹은 남았다. 경남기업은 2013년 유동성 위기를 겪을 당시 시중은행 3곳으로부터 특혜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남기업은 1999년과 2009년에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2012년에도 250억원 가까운 당기순손실을 기록해서 추가 대출이 어려운 한계 기업이었다. 그런데 2013년 900억원 가까운 대출이 순식간에 성사됐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의 고위 간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지난 9일 경남기업에 연루된 금감원 관계자를 소환 조사했다. 당시 경남기업의 주채권은행 세곳의 담당 임원을 금감원으로 불러서 직접 대출을 지시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도 사실로 밝혀졌다.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그 배후엔 세상을 떠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있었다. 성 회장은 당시 정무위 소속의 국회의원이었다. 정무위는 금감원을 관리감독한다. 의원 신분이었던 성 회장이 금감원을 움직여서 금융권에 외압을 넣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단 얘기다. 90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았는데도 경남기업은 2013년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추가 대출은 기업을 살리기는커녕 부실 규모만 키운 헛짓이었다.

그런데 워크아웃에 들어간 경남기업은 불과 하루만에 채권단의 1000억원의 자금 지원 결정을 받아낸다. 통상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에 대해 채권단은 자금 지원에 인색하기 마련이다.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어서다. 경남기업의 경우엔 전광석화였다. 대주주 감자 같은 교과서적인 지원 조건도 없었다. 심지어 채권단은 기업이 회생했을 때 주식 우선 매수 청구권까지 넘겨줬다. 사실상 성 회장은 거의 아무런 금전적 손해도 입지 않고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특혜에도 불구하고 경남기업은 법정관리를 피하지 못했다. 그만큼 망가져 있었단 얘기다. 금융권 손실 규모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회수 가능 비율은 5분의 1도 안 된다. 1조원 이상을 날리게 생긴 셈이다. 이 손실은 고스란히 은행권이 져야만 한다. 은행권의 추가 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남기업은 죽었다. 경남기업의 망령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경남기업이야말로 대표적인 좀비 기업이다. 좀비 기업이란 이자보상비율이 1 미만인 기업을 부르는 재계의 은어다. 이자보상비율이란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재무지표다. 쉽게 말해서 버는 돈에서 은행 이자로 얼마를 지출하고 있느냐를 보여준다.

이게 1 미만이면 이자 부담이 버는 돈보다 커서 남는 게 없단 뜻이다. 영업 실적이 나쁜 적자 기업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 이런 기업들은 계속 빚을 내서 버티기 때문이다. 이자보상지율은 점점 낮아지겠지만 망하진 않는다. 죽었는데 죽지 않는다. 그래서 좀비 기업이다. 적자투성이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경남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형편 없었다.

경남기업이 좀비 기업이 된 건 단순히 건설 경기 부진 탓만은 아니다. 경남기업은 자구 노력을 기울이기보단 성완종 회장의 정치 로비에 더 의존하면서 비로소 좀비 기업의 길을 가고 말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나 실질적인 경영 혁신은 없이 정치권 압력을 이용한 은행권 대출로 버티기 시작하면서 좀비 기업으로 전락했단 얘기다.

원래 경남기업은 1951년 대구에서 경남토건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경남기업은 해외진출 1호 건설사였다. 1965년 태국 중앙방송국 타워 신축공사를 따냈다. 1973년엔 건설사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남기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1988년 대우그룹에 인수되면서부터다. 1998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경남기업은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1999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2002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경남기업은 성완종 회장의 대아건설에 인수된다. 성완종의 경남기업 시대가 열린 셈이다.

성완종의 경남기업은 처음엔 잘 나갔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세를 불린다. 러시아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 마다가스카르 광산개발, 멕시코만 심해 가스 탐사 같은 굴직한 자원 개발 사업에 참여한다. 2007년부터 추진한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 개발 사업으로 승부수를 건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문제였다.

글로벌 부동산 침체의 직격탄을 맞는다. 랜드마크72는 경남기업 자금난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 국내 부동산 시장까지 침체되면서 2009년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두 번째 워크아웃은 졸업했지만 베트남 랜드마크72와 자원 외교의 부실이 세번째 워크아웃을 불러온다. 이번엔 정말 쉽지 않았다. 

이때 성완종 회장은 경영능력보단 정치력으로 경남기업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정무위원으로서의 영향력과 여권 내부의 두터운 인맥을 기반으로 채권단에 압박을 가한다. 좀비 기업의 길이었다. 대출로 연명하는 살아 있는 시체 같은 기업이 된다. 지금 경남기업은 부당한 정치적 외압과 관치 금융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고 있다. 한때나마 한국 건설업계를 대표했던 경남기업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경남기업 사례는 한국 기업과 금융의 반면교사다. 지금 한국 재계엔 경남기업 같은 좀비 기업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좀비 기업은 2010년 전체 기업의 13%에서 2013년 15.6%로 증가 추세에 있다.

좀비 기업은 정상 기업으로 흘러가야할 투자와 인력을 가로챈다. 좀비 기업은 살기 위해 자본 시장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온다. 그만큼 우량 기업으로 향해야 할 투자 흐름이 감소한다. 당연히 우량 기업은 고용도 늘리지 못한다. 좀비 기업은 제조업에선 투자 감소를 일으키고 서비스업에선 고용 감소를 유발한다.

이렇게 악순환이 누적되다보면 결국 경제 시스템 전체가 부실해진다. 좀비 기업이 연명하는 돈은 결국 은행에서 나온다. 궁극적으론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진다. 은행도 좀비 기업 양산에 책임이 있다. 좀비 기업을 망하게 만들면 채권 회수도 불가능해진다. 은행 안에서 누군가는 대출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이자를 보조해주면서 한계 기업이 연명하게 만든다. 폭탄 돌리기다. 부실 규모만 키우는 꼴이다.

은행의 비겁함 뒤엔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도 있을 수 있다. 역시 경남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정부 역시 좀비 기업 정리에는 소극적이기 쉽다. 해당 기업이 자리한 지역 경제를 마비시키고 대량 실업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인기 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비겁한 정부가 좀비 기업을 양산하고 결국 국가 경제를 좀비화시킨다.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 은행의 부실 채권 규모는 24조원 가까이 된다. 이 중 기업여신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2014년에 금융권은 동부건설과 대한전선과 모뉴엘의 부실 1조원을 떠앉았다. 올해도 경남기업과 대한전선과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의 부실을 감당해야 한다. 은행 부실은 결국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진다. 좀비 정부가 좀비 기업과 좀비 은행과 좀비 경제를 낳는다.

그렇게 좀비 기업이 좀비 경제를 만들어버린 사례가 일본이다. 1990년 말 일본의 좀비 기업 비중은 14%에 달했다. 결국 시스템 전체가 썩어들어갔다. 일본 경제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부활할 수도 없었다. 20년을 좀비 상태로 떠돌았다.

경남기업은 죽어가면서 부실 기업 정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경제도 좀비 경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지금 한국은 전대미문의 1% 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좀비 기업 처리 문제가 더 시급해진 이유다. 저금리 시대는 좀비 기업들한테도 희소식이다. 이자 비용이 줄어든만큼 더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좀비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 생태계의 금융 자원을 잠식한다. 좀비 기업에 대한 정부와 은행의 입장 정리가 없으면 저금리를 타고 경제 전체가 좀비화될 수 있다. 경남 기업이 한국 경제한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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