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 쿠팡, 1조원대 실탄 장전

2010년이었다. 쿠팡의 사무실은 도산사거리 어귀의 작은 골목길 안에 있었다. 손바닥만한 사무실 안에서 십여명의 직원들이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쿠팡의 업태는 소셜커머스였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창업 아이템이었다. 소셜커머스를 화두로 한 스타트업은 쿠팡만이 아니었다. 선발주자로는 티켓몬스터가 있었다. 후발주자로는 위메이크프라이스가 있었다. 티켓몬스터의 사무실도 쿠팡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청담동에 있었다. 직원들이 통신판매회사처럼 전화통만 붙잡고 있는 건 티켓몬스터 사무실도 다르지 않았다.

소셜커머스는 매일 하나씩 저렴한 상품을 소비자들한테 제공한다. 상품은 물건일 수도 있고 서비스일 수도 있다. 값싼 캠핑 용품일 때도 있고 저렴한 레스토랑 이용권일 수도 있단 얘기다. 소셜커머스가 재화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건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작은 식당의 식사권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어렵다. 자연히 가격이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소셜커머스는 대량생산을 원하는 판매자와 시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잠재적 소비자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셜커머스는 IT비즈니스다. 소셜커머스의 핵심 역량은 기술이 아니다. 노가가다. 일단 대량판매를 원하는 생산자를 물색해야 한다. 쉽지가 않다. 대부분 114만 돌리면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스스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소설커머스 업체와 이윤을 나눌 필요가 없다. 소셜커머스의 생산자 고객들은 길거리에 있다. 삼겹살집이거나 아구찜집이다. 운동용품이나 캠핌용품을 만들어놓고 판로를 개척하길 원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이다.

틈새시장을 읽은 소셜커머스 경쟁력
초창기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이런 물건들을 찾아다니느라 동분서주했다. 쿠팡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가호호 방문해가면서 손님들을 끌어 모아 줄테니 가격을 얼마나 낮춰줄 수 있는지 협상했다. 소셜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것도 원인이었다. 경쟁 소셜커머스들보다 더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에 소비자들한테 제공해줘야 했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다른 소셜커머스로 떠나가는 걸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소셜커머스는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비롯된 2차 인터넷 벤처붐의 중턱쯤에 있었다. 새로운 기술 혁신의 파도는 기승전결의 과정을 거쳐서 밀려간다. 1990년대의 인터넷 파도는 초기엔 PC같은 하드웨어와 하드웨어를 작동시키는 OS에 집중되다가, 발달기엔 이메일 같은 커뮤니케이션에 집중됐고 중반기부터 워드프로세서나 게임 같은 소프트웨어로 이어졌다. 결국엔 이커머스 같은 서비스 유통으로 진화해 나갔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다시 전개된 모바일 파도 역시 비슷한 흐름을 탈 공산이 컸다.

상당수 시장 영역에 인터넷 혁신기부터 존재했던 공룡들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였다. 소프트웨어엔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었다. 하드웨어엔 IBM이 있었다. 이커머스엔 이베이와 아마존이 등장했다. 이들은 모바일 파도가 자신들의 시장을 쓸어가지 못하게 단단히 텃세를 부릴 참이었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이베이나 아마존의 틈새를 공략하기 위해 나온 사업 기획이 소셜커머스였다.

소셜커머스는 어느 정도 덩치가 큰 이커머스 업체가 달려들기 까다로웠다. ROI(투자자본수익률)가 참 나빴다.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판매 영역에선 그나마 기술 혁신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게 가능했다. SNS의 파급력을 이용해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자들을 상대하는 공급 영역에선 답이 안 나왔다. 소셜커머스로 박리다매를 해보려는 생산자들의 자발적 문의가 없진 않았다.

양질의 상품을 끌어 모으자면 오히려 소셜커머스에 관심이 없는 생산자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이미 이커머스에서 어깨에 힘 좀 주는 덩치들이 이런 수고를 지속하긴 어려웠다. 단적으로 말해서 인건비의 낭비였다. 한국에서 쿠팡과 티켓몬스터 같은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대기업 유통업체들이나 기존 이커머스의 견제를 뚫어낼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새로운 이커머스 시장이 열리는 게 필연적이란 걸 알면서도 그들은 큰 덩치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단 얘기다.

초창기 쿠팡의 사무실엔 젊고 패기 넘치는 사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창업 의지와 회사가 성장했을 때 얻을 금전적 인센티브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그들은 거리를 쏘다니며 중소업체 사장님들과 담판을 지었고 좋은 물건들을 가져와서 소비자들한테 싼값에 공급했다. 쿠팡과 티켓몬스터와 위메이크프라이스 같은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어느새 기존 이커머스 시장의 젊은 강자로 급부상했다. 노가다의 승리였다.

인터넷과 물류 연결성의 최적화
기본적으로 소셜커머스라는 업태는 신흥세력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사업이었다. 소셜커머스 업체라고 소셜커머스만 해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기존 사업자들은 소셜커머스를 못했지만 소셜커머스는 소셜커머스와 기존 커머스를 모두 할 수 있었다. 이때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기존 커머스 업체들과 맞대결을 벌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면전이 시작됐다.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쿠팡 역시 2014년 5월과 12월에 두차례에 걸쳐서 세콰이어캐피털과 블랙록으로부터 4억달러를 투자 받았다. 쿠팡은 얼마 전 한국 벤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 한화로 1조1000억원이다. 최근 1년 동안 전 세계 IT산업에서 이뤄진 단일 투자 가운데 세번째로 큰 규모다. 으뜸은 우버였고, 버금은 샤오미였다. 이로써 쿠팡은 거의 1년 만에 14억달러에 이르는 총알을 장전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부터가 승부다.

여기엔 혁신의 미래를 읽을 줄 아는 투자자들의 통찰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김범석 쿠팡 대표를 만나서 직접 투자를 결정했다. 사실 손정의 회장은 한국의 벤처 사업가들과 오랫동안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넥슨의 김정주 사장이나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도 모두 초창기부터 손정의 회장의 직간접적인 조언을 받았다. 모바일 벤처 세대들 중에서도 손정의 회장을 멘토로 삼고 싶다고 밝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프트뱅크를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으로 나눠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손정의 회장은 아시아의 워렌 버핏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의 현자다.

그 손정의 회장은 쿠팡에서 혁신의 다음 파도를 봤다는 얘기다. 사실 그건 김범석 대표도 준비해온 미래다. 바로 O2O다. 온라인 투 오프라인이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이미 모든 사물을 연결하고 모든 물류를 연결하는 단계까지 촘촘해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뿐만이 아니라 물건과 물건을 연결하고 사람과 물건을 연결하는 단계까지 밀도를 높이고 있다. 이커머스는 결국 사람과 물건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그게 O2O다.

그런데 인터넷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통신선으론 물건을 전달해줄 수가 없다. 물론 3D프린터란 게 있긴 하다. 이커머스로 대량의 상품을 효과적인 배송하려면 결국 지금보다 더 효율적인 오프라인 네트워크가 필요해진다. 결국 이커머스의 경쟁력은 오프라인 네트워크의 배송망으로 판가름 나게 된단 얘기다. 김범석 대표는 이걸 읽었다. 경기도 일산에서 이른바 로켓배송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2시간 만에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배송 방식을 극단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목표다. 

손정의 회장은 사실상 김범석 대표가 지닌 쿠팡의 로켓배송에 투자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손정의 회장은 쿠팡 이외에도 지난 3월엔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업체 토코피디아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손정의 회장이 2000년 알리바바에 투자해서 대박을 낸 사례는 너무 유명한 얘기다. 오프라인 배송망을 혁신해서 온라인 네트워크를 혁신한다는 비전이 이런 투자 행보를 만들고 있다. 쿠팡 투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쿠팡은 이미 단순한 소셜커머스 업체가 아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단순한 이커머스 업체도 넘어섰다. 전세계 O2O서비스의 최첨단에 섰다. 특히 한국은 시장의 규모가 적당하면서 국토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다. 이커머스 수요는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서 로켓배송을 실험하기에 더 없이 적절하다. 국토가 넓고 수요가 분산된 미국에서였다면 아마존이 실험하고 있는 드론 배송 정도가 해답일 수밖에 없었다. 소프트뱅크는 쿠팡의 기업 가치를 5조5000억원으로 평가했다. 로켓배송 혁신이 성공한다면 5조5000억원도 높은 게 아니다. 6년 전 구멍가게 같았던 소셜커머스 업체는 지금 전세계 이커머스를 선도하고 있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