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초이노믹스’어디로 …

“일본은 나는데 한국은 기고 있습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이후 신속한 의사 결정 구조를 바탕으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숙제는 점차 까다로워지는데 문제를 푸는 능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7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진행된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 부총리는 작심한 듯 토로했다. “취임할 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이미 초입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침체 흐름을 끊어야 한다’고 절박한 마음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일본처럼 된다는 게 별로 좋지 않다는 의미였지만 앞으로는 일본처럼 되는 게 칭찬이 되는 처지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입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2014년 7월 16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임명됐다. 1년 전 최 부총리의 취임 일성은 실제로 일본이 화두였다. 당시 최 부총리는 말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초기 5년쯤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의 고령화와 저성장을 답습하고 있다는 걱정은 많았다. 한국은 일본과는 다른 경로를 따를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가 않았다. 최 부총리는 한국이 이미 일본화의 경로를 상당히 밟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사령탑의 한마디가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 부총리는 아예 한 발 더 나아갔다. 디플레이션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는 말했다. “한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초입에 와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논쟁은 모두가 입 밖으론 꺼내기를 주저했던 주제였다. 한국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면 지금까지의 경제 정책과 기업 전략과 가계 경제의 패러다임은 180도 달라져야만 했다. 

아베노믹스와 초이노믹스의 속도차
최경환 부총리는 한국 경제가 일본화된다는 상황 인식을 전제로 경제 정책들을 제시했다. 취임과 동시에 46조원의 확장적 정책 패키지를 공개했다. 재정 정책이었다. 동시에 주택담보대출비율과 총 부채상환 비율 규제를 완화했다. 금융 정책이었다. 동시에 한국은행에 “디플레이션 파이터가 돼줄 것”을 주문했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선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하가 절실했다.

언론은 이런 재정 확대와 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의 경제 정책 패키지를 초이노믹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 아베노믹스에 비유한 표현이었다. 실제로도 초이노믹스는 아베노믹스와 닮은꼴이었다. 둘 다 공격적인 재정 확대와 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를 통해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유도하는 정책 묶음이었다.

초이노믹스와 아베노믹스는 서로 닮은꼴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의 최경환 부총리와 일본 정부의 아베 신조 총리가 가진 한국과 일본 경제에 대한 진단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베노믹스가 좀 더 고강도 정책 패키지였다. 초이노믹스는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였지만 아베노믹스는 사실상 제로 금리에서 돈을 푸는 양적 완화였다. 일본 경제가 빠진 수렁이 한국 경제가 빠져들고 있는 수렁보다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었다. 강도는 달랐어도 방향은 같았다.

혼자서 고군분투한 경제 수장
관건은 초이노믹스와 아베노믹스의 속도차였다. 그리고 속도차는 정교함의 차이에서 왔다. 아베노믹스는 2013년 4월에 개시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아베노믹스의 실패를 점치는 의견이 많았다. 솔직히 실패를 예상한다기보단 실패를 기대하는 전문가 의견도 없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아베의 우경화 정책 탓이 컸다. 1차 아베 내각의 참담한 실패도 근거였다. 아베 신조라는 정치인을 과소평가했단 뜻이다.

정작 201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옛날의 아베가 아니었다. 정교한 정책과 이론을 앞세운 경제 패키지와 그것을 뒷받침할 정관재계의 지지 기반을 구축해놓은 상태였다. 실제로 아베는 취임하자마자 시라카와 마사아키 당시 일본은행 총재를 경질하고 구로다 하루히코로 교체했다. 구로다는 통화 마피아란 별명까지 붙어 있는 화폐주의자다. 구로다는 즉시 대규모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전형적인 인플레이션 파이터였던 일본은행이 하루 아침에 디플레이션 파이터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최경환 부총리 역시 취임하자마자 디플레이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은행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 독립성을 앞세워서 최 부총리의 요구를 묵살했다. 마지못해서 금리를 찔끔찔금 인하했을 뿐이었다. 2014년 8월과 10월에 한달 건너 한 번씩 0.25%포인트씩 인하했다. 그나마 겨울엔 금리를 계속 동결했다. 구로다의 일본은행처럼 중앙은행이 앞장서 경기 부양에 나선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금리 인하가 시장에 미치는 여파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는 리플레이션파의 거두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학교 교수다. 리플레이션이란 연 2%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해서 경제를 살살 부양하는 정책을 뜻한다. 하마다 고이치는 아베 총리 자신을 리플레이션파로 만들었다. 하마다는 아베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린다. 이렇게 일본 정부의 최고 수장이 리플레이션파이며 일본 중앙은행의 수장까지 리플레이션파인만큼 정책의 일관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만큼 정책 집행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초이노믹스는 달랐다. 초이노믹스는 최경환 부총리 혼자서 끌고 가다시피 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분명 리플레이션파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 출신의 전형적인 인플레이션 파이터였다. 정부와 최 부총리의 요구에 마지못해 끌려갈 뿐이었다.

국회는 여야 입장 차이에 따라 초이노믹스에 대한 시각이 달랐다. 야당은 초이노믹스가 전세 대란을 일으켰고 가계 부채 상승을 부추겼다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여당은 엄밀히 말해서 초이노믹스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이 없었다. 단지 여당이라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는 정도였다. 이러니 초이노믹스가 아베노믹스 보다 느림보일 수밖에 없었다.

인접한 두나라가 동일한 경제 정책으로 경쟁을 시작하자 속도의 차이는 더 두드러졌다. 안 그래도 초이노믹스는 아베노믹스보다 2년이나 늦었다. 이 격차는 점점 커졌다. 아베노믹스의 양적 완화는 필연적으로 원·엔 환율 하락을 불러왔다. 한국 기업들의 대일 수출 경쟁력이 빠르게 악화됐다. 이명박 정부 중반 한국 기업들이 누렸던 비교 우위를 이번엔 일본 기업들이 선점한 꼴이었다. 게다가 아베 정부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유리하게 풀어내면서 엔저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미국 역시 일본의 엔저가 달갑지만은 않다. 미국 기업들의 대일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손실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일본을 중국의 대항마로 키우는 외교적인 이득을 챙겼다. 미국의 양해를 얻은 아베노믹스는 날개를 달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초이노믹스는 일본의 견제와 미국의 방치 속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015년 들어서 믿었던 중국 경제까지 침체되면서 “일본처럼 되는 게 칭찬일 수 있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초이노믹스도 한국은행이 1%대 기준 금리에 진입하도록 만들면서 잠시 순풍을 다는 듯했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가 꽤 살아났다. 메르스 사태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다. 재정 확대를 위한 추경안 역시 성완종 게이트 같은 정치 악재를 만나면서 국회 통과가 지연됐다. 거듭 정책 집행의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지난 9일 한국은행은 또 다시 금리를 동결하면서 201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하향 조정하고 말았다. 최 부총리의 말처럼 “일본 경제는 나는데 한국 경제는 기는 상황”이 연출된 꼴이다.

1.5% 기준금리 깰 권능 있어야
“지난 1년 동안 혼심의 힘을 다했습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초이노믹스는 아베노믹스에 비해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최경환 부총리는 총리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다. 경제사령탑이지만 정부 총사령탑은 아니란 얘기다. 아베처럼 정책 수단을 총동원할 수 있는 권능이 없었다. 조건은 불리했고 출발까지 늦었다. 그 격차가 지금 아베노믹스와 초이노믹스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대미·대일 변수를 풀어낼 기회가 하반기에 아직 남아 있다. 한일 정상 회담의 숨은 주요 의제는 결국 원·엔 환율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한미일 관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은행 역시 제로 금리라도 무릅쓸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줘야 한다.

지금 시장은 한은이 1.5% 아래로는 기준 금리를 내릴 배짱이 없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그걸 깨지 못하면 경기 부양은 어렵다. 그 사이 최경환 부총리는 4대 구조 개혁으로 아베노믹스에 대한 역전을 노려야 한다. 아베 역시 경기 부양에는 성공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구조 개혁은 답보 상태다. 위기가 지나가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반면에 한국경제는 위기여서 변화가 가능하다. 초이노믹스에게 마지막 역전의 찬스가 다가오고 있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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