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개월 동안 겪은 중국인들의 상술을 몇 회에 걸쳐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 중에는 ‘너무하다’싶은 점도 있지만 본 받을 점도 많다.
먼저 동남아 화교에 대해서 사전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홍콩의 경우는 완전 별개이고, 싱가폴도 독립배경에 이미 중국인들의 힘이 깔려있으니 별개로 봐야 하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중국인들은 우리의 선입견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그들이 두 나라의 경제권을 사실상 쥐고 있다고 봐야 하고 또 세계적인 화교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 대만과 연계해 그것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은 우리 민족의 조선족(한국계 중국인)이나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인)과도 또 다르다.
일단 그들이 언어를 3, 4가지 다른 것으로 쓴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한자를 거의 모르고 있다. 우리의 고려인이나 조선족은 그 뿌리가 100여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동남아로 퍼진 것은 훨씬 오래전이다. 이 때문에 스스로 중국계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실제로 중국의 역사에 대해 물어보면 아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다만 여전히 중국민족 특유의 가족적 연계로 굳게 뭉쳐 서로 거래하고 서로 도와가며 동남아의 경제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중국인의 상술에 대한 첫 에피소드는 어쩌면 이미 들어본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기자 역시 콸라룸푸르에서 알게 된 한 중국인으로부터 듣게 된 얘기다.
중국인들이 처음 호주 쪽에 노동자로 진출하던 100여년 전 이야기라고 한다.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뿐인 그들은 처음에 소나 양의 도살장에서 일하게 됐다.
낮은 임금에 힘든 노동, 그리고 오랜 노동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기쁨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도살장에서 버려지는 소나 양의 내장 혹은 뼈, 꼬리, 그리고 거기에 붙어있는 살점을 퇴근길에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중국 이민 노동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서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자 도살장에서 일하던 초기 이민자들은 퇴근길에 얻어오는 도축 부산물들을 동족 이민자들에게 팔아서 생계에 보태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호주인들은 더 이상 도살장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소나 양의 부산물들을 무료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돈을 요구했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우리의 초기 LA 이민들은 그 이후 그것을 돈을 주고 사먹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값은 점점 더 올라가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도살장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은 그 날 이후부터 그 부산물을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다.
도살장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은 그 며칠 후부터 도축 부산물을 당당히 가져갈 수 있게 됐다. 거기에다가 그들은 도축장의 청소용역비까지 호주인들에게 받을 수 있었다.
한때 전국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조개구이 집’은 여전히 조개구이를 찾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서울시내에서 발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한때 전세계 가발시장을 주름잡던 우리였지만 이제 그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시장은 여전히 건재함에도.
들리는 소문에는 IMF 외환위기 이후 캐나다 뱅쿠버의 신발가게는 거의 한국 사람이 주인이며 한 집 건너 한집씩 한국인이 경영하는 신발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모두 파리를 날리게 됐다고 한다. 또 세계적으로 우위에 있는 우리의 특정분야 산업이 동종업체끼리의 출혈경쟁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식의 이야기도 가끔 듣게 된다.
이런 사례들은 위에서 언급한 중국인 상술의 에피소드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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