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꿈꾸는 사람들] 안성주물

▲ 안성주물 제품들

안성주물은 단골고객이 없다. 고객이 제품을 한 번 구입하면 15~20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광고나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명품 가마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0여년을 이어온 전통 가마솥의 크기를 변형시킨 미니 가마솥은 1만개 이상 팔린 ‘국민 가마솥’으로 인정받았다. 김성태 주물장은 4대를 이은 장인정신으로 전통을 계승해나가고 있는 주물 명인이다.

국내 가마솥 역사의 산증인
안성주물은 1대 사업주 김대선 대표가 창업해 2대 사업주 김순성 대표, 김종훈 대표가 운영을 하다가 4대 김성태 대표이사가 2001년부터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김성태 대표의 증조부 김대선 전 대표는 충북 청원군 북이면에서 유기로 유명한 안성으로 이사 온 뒤 유기공장에서 놋쇠 다루는 일을 했다.

그가 일을 배워 독립해 가마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안성주물의 태동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뒤를 아버지가 잇고, 지금 그 자리를 주물장 4대가 이어서 가마솥을 만든다. 증조부가 들었던 쇠망치를 100년이란 시간을 거쳐 증손자가 쥐고 있다. 명품은 이렇게 대를 이어 만들어진다.

안성주물이 안성 내에서 터를 닦게 된 건 1934년, 봉산동 물문거리에 132㎡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직원 15명과 함께 가마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일제시대에는 가마솥의 원재료인 쇠를 배급받아 만들었다.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솥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성주물 가마솥은 한국전쟁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마솥으로 인정받았다.

“어릴 때부터 두꺼비집으로 장난하는 걸 좋아했어요. 주물은 저에게 흙놀이의 일종이었죠. 틀에 쇳물을 부어 솥을 만드는 일에 매료됐어요. 제가 일을 배우던 1960년대에는 공장이 귀했습니다. 가마솥을 만든다는 것은 밥을 짓기 위해 ‘스르릉’ 가마솥 뚜껑을 열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죠.”

주물, 하나의 명품으로 만들다
전통 가마솥은 1850℃로 펄펄 끓는 쇳물을 받아 가마솥 모양의 틀에 부은 뒤 5~10단계 수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김 대표는 가마솥에도 혁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전통 방식을 존중하되 그에 맞는 상품화를 도입했다. 주방용 솥을 따로 개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통 제조 방식을 고집하던 아버지와 여러번 충돌하면서까지 새로운 제품을 도입한 그는 주물장의 위상을 한단계 높인 공로자이다. 가마솥을 도매상에 납품할 때 단순한 식기로 취급받는 것을 보면서 ‘주물을 명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주물을 제작하는 방법을 가리켜 ‘큐플라 방식’이라고 한다. 요즘 일반적으로 전기를 이용해 쇠를 녹이는데, 안성주물은 전통 방식 그대로 석탄과 쇠를 장착해 바람을 넣고 코크스에 불을 붙인다. 쇠에 뜨거운 바람을 넣는 과정에서 납, 카드뮴 등의 중금속이 사라져서 인체에 무해한 주물이 탄생된다.

전기로 쇠를 녹이면 고철이나 잡철을 써도 완성품의 농도를 맞출 수 있는 반면, 전통 큐플라 방식은 좋은 쇠를 사용해야 완성품이 나온다. 안성주물에서는 포스코가 생산한 선철만 쓰기 때문에 최고급품의 주물이 만들어진다. 김 대표가 주물을 두고 ‘산업용품’이 아닌 ‘식기’라고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김 대표는 안성주물이 4대에 걸쳐 존속하는 이유가 오로지 고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장이 아무리 헌신을 다해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이 구입하지 않으면 가업을 잇는 일이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곧 고객과 접점을 놓치지 않고 소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성주물을 살리는 것은 고객의 의지입니다. 안성주물에서 파는 가마솥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담겨 있거나 쓰기 불편하다면 입소문이 금방 퍼져요. 고객이 없다면 내일 아침에라도 공장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객을 초대했어요. 언제든지 와서 주물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고, 제품을 만져볼 수 있도록 했더니 고객이 저의 진심을 알아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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