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믿는 학설(學說)을 굽히고(曲), 세상(世相)에 아첨(阿諂)하는 학자를 ‘곡학아세’(曲學阿世)라 한다.
사이비 학자(似而非 學者)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는 말이 있는데 글을 쓰는 문인에 해당된다. 불편부당 대의명분을 분명히 밝혀서 쓰는 사필(史筆)이니 ‘곡학아세’와는 반대되는 정필(正筆)이다. ‘곡필아세(曲筆阿世)라고도 하는데 뜻은 ‘곡학아세’와 동일하다.
시대가 변해 권력계급 지배층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조국광복 후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여러번 치뤘다. 그때마다 종래에 자기가 폈던 학설이나 주장을 잊어 버리고 새로 등장한 권력이나 지배층에 아첨하는 학자나 문인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세상변화에 굴하지 않고 종래의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고수(固守)하는 학자와 문인이 있다. 이 경우 후자는 ‘곡학아세’가 아니다.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경제(景帝:BC 157~141)가 제위에 등극하자 유명한 유학자(儒學者) 한사람씩을 소명(召命)해 벼슬을 주었다. 그 중에는 완강하기로 유명한 90세가 된 원고(轅固)라는 유학자도 박사(博士) 벼슬을 받았다.
天下를 처음으로 통일한 시황제는 법가(法家)의 세상을 만들었으나 한(漢)의 고조(高祖)는 나라의 기둥을 유가(儒家)로 삼았다. 때문에 당시 학계는 유학자들의 소장파 일색이었는데 그 대표자 격인 공손홍(公孫弘)이 지나치게 완고한 노학자 원고(轅固)를 눈위의 혹처럼 싫어해서 소장파 학자들이 원고(轅固)의 출사(出仕)를 막고자 황제에게 원고의 중상을 했으나 황제는 “집안에 늙은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학계에도 노학자가 필요하다”며 원고를 높이 사주었다.
어느날 황제가 학자들을 일당에 모았는데 원고는 “내가 늙었으나 유학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개(氣槪)가 있다”며 지팡이로 나가니 공손홍을 중심으로 소장파 학자들이 먼저 나타나 원고를 흘겨보았다. 원고는 모른체 하고 공손홍 앞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 유학이 혼탁한 물에 빠진 꼴이 됐다. 이대로 두다가는 전통있는 우리 유학이 자취를 감추어 버릴 수도 있다. 자네는 다행히 젊고 학문을 즐기는 선비로 나는 알고 있다. 꿈에라도 자기가 믿는 學說을 굽히고(曲), 세상시세(世相時勢)에 아첨(阿諂)하는 일이 없이 유학을 바로 잡는데 힘 써 주시기 바라네.”
여기서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그후 공손홍은 원고를 만나는 일이 자주 생겼는데 노학자 원고(轅固)가 지조를 굽히지 않고 그의 풍부한 지식과 굳건한 학풍에 감화돼 소장파 학자들과 함께 원고의 제자가 됐다.
‘곡학아세’ 또는 ‘곡필아세’하는 것을 가리켜 ‘처세술이 능하다’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진담이 아니고 비꼬아 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이 혼탁하면 ‘곡학아세’도 많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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