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MBK 파트너스의 홈플러스 개막

지난 2일은 국내 인수합병 역사에서 진기록이 세워진 날이었다. 매각 가격만 7조2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대형마트(업계 2위)인 홈플러스의 인수전에서 국내 최대 사모투자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최종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메가 빅딜이 성사된 의미 깊은 날이었다.

이날 진기록은 천문학적인 매각 금액뿐만 아니라 국내 토종 사모펀드가 쟁쟁한 글로벌 인수경쟁자를 물리쳤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홈플러스 인수 전쟁터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 등 백전노장들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서도 이제 개업한 지 10년된 신참내기 이등병인 MBK파트너스가 이들을 제치고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는 점도 경제계의 이슈가 되기 충분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이슈와 화재를 불러 모은 MBK파트너스가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 나가던 홈플러스가 왜 이렇게 좌초됐는지 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과연 대주주로 경영 정상화에 힘쓸지 아니면 큰 차익을 남기고 서둘러 떠날지(이른 바 먹튀 논란) 등도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홈플러스의 지난 성장과 몰락을 요약한다면, 이전 대주주인 테스코가 한국시장에서 16년만에 철수하게 되는 것인데, 사실 테스코는 글로벌 유통 강자로 한국시장에서 토종 대기업 못지않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해왔다.

외국계 유통강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한국 시장에서 과거 테스코의 홈플러스는 상징적이었다. 1997년 삼성물산과 합작사 ‘삼성테스코’로 사업을 시작한 홈플러스는 1999년 테스코에 경영권이 넘어갔으며 2008년 이랜드그룹으로부터 홈에버(옛 한국까르푸)까지 인수하며 그 몸집을 키워왔다.

2000년대 중반 미국 월마트와 프랑스 까르푸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때도 별 미동 없이 점포를 하나둘씩 늘려갔다. 하지만 지난해 영국 본사에서 터진 분식회계를 계기로 실적이 급락하게 됐고 본사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대안책으로 홈플러스 매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기준 매출 약 8조7500억원, 영업이익 2400억원을 거둔 값비싼 황금알(홈플러스)을 홀랑 깨먹고야 만 것이다.

홈플러스를 키울까, 구조조정할까?
이제 홈플러스의 운명은 MBK의 손에 달렸다. MBK가 향후 홈플러스를 어떻게 다룰지(되파느냐, 키우느냐)는, 기업 정상화를 위해 투자를 단행할지 말지는 인수 초기단계부터 그 싹수가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미 홈플러스는 매각 이야기가 나돈 2년전부터 신규투자가 거의 없어 이마트와 롯데마트라는 국내 유통공룡과의 경쟁력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아울러 MBK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 신규 투자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모펀드의 특성상 사들인 후 더 비싸게 매매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투자가 있을리 없다는 전망이다. 추가 투자를 하면 재매각을 추진할 때 대금이 높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7조원이 넘는 인수대금을 쏟아부은 MBK가 더 이상 털어낼 주머니가 있겠느냐는 얘기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MBK가 내년부터 향후 2년간 1조원을 홈플러스에 투자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한해 5000억원은 많은 금액도 아니다. 신규 상품개발, 새로운 매장 발굴, 경쟁사 대비 시장 점유율 확대 등을 위해서라면 5000억원은 기본적으로 깔고 가야할 판돈 규모다.

여기서 조금 더 따져봐야 할 것은 홈플러스의 그간 투자 규모 추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2500억원을 투자한 홈플러스와 비교하면 이번 BMK의 연간 5000억원은 눈에 띄는 증가폭이다. 반면 지난해를 제외하고 2010년부터 연 평균 5000억원을 투자해온 것을 따진다면 이번 MBK의 5000억원은 특별할 것 없는 투자금액이다.

이유야 어떻든 신규 투자를 하겠다는 MBK의 움직임은 홈플러스가 갖고 있는 현재의 위상을 지키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에 MBK가 2, 3년 뒤에 홈플러스를 재매각하려고 한다 해도 그 시점에 홈플러스의 시장적 지위가 매각 금액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2년간 1조원을 투입했다면, 결국 MBK는 2년 뒤에 8조원 이상은 팔아야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재매각과 순수한 기업정상화 등 두가지 큰 줄기에서 MBK의 전략을 따져볼 때 1조원의 투자는 여러 스토리로 전개될 여지가 남는다.

1조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해도 당장 홈플러스 직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통상적으로 사모펀드들은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인건비 리스크를 줄여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은 “이번 계약으로 바뀐 건 주주일 뿐”이라며 “2만6000명 임직원과 2000여개 협력회사 등은 변화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일부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이 재매각에 시동을 걸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도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홈플러스에 불어 닥칠 구조조정의 칼날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홈플러스는 업계 위상을 비롯해 시장 가치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 자양분(투자금)을 붓고 덩치를 키워야 할 상황이란 이야기다. 

MBK의 폭풍성장과 그 위상은
MBK 파트너스는 지난 2005년 3월에 설립됐다. 10년간 22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워나갔다. 성장과정에는 우역곡절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모펀드 간의 경쟁은 수많은 경험과 자금 유통능력으로 결정되기에 해외 사모펀드와의 경쟁에서 MBK는 매번 쓴 잔을 마셔야 했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인수는 MBK의 체질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번 거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국내에서도 가장 큰 인수합병 규모로 기록됐다. 7조원이 넘는 기업을 인수하려면 연기금, 국부펀드, 금융사 출자 등이 필요한데, 이를 MBK가 주도해서 소화해 냈다는 것은 한국의 자본시장의 크기가 엄청나게 확대됐다는 말로 달리 읽을 수도 있다.

홈플러스 인수의 주역은 MBK의 김병주 회장이었다. 그는 박태준 전 총리의 사위로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학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 칼라일그룹 등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익혔다. 그가 사모펀드 시장에서 자신의 명성을 알린 출발점은 칼라일그룹 재직 시절인 지난 2000년.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해 마무리하면서부터다.

2005년 회사 창립 이후 10년간 MBK는 자산규모 82억달러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사모펀드 그룹으로 성장했다. 서울과 도쿄, 상하이, 홍콩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들의 매출 규모는 287억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34조2000억원이다.

사모펀드의 위력은 무서울 정도로 막강하다.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사모펀드를 통해 지금도 수많은 회사를 사들이고 재산을 불려나가 세계에서 세번째 부자가 됐다.

기업경영의 교과서로 불리는 잭 웰치 전 GE 회장도 은퇴 후 사모펀드 투자만 고집하며 인생 이모작에 들어섰다.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슈퍼리치라면 적어도 사모펀드에 관여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MBK의 홈플러스는 기업 인수합병의 성공사례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모펀드의 위상을 제고한 측면도 있다. MBK 파트너스의 회사 이름은 김병주 회장 본인의 영문이름인 Michael Byungju Kim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불과 10여년전 금융 회사의 일개 직원이었던 마이클 킴은 MBK라는 이름으로 7조원대의 유통 공룡을 좌지우지하는 베테랑으로 돌아왔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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