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제약 역사 다시 쓰는 한미약품

한국을 대표하는 약국들은 죄다 종로에 줄지어 서있다. 특히 종로 4가를 시작으로 5가를 거쳐 동대문까지 이르는 거리를 ‘약국 거리’라고 부른다. 지난 1958년 이곳에서 개업한 보령약국, 백제약국 등 대형약국들이 즐비하다.

국내 제약업계 선두기업인 한미약품도 바로 이 약국 거리에서 출발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75)은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에 종로 5가에 ‘임성기 약국’을 창업했다.

바로 한미약품의 모태다. 임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 만큼, 자부심 있는 일들을 펼쳐 나갔다. 다른 약국이 꺼리는 성병환자를 치료해 준 것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직후였고, 국내에도 직간접적으로 성병환자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임 회장은 매독환자들을 정성껏 돌봐 약국 거리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임성기 회장은 천생 ‘약사’였다. 

임 회장이 약사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시기는 1973년이다. ‘임성기 제약’을 설립한 것이다. 약국은 제약산업에서 소비자를 상대하는 소매영업에 해당한다면, 제약은 생산·유통·영업을 총 망라하는 기업경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임 회장은 같은 해 친분 있는 동료 약사들과 힘을 합쳐 다시 한번 사명을 바꾸며 재창업을 했다. 덩치를 키워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한미약품이다.

리베이트 위기…R&D로 극복의 길 만들어
초창기 한미약품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영업력이었다. 임 회장이 약사출신이다 보니까 누구보다 일선 약사들의 마음을 잘 간파했던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도 약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약사로 한미약품을 꼽을 정도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약국을 위한 제품과, 약국을 위해 친절한 영업으로 제약업계의 다크호스로 성장했다.

특히 초기 한미약품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복제하는 ‘제네릭’을 판매하면서 회사를 급격히 키워나갔다. 제네릭은 진짜(오리지널)와 약효는 같다. 반면 제약사가 저렴한 개발비용을 들이기 때문에 약값이 상대적으로 싸다. 현재도 국내 제약사들이 대부분 제네릭 사업을 많이 한다. 당시 한미약품은 영업력을 극대화하면서 제네릭 사업에 두각을 나타내던 기업이다. ‘영업은 한미약품’이라는 수식어가 이 무렵부터 탄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영업력이 강한 한미약품도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여전히 10위권에만 맴돌았지 좀처럼 1, 2등 선두 제약사로의 점프를 하지 못했다. 영업력만으로는 업계의 선두권으로 치고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2010년 무렵 더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 다름 아닌 영업력 부작용 때문이었다. 영업중심으로 회사를 키워나가다 보니까 심각한 부작용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리베이트 문제였다.

이 시기에 정부가 제약업계 리베이트 단절 및 신약개발 활성화를 위해 ‘리베이트 쌍벌제’를 추진한 것이다. 이는 제약유통 과정에서 별도의 금품을 제공한 자와 이를 받은 수혜자 모두를 처벌하는 법안인데, 바로 일부 제약영업사원과 의사들이 암암리에 거래하던 관습을 철폐하겠다는 것이었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제1 타깃이 된 곳은 다름 아닌 한미약품이었다. 리베이트 쌍벌제로 의료계도 한미약품을 꺼리기 시작했다. 영업력으로 성장한 한미약품 때문에 정부의 리베이트 처벌이 강화됐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래저래 한미약품에겐 악재가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한미약품 2010년에 창업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한미약품에겐 정말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은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창업이래 최대 위기 속에서 임성기 회장은 신약개발로 눈을 돌리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연구개발(R&D) 투자규모로 증명을 할 수 있다. 2011년에는 840억원, 2012년에는 910억원, 2013년에는 1156억원, 2014년에는 1525억원을 쏟으며 한미약품은 새로운 신약개발에 올인을 했다. 매출액 대비 거의 15% 가까운 규모의 R&D 개발 투입이었다.

이는 제약업계에 선두인 유한양행이나 녹십자보다 훨씬 앞서는 것인데, 대형 제약사의 R&D는 매출대비 5%도 안 되는 돈을 투자한다. 상대적으로 한미약품의 결단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결국 R&D에 올인한 한미약품은 ‘영업의 한미약품’에서 ‘연구개발의 한미약품’으로 완전히 체질개선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신약개발은 제약업계에서 꺼리는 투자부문이다. 신약개발 만큼 성공 가능성이 낮은 투자(0. 02%에 불과)도 없기 때문인데, 그동안 국내 제약업계가 신약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미약품은 어떻게 R&D 중심의 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이는 CEO인 임성기 회장의 굳은 의지가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는 리베이트 위기가 본격화되자 R&D로 모든 비즈니스 역량을 돌려세웠다.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당시 임 회장은 “이제 R&D다”라고 할 정도로 전사적인 경영목표를 바로 세웠다. 

또 하나의 원동력은 한미약품이 지난 2004년 랩스커버리(LAPSCOVERY) 기술을 개발했기에 새로운 혁신과 성장이 가능했다.

랩스커버리는 한미약품이 독자적으로 만든 기술로 자주 투여하는 불편함이 있는 바이오의약품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투여 횟수와 물량을 감소시켜 부작용도 줄이고 효능도 향상시켰는데, 신약개발은 분명히 한미약품에겐 위기의 돌파구이자, 성장의 도약대였다.

신약개발 수출기업으로 ‘우뚝’
결국 이러한 신약개발의 노력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한미약품은 최근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와 당뇨병치료제 포트폴리오 ‘퀀텀프로젝트’를 약 5조원에 라이선싱 아웃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한미약품은 사노피로부터 확정된 계약금 4억유로와 임상개발, 허가, 상업화에 따른 단계별 마일스톤(milestone)으로 35억유로를 받게 된다. 제품 출시 후에는 두자리 수 비율의 판매 로열티도 받는다. 이는 국내제약사 단일 계약으로는 사상 최고 금액이다.

대박 행진은 또 있었다. 시노피와의 5조원 계약에 이어 다국적 제약사인 얀센과의 추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만 1조원에 달한다. 한미약품에게 대박을 안겨준 주된 신약은 ‘퀀텀 프로젝트’다. 바이오 의약품의 약효 지속시간을 늘려주는 기술을 적용한 지속형 당뇨 신약이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한미약품이 독자 기반기술했다는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당뇨신약이다.

6조원의 초대형 계약은 국내 제약시장의 3분의1 수준이다. 국내 제약업계의 규모는 15조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제약만 줄창 만들어내는 국내 제약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신약수출에 성공을 한 것은 임성기 회장이 그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왔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약국거리에다 조그만 약국을 차렸던 임성기 회장이 제약업계에 발을 담근 지 48년 만에 한국제약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한미약품이 신약수출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면서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제2, 제3의 한미약품을 찾을 정도로 신약개발의 중요성이 화두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여러 제약사들도 이제 복제약 생산전략에서 탈피해 대규모 연구개발에 투자를 해야 지속성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한미약품이 성공가능성은 낮지만 연구개발을 통해 수조원의 수출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업계는 더욱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간 국내 제약사들은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수십년간 그 흔한 인수합병(M&A)도 몇 건 없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다. 반면 세계 제약업계는 다양한 신약개발 계획과 M&A가 비일비재하게 벌여지며 치열한 경쟁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 제약사 중에 세계 50위에 들어가는 기업은 한 군데도 없을 지경이다.

여전히 수많은 제약사들이 기존의 관행인 리베이트 영업을 암암리에 하고 있다. 거기다 제약업계는 대부분 가족경영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창업자가 아직 현역에 뛰고 있는 한미약품을 빼고 대부분 크고 작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한미약품의 강점은 창업자가 경영 현장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규모 R&D 투자를 줄기차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미약품의 이번 대박이 이어지려면, 제약업계의 관습을 계속해서 견제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바로 신약개발을 통한 세계시장의 도전 말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매년 재벌닷컴이라는 곳에서 미성년 주식부호를 공개할 때마다 임 회장의 손자·손녀들이 모두 10위 권에 랭킹될 만큼 탄탄한 가족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임 회장 이후에 한미약품이 어떻게 달릴지는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임 회장이 현역에 있을 때와는 동력이 많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미약품에게 남은 과제는 아무래도 가족경영의 안정적 틀을 깨는 것일지 모른다. 수조원의 신약수출로 복제약 생산에만 매달리던 제약업계의 관습을 깨듯이 말이다. 그 과업을 임성기 회장이 할지 아니면 그의 후계자들이 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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