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박용만의 두산 ‘화려한 변신’

두산베어스가 올해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던 현장에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있었다. 지난 10월 31일 한국시리즈 마지막 5차전에서 삼성라이온즈를 상대로 싸운 두산베어스 경기장에는 박 회장이 열띤 응원을 펼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룹의 회장이지만 경기장 VIP실이나 중앙지정석을 사용하지 않고, 1루 쪽 일반 관중석에서 팬들과 섞여 응원을 하며 야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5차전뿐만 아니라 박용만 회장은 3차전에서는 둘째 아들 박재원 두산 인프라코어 부장과, 4차전에서는 장남인 박서원 오리콤 사장과 경기를 관람했다. 두산 오너가의 기운을 맘껏 받은 덕분인지는 몰라도 두산베어스는 어느 경기보다 가뿐히 야구 강자 삼성라이온스를 물리쳤다.

특히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 그 어느 때보다 기쁜 순간이었다. 한국시리즈 5차전 승리로 우승을 거머쥐자 박용만 회장은 김태형 두산베어스 감독에 이어 두번째로 헹가래를 받는 기쁨을 만끽했다.

승리의 기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4일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은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심사를 통해 롯데 월드타워점 특허권을 쟁취했다. 지난 9월 면세 사업 진출을 선언한 지 석달만에 기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국가에서 직접 면세 특허를 내주는 면세점 사업은 한번 지정되면 5년간 경쟁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노다지’다. 일반적으로 연간 5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올 가을은 두산에게 특별한 계절이 됐다. 야구에서 최대 강자 삼성을, 면세시장에서 최대 강자 롯데(롯데는 소공동점의 특허권은 지켰다)를 각각 물리치는 승전보를 연달아 울렸기 때문이다.  

생존 위해서 회사의 DNA도 확 바꾼다
최근 두산은 우리에게 익숙한 야구와 면세 분야를 통해 자신의 강력한 존재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사실 두산은 딱딱한 중공업 사업 일색의 중후장대형 기업의 대표격이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이 두산그룹의 핵심계열사다. 비중공업 계열사는 두산타워, 오리콤, 두산베어스 정도가 다다.

직접적으로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B2B가 이 회사의 기본적인 DNA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박용만 회장은 두산그룹을 중공업 중심 사업구조에서 소비재 사업을 함께 하는 기업체로 완벽한 체질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면세점 사업 획득은 이러한 체질개선에 원동력이 되는 값진 결과물이다. 박용만 회장은 그동안 주력해온 중공업 등 핵심 산업을 유통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로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연초 두산그룹 시무식에서 박 회장은 “새로운 시장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산이 신세계, 롯데, CJ처럼 말랑말랑한 소비재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산이 서울 시내면세점에 입성하면서 새로운 미래 신성장 동력을 제대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사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두산은 우리에게 친근한 소비재 기업이었다. 그러다 창업한 지 딱 100주년이 되던 1996년을 기점으로 주력사업을 재편하게 되는데, 마침 외환위기가 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동기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소비재 브랜드가 OB맥주였다. 이 시기에 두산은 OB맥주를 포함해 한국네슬레, 한국3M, 버거킹, KFC, 두산동아 등을 차례로 정리해 버렸다.

주력 사업을 거의 다 매각한 두산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등을 인수했다. 소비재에서 완벽한 중공업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을지로 1가에 있던 두산그룹 본사 사옥도 하나은행에 팔았다. 그리고 현재 동대문의 두산타워(두타)로 옮기면서 두산의 동대문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그렇게 20년 동안 두산은 중공업 기업으로 달려오며 그룹의 위상을 키워나갔지만, 현재 두산그룹은 중공업 사업의 시장 침체에 따라 경영위기를 겪게 됐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엔진 등 핵심 계열사들이 모두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박 회장은 중공업 구조조정을 앞세우며 다시 알짜사업 매각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두산그룹은 방위산업 계열사인 두산DST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두산인프라코어의 공작기계사업도 분할 매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미 두산인프라코어의 건설·광산장비 생산 기업인 프랑스 자회사도 1350억원에 미국 광산장비 기업에 팔아버렸다.

주력 사업을 파는 이유는 두산그룹의 매출의 60% 이상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것인데, 최근 글로벌 시장 악화에 따라 매출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력 사업이 침체를 걷는 와중에 면세사업이라는 안정적인 그룹 캐시카우를 확보한다면, 이런 재무구조의 악화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산이 과거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현재 중공업에서 소비재로 두차례의 큰 변혁을 이끈 주역이 다름 아닌 박용만 회장 자신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그룹의 전략기획 파트에서 본부장을 맡으며 그룹을 탈바꿈시키는 데에 앞장 섰다. 중공업의 두산은 박 회장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현재 소비재의 두산을 이끄는 인물도 박 회장이다. 면세사업을 신호탄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시 한번 바꾸겠다는 것인데, 마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재빠르게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을 연상케 만든다. 창립 100년이 훌쩍 넘는 늙은 두산이 이렇게 빠른 혁신과 변신을 한다는 것 자체만도 국내 기업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일 것이다. 모두 그룹의 오너인 박용만 회장이 직접 나서 결단을 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중소상인들과 연대…제2 동대문 시대 연다
두산의 새로운 혁신의 본거지는 바로 동대문이다. 면세점 사업지로도 동대문 두산타워를 내세웠다. 두산타워의 34개층 가운데 9개 층을 활용해 약 1만7000㎡(약 5100평) 규모의 면세점을 오픈해 내년 상반기(4월 예정)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두산타워는 지난 1999년에 문을 열어 동대문의 패션 메카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동대문은 두산그룹에 의미심장한 곳이다. 지난 1896년 국내 최초의 근대적 상점인 박승직 상점이 문을 연 곳이 바로 동대문이다. 박승직은 두산그룹의 창업주다. 두산의 역사가 출발한 뿌리 깊은 자리에다가 새로운 100년의 두산을 설계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번 면세 사업 진출은 상당한 무게감이 있는 쾌거인 것이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박용만 회장이 상생 경영을 통해 제2의 동대문 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박 회장은 동대문 지역 발전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했다.

이른바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설립한 것인데, 이 재단은 향후 동대문 상권 활성화와 지역 균형발전에 적극 나서게 된다. 그룹차원에서도 100억원을 출원해 총 200억원을 초기재원으로 다양한 발전사업을 전개한다.

재단의 주요사업은 ‘동대문 씽크탱크(Think tank)’ ‘동대문 마케팅(Marketing)’‘브랜드 엑셀레이터(Accelerator)’ 등이다. 이러한 재단의 역할은 두산 면세점과 함께 주변 동대문 중소상인들의 상권을 동반성장하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특히 동대문이 명동에 이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인 만큼 면세점 사업의 시너지는 주변 상권을 충분히 들썩이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면세점 특허권을 획득하게 된 배경에도 동대문의 강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동대문 상권의 연간 매출액은 12조4000억원 수준이다. 두산은 중국 관광객의 동대문 방문을 추진하기 위해 최근 중국 대표 여행사 26곳과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동대문은 확실히 면세점 사업과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시장 규모에다 매력적인 장소임에 틀림없다.

한편 박용만 회장은 시내면세점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최소 10%를 사회에 환원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현수 두산 사장의 경우 “동대문 상인에게 영광을 돌린다”라며 “동대문을 서울 시내를 대표할 관광허브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2015년 가을, 정말 두산의 새로운 100년, 새로운 유통 기업의 시대가 시작되는 힘찬 분위기가 느껴지는 특별한 계절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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