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허브 릿츠 사진전

핸드폰 화질이 웬만한 카메라보다 낫다는 시대. 찰칵찰칵 풍경과 자기 얼굴을 찍어댄다.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가 됐는데, 어쩐 일인지 전문 작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진다. 일반인의 사진에 대한 무지와 오만 때문인 것 같다. 아마추어들은 이렇게 시샘한다. 목에 무리가 가는 비싼 카메라를 수십대 갖고 있으니까, 인공조명을 일렬로 세우고 최고의 인화지를 택할 수 있어서, 사진을 돈과 맞바꿀 수 있는가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허브 릿츠 사진전 HERB RITTS : WORK 할리우드의 별들’(세종문화회관 미술관, 5월2일까지)을 보고나니 “프로페셔널 사진작가란 각 분야의 최고 인물을 카메라 앞에 세울 수 있는 권위와 친화력을 갖춘 사람이구나”하는 깨달음과 박탈감이 든다. 마이클 조던과 같은 완벽한 몸매의 사나이를 피사체로 세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사진의 90%는 완성된 것 아니겠나.

허브 릿츠는 행운의 사진작가로 보인다. 사진의 신이 내린 운명이 이토록 극적이고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경력의 고비 고비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인물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촬영 실력이 유난해서 그들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데 도움을 받은 것이겠지.    

 허브 릿츠(1952~2002년)는 영화사에 가구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회사 리츠 코퍼레이션을 경영했던 아버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동부의 바드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LA로 돌아와 아버지 회사의 세일즈맨을 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그 때 무명 배우 친구 리처드 기어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도중에 타이어가 터졌고 타이어를 바꾸느라 땀에 젖은 리처드 기어의 자연스런 모습에 셔터를 눌러댔다. 1년 후 리처드 기어가 유명 스타가 되면서, 릿츠가 찍은 사진은 미국과 이탈리아 잡지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된다.

1970년대부터 보그(Vogue), 엘르(Ell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에서 활동한 허브 릿츠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은 엘르 1981년 10월호 커버에 실린 브룩 쉴즈의 사진, 1986년 발매된 마돈나의 앨범 ‘True Blue’ 자켓 사진 등이 꼽힌다. 이들 사진 중 브룩 쉴즈 사진을 제외한 사진들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1980~90년대에는 배우, 운동선수, 록 스타 등 대중문화계의 슈퍼스타들 사진을 찍는 한편 슈퍼 모델 시대를 연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포드 등과 패션 사진과 누드 사진을 찍었다. 어려운 포즈를 요구하는 여느 사진작가들과 달리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준 덕분에 모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허브 릿츠 사진전>은 허브 릿츠 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는 100여점의 흑백 사진 작품을 중심으로 영화 포스터, 잡지, 사진집이 전시되고, 허브 릿츠 추모 다큐멘터리와 그가 감독한 뮤직 비디오가 상영되는가 하면, 그가 쓰던 카메라와 카메라 가방도 볼 수 있다.

전시장 벽은 붉은 칠을 한 좁은 방들로 나뉘어져,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감상하기는 힘들다. 추모 다큐멘터리는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투사되고 있는데, 별도의 방에서 의자에 앉아 차분히 볼 수 있게 해주는 게 마땅했을 터. 인물 사진만으로 이뤄져, 허브 릿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아프리카 기행 사진은 단 한점도 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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