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대담] 김문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본 사회갈등 원인과 해법

“부자들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지방 거주 직장인 A씨(41))

“하층인 사람들은 ‘전쟁이나 터져서 다같이 죽자’식의 부류가 많다.”(서울 거주 가정주부 B씨(65))

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 진단’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등 국내 대표적 정치·사회학자 5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의뢰를 받고 지역·성별·연령·연소득 등을 기준으로 선발된 전국 성인 남녀 105명을 심층 인터뷰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경제력 차이로 인한 위화감과 불만이 극에 달하고 분노 사회를 넘어 ‘원한 사회’가 되고 있다”며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이 사회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경고한다. 김문조 명예교수를 만나 우리 사회 갈등 양상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 : 권기만 편집국장 / 정리 : 김도희 기자 / 사진 : 나영운 기자>

-우리사회가 분노사회를 넘어 원한사회로 되고있다는 보고서의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다. 심층연구를 진행하게된 배경은 무엇인가
사회갈등이라는 주제는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지속된 질문이자 숙제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학계나 공공기관 등에서 많은 조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설문조사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설문조사가 편리한 방식이기는 하나 사회갈등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지역·성별·연령 등을 기준으로 105명을 선발, 5개월여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부 심정은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다. 연구팀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양상을 철저히 ‘인사이더스 뷰’(내부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각)를 통해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드러난 갈등양상의 특징을 꼽아본다면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경쟁은 단순히 경쟁이라는 용어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경쟁을 넘어선 ‘사투’다.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 외에도 △불안을 넘어선 강박 △피로를 넘어선 탈진 △좌절을 넘어선 포기 △격차를 넘어선 단절 △분노를 넘어선 원한 △불신을 넘어선 반감 △갈등을 넘어선 단죄 등으로 갈등심화 유형을 정리할 수 있다. 2014년에도 비슷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와 비교해보면 계층, 이념, 노사 갈등은 높아진 반면, 세대, 지역갈등의 심각성은 차츰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달 치뤄진 20대 총선 결과도 이 같은 갈등양상 변화를 상당부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사회를 ‘경쟁사회’로 정의한 응답자들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한 이유가 있는가
어느 사회에서건 생존이나 성취를 위한 경쟁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사회에서의 경쟁이 유독 치열한 이유는 ‘외길 경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는 출세나 성공에 대한 지향점이 너무 좁다. 우리가 말하는 출세는 오로지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전부다. 그러나 사실 성공이나 출세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혹은 종교적 심취도 삶의 목적이자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이들을 ‘성공했다’고 봐주지 않는다. 나 자신의 성취보다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는 행태와 제한된 출세길에서 벌어지는 ‘외길 경쟁’이 서로 맞물려 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편이다. 오히려 ‘억울하면 출세하든지’식의 통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출세하지 못한 게 잘못이라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이 ‘외길 경쟁’ 아래에서는 대다수의 탈락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무너지면서 지위격차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사회·문화·의식적 차원으로 확장돼 작게나마 남아있던 상하 계층 간 동류의식이 완전히 와해됐다. 과거 고성장 시절에는 당장 배는 고파도 미래는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희망이 상하계층 모두를 관통하는 관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접으면서 극소수의 안정계층과 대다수의 불안계층으로 양극화됐다. 고성장 시대에는 성공을 위한 경쟁이 우리사회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었지만, 구조적으로 대다수의 낙오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흙수저·금수저 등 청년층에서 시작된 이른바 ‘수저론’이 전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
과거에도 분명 빈부격차나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경제적 격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이동의 가능성이다. 최근 들어 수저론이 부각되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상하층 간의 격차가 고착되고 있다는 불안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그 계층구조가 고착화됐다. 지위 상승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반감·원한·단죄·포기의 정서가 생기고 현 위치에서 더 추락할 수 없다는 강박·고투·탈진 상태를 초래했다. ‘N포 세대’ 같은 용어들도 이 같은 자포자기 심리를 대변한다.

-SNS 등 네트워크의 발달로 이전보다 소통이 원할해졌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익명성을 무기로 허위사실 유포 등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인류가 고안해 낸 모든 기구나 기술들은 양날의 칼을 지니고 있다. 잘 쓰면 이기요 잘못 쓰면 흉기가 된다는 얘기다. SNS도 그와 마찬가지로 선용하면 사회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고, 악용하면 갈등을 증폭시키게 된다. 따라서 뉴미디어의 활용 양식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곳곳에서 약자들에 대한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갑질의 대표적이 예로 볼 수 있는 ‘땅콩회항’ 사건에 쏟아진 여론의 비난은 우리 사회 상류층을 향한 반감이나 원한이 얼마나 많이 축적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상류층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손님과 점원,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등 ‘갑질’이 여기저기 일어난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국민 대다수가 본인을 ‘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원청업체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한 하청업체 사장이 음식점에 들어가서는 갑질 가해자가 될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사회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사회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제도적인 측면과 의식적인 측면을 분리해서 접근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근무시간을 현재보다 2분의 1, 3분의 1로 줄이고 그만큼 많은 인원을 고용하는 이른바 ‘반정규직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안정적 일자리야말로 사회갈등을 풀 열쇠다. 내일 잘릴지, 모레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좋은 직업, 좋은 직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좋은 직업으로 여겼지만, 공무원 시험에 청년층이 대거 몰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제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적게 벌더라도 고용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 저성장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 어려운 현실에서 ‘반정규직제’의 확산이 안정적 일자리를 늘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반정규직제를 통해 추가로 확보되는 여가시간에 ‘세컨드 라이프’를 구상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도 할 수 있다.

-사회갈등을 봉합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최근 로스쿨 논란 등 오히려 제도가 갈등을 유발하는 사례도 있다
정부가 사회 구성원 간 갈등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 관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다. 과거에는 사회구조가 비교적 단순했기 때문에 사회갈등 양상도 단순한 편이였다. IMF 외환위기 때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를 예로 들어보자. 출범 초기에만 해도 노사갈등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방식이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과거의 성공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우에는 갈등양상이 복잡 다양해지면서 갈등을 풀고자 도입한 제도나 규범이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아가야할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구성원들이 이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발짝 물러서야 한다.

▶김문조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한 김 명예교수는 대학원 과정에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부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한국사회학회장, 정보문화포럼 의장,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관리포럼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 2월 정년퇴임 후에도 현재 인성교육진흥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사회학의 위기진단과 미래전망’(2015), ‘한국인은 누구인가’(공저·2013), ‘융합문명론’(2013), ‘한국사회의 양극화’(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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