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장 폴 고티에 展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국내 전시가 의외로 자주 열리고 있다. 그만큼 한국 패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것이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1 장 폴 고티에’ 전(6월30일까지, 화~일 10:00~19:00, 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 1만5000원)을 가보면 평일에도 관객이 어찌나 많은지 대학마다 의상디자인학과가 있는 반면,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가 없는 현실에 대한 역반응이라는 생각도 든다.

장 폴 고티에(1952년~) 하면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마돈나의 무대 의상 콘 브라 가 떠오른다. 마돈나는 1990년 월드 투어 ‘Blonde Ambition’과 뮤직 비디오 ‘Vogue’에서 고티에가 디자인한 원추형 콘 브라와 코르셋을 겉 의상으로 입어, 섹시하면서도 강한 여성성을 과시했다.

성 정체성과 여성성마저 뒤엎는 파격적이고 전위적이면서 섹시한 의상으로 아름다움의 기준을 재 정의한 디자이너, ‘패션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프랑스 디자이너 고티에의 장기가 마돈나의 안목과 용기를 만나 팝 스타와 패션 스타의 성공적인 협업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 사실 콘 브라는 고티에가 7살 때 가지고 놀던 헝겊인형 테디 베어에게 만들어 입혔던 것이라는데, 이 손 때 묻은 테디 베어를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고티에는 영화 의상에도 참여했다. 뤽 베송의 <제5원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키카> <나쁜 교육> <내가 사는 피부>,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마르코 카로와 장 피에르 주노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모두 비주얼에 신경 쓰는 감독들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연 덕에 고티에는 2012년, 의상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평범한 프랑스 가정에서 태어난 고티에는 미학자인 할머니 집에서 패션 잡지를 보며 화장품과 의상이 연출하는 변화하는 세계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학교에 적응할 수 없었던 고티에는 자신만의 스케치에 빠져들었고, 스케치를 팔아 용돈으로 쓰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 부모 말을 듣고, 스케치를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에게 보냈다. 1970년 피에르 가르뎅이 18살의 그를 어시스턴트로 고용했고, 1976년 자신만의 첫 오트쿠튀르(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하게 된다.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고티에는 40여년 동안 성별, 인종, 생김새에 따라 규정되는 ‘이상적 아름다움’이라는 통념에 ‘패션’으로 도전했다.

남성용 스커트와 남녀 구분이 없는 앤드로지너스 룩 등을 선보이며, 정형화된 성 개념을 새롭게 해석했다. 최고급 재료만을 고집하는 상류 패션계에서 깡통과 비닐, 주방기구를 활용하기도 했다. 신인 시절 디자인한 이 재활용품 의상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장 폴 고티에 전은 몬트리올 미술관과 장 폴 고티에 하우스가 2년 협업 끝에 성사시킨 전시로 8개국, 11개 도시를 순회하며 220만명의 관객을 맞았다. 아시아 최초이자 마지막 월드 투어인 한국 전시는 한-불 수교 130주년의 일환으로 유치됐다.

마네킹이 입은 의상 135점을 비롯해 디자인 원화, 사진과 같은 평면 작품 72점, 오브제 작품 20점 등, 220여점이 보인다. ‘여성의 은밀한 공간 드레스룸’‘오디세이’‘스킨 딥/X등급’‘펑크 캉캉’‘도시 정글’‘메트로폴리스’‘결혼’의 일곱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제목만 봐도 고티에답다는 생각이 든다.

옷으로 지어진 상상의 공간, 그러나 흰 머리가 생긴 고티에는 자연파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파괴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새로움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시대도 아닙니다. 불황인 지금은 모험과 도발이 터부가 돼 버렸습니다. 나 자신 또한 도발적인 것에 지쳤습니다. 지금까지의 자신과 또 하나의 다른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티에 같은 창작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나이 듦에 감사해야할지, 서운하다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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