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 투비 블루(Born to Be Blue)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영화에서 배웠다”고, 자주 고백하게 된다. 시대극을 볼 때면 역사적 배경을, 전기 영화를 볼 때면 주인공의 일생을 찾아 배우게 되니 말이다. 최근에 본 한편의 전기영화를 통해서도 시대와 인물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로버트 뷔드로(Robert Budreau)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본 투비 블루>(Born to Be Blue)는 나른한 재즈 선율과 마약 기운에 몸을 맡긴다. 1950년대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쿨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아이콘이었던 트럼펫과 플뢰겐호른 연주자이자 가수였던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쳇 베이커는 음악 재능과 성공, 잘 생긴 얼굴로 B급 영화 <Hell’s Horizon>(1955)과  <Urlatori alla sbarra>(1960)에 출연하는 등 인기가 많았지만, 마약 중독으로 몰락한 천재 뮤지션의 전형과 같은 인물이다.

1966년 이탈리아 감옥. 트럼펫에서 거대한 거미가 기어 나오는 환상에 시달리는 쳇 베이커(에단 호크). 그를 영화에 출연시키겠다는 감독 덕분에 미국으로 와 자신에 관한 영화를 찍으며 재기를 꿈꾸게 된다.

그러나 동료 디지 길레스피(케빈 한차드)도 왕년의 매니저 딕(콜럼 키스 레니)도 그의 호소에  “마약부터 끊어라” “재즈의 시대는 갔어. 지금은 밥 딜런 같은 가수가 인기야”라는 말을 할 뿐이다. 쳇 베이커의 전 부인 일레인을 연기하던 흑인 여배우 제인(카르멘 에조고)은 밀린 돈을 갚지 못해 마약상에게 얻어터져 틀니를 끼게 된, 그래서 트럼펫 연주가 어렵게 된 쳇 베이커에게 연민을 느껴 돌봐준다.

영화가 엎어지고, 제인과 함께 고향 부모의 농장으로 가 마약을 끊는 노력도 해보고, 동네 피자 가게에서 연주도 하며 재기의 노력을 보여주는 쳇. 마침내 디지와 딕의 도움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케다 브라운)와 음악 관계자들 앞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게 된다. “정교함이 떨어지니 개성이 생겼다”는 평을 듣고, 성공 무대였던 뉴욕의 버드랜드 무대에 다시 서게 되는 데, 마약 유혹이 그의 의지를 덮치려 한다. 딕이 충고한다. “텅 빈 채로 무대에 오르지 마.”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가 음악과 사랑, 마약 탐닉과 재기의 몸부림 기로에 섰던 1967년에 집중한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던 쳇 베이커지만, 마약에 찌들어 나이보다 훨씬 망가진 모습을 남긴 말년은 정말 보기 괴롭다. 쳇 베이커의 38살 무렵에서 멈춘 영화가 그래서 고맙다.

노래는 에단 호크가 직접 불렀다.  퇴폐적, 서정적, 슬픈 정조, 나약하고 애처로운, 모든 힘을 다 빼버린 듯 읊조리는 쳇 베이커 창법을 애절하게 소화해 내다니, 에단 호크의 전방위 재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대학생 시절부터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 끝내 마약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암스테르담의 호텔에서 의문추락사한 쳇 베이커. 어릴 때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했고, 한두번 들으면 그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는 그의 음악성을 영화는 해변, 눈벌판에서 홀로 트럼펫 부는 모습 등으로 멋지게 표현한다.
1952년 제리 멀리건 쿼텟(Gerry Mulligan Quartet)에 합류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쳇 베이커는 1987년 빅밴드와 재즈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연주에 대해선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동원된다.

나른하고 권태롭고 감상적인, 자기감정에 충실한 정직하고 편안하고 부드럽고 정갈한, 낮은 영역을 맴도는 허무하고 우수 짙은 비극적인 아우라. 듣는 자의 몫이겠지만, 부모와 학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고, 마약에 손을 대는 등의 성장기 트라우마, 이른 성공과 여성 편력 등, 마음을 잡아줄 그 무엇을 트럼펫 연주에  담아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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