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사업도 지지부진…멀어져가는 ‘원 롯데’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지난달부터 검찰의 롯데 전담수사팀이 본격 가동되면서 롯데의 핵심 사업들인 홈쇼핑, 백화점, 마트, 면세점 등이 두달 가까이 초토화되고 있는 중이다. 신사업은 아예 꺼내보지도 못하는 와중이다.

새로운 자금조달을 위한 혈맥도 모조리 끊어진 상태다. 롯데그룹이 연초부터 심혈을 기울여 오고 있는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도 검찰 수사에 따라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5조원에 이르는 자금 조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와 아울러 롯데물산과 함께 롯데칠성음료가 계획했던 회사채 발행도 무기한 연기를 하게 됐다.

진짜 위기는 앞으로 검찰의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또 얼마나 장기전으로 끌고 갈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화두는 역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얼마나 매섭고 날카로운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동빈 회장 겨눈 검찰의 칼끝
현재 신동빈 회장은 롯데케미칼 등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 이르면 이달 말 혹은 다음달 초에 검찰 소환이 예상되고 있다. 신동빈 회장에게는 최근 두달이 정말 곤혹스러운 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인데, 지난 1년간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형 신동주 전 부회장(20년간 일본 롯데를 경영)을 상대로 경영권 승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고, ‘원 톱’이라는 왕좌의 자리를 차지했다.

1년간의 경영권 분쟁이 언론과 대중에게 연일 도마에 오르며, 롯데라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 실추도 있어왔지만, 그러한 리스크도 이제 어느 정도 수습하는 분위기였다. 신동빈의 ‘원 롯데’와 ‘원 리더’를 기반으로 새로운 그룹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검찰의 대대적이고 전방위적인 롯데그룹 수사가 진행되면서, 다시 신동빈 회장은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그는 출국금지 상태로 지난 3일 한국에 들어온 지 한달 가까이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집과 집무실만 오고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의 임직원들도 검찰의 수사가 하루빨리 종식되고 실추된 그룹 이미지를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의 파장과 심각성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룹의 수장이 두문불출하는 중에 롯데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롯데홈쇼핑 방송 재승인 과정에서 강현구 롯데홈쇼핑 대표가 비자금 조성과 로비를 지시했다는 혐의로 공개 소환한 바가 있고,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는 롯데마트 시절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혐의로 구속됐다.

모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 CEO들이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의 주변인물부터 하나씩 하나씩 목을 죄어오는 수사망을 펼치는 모양새다. 숨이 막혀오는 뜨거운 여름 속에서 롯데의 수난사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원 리더 달성했지만 경영권 분쟁 여전
이쯤에서 검찰 수사에 난타를 당하는 롯데가 지난 1년 어떤 격랑 속에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신동빈, 신동주 형제가 지난 1년전부터 다투고 있는 왕좌다툼의 시작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지난해 7월16일에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를 모두 아우르는 실질적인 수장이 됐다는 내용의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된다. 한·일 롯데의 의사결정을 최종적으로 협의하는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이사회 구성원 전원의 찬성으로 신동빈 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이었다.

94세의 신격호 총괄회장이 한국에 있었지만, 이미 이사회는 신동빈 회장을 차기 총괄회장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가서 신동빈 회장과 롯데홀딩스 이사진 6명을 해임한다. 반격에 나선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게 된다.

법적 분쟁까지 번지고 있는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은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고 있지만, 여전히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잦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신동빈과 신동주 형제는 알려진 대로 롯데에 대한 지분이 거의 비슷하기에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언제든 이의제기를 통한 뒤집기가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한국에 돌아오기 전 신동빈 회장은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을 상대로 세번째 경영권 방어를 하고 돌아온 바 있다. 왕좌를 차지했지만, 완벽히 안정적인 원 리더는 아닌 모양이다.

신동빈 시대 열 사업도 지지부진
지금 롯데그룹은 경영 차원에서도 위기 상태다. 신동빈 회장은 왕좌에 올라 선 이후 롯데라는 그룹을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랑받는 기업으로 성장시키려고 노력했다. 과거 신격호의 롯데는 굉장히 폐쇄적이었는데, 신격호 총괄 회장은 상세한 지배구조를 공개한 적도 없고, 계열사 상장도 전혀 하지 않았다. 임원 인사도 손가락으로 지시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롯데그룹을 고착화시켰다.

신동빈 회장이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룹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을 제1의 과업으로 삼았던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을 시작으로 롯데리아, 롯데정보통신 등 잘나가는 주요 계열사의 주식 상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상장 계획이 틀어진 결정적인 배경은 신동빈의 누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면세점 입점 댓가로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고 지난 7일 구치소에 구속됐던 점이 크다고 본다.

지금 롯데그룹이 바라는 점은 검찰의 수사를 조기에 방어하고 그룹의 새로운 사업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일테다. 결국 기업은 사업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목적이기에, 언제까지 사정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사업의 차질을 빚을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현재 눈에 띠는 경영 리스크는 이렇다. 개장을 앞두고 있는 잠실 제2 롯데월드타워가 잘 운영될 수 있을지, 하반기 정부의 면세사업 특허권을 다시 획득해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을 오픈할 수 있을지, 6개월이나 황금시간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롯데홈쇼핑의 매출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매출 4조원의 미국 엑시올사 인수를 철회한 롯데케미칼이 새롭게 미래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등이다. 신격호 시대에 이어 신동빈 시대를 제대로 열려면 앞서 언급한 난제들이 하나둘씩 풀려야지만 가능해 보인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지금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신상에도 큰 위기가 찾아왔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는 휠체어에 의존해야할 만큼 적신호이고, 신동빈 회장은 그룹의 비리혐의를 총괄적으로 책임지면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신영자 이사장은 롯데 오너 중 처음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터진 이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1년 전보다 더 큰 먹구름과 소용돌이가 롯데그룹을 덮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비리혐의서 자유롭나
그런데, 롯데그룹의 장자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러한 폭풍 속에서 안전할까? 현재 그는 비리혐의에 빠진 신동빈과 신영자 이사장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검찰 수사에서 그는 어떤 혐의도 받지 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다.

그러나 앞으로 검찰 수사가 깊어질수록 신동주 전 부회장도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지난 2006년부터 회계장부를 가짜로 만들면서 법인세 및 가산세 등에서 270억원을 환급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이 당시 이 회사의 CEO로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비자금을 세탁하는 통로로 일본 롯데물산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일본 롯데물산의 등기 임원으로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있었다는 것인데, 만일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신 전 부회장도 검찰 수사에서 피해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신 전 부회장에 대한 의혹은 또 있다. 검찰은 제2 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에 로비 수사를 진행중이다. 지난 2009년 공군이 서울공항의 활주로 각도를 3도 트는 조건으로 15년간 멈춰있던 인허가에 숨통이 트였는데, 이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다. 그렇다면 자금이 어디서 왔을까가 관건이다. 제2 롯데월드 사업 당시 일본 롯데를 이끌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제2 롯데월드의 시행사인 롯데물산에 큰 자금을 대줬는데, 자칫 잘못하면 검찰이 예의주시하는 제2 롯데월드 로비 수사의 정점에 그가 거론될지도 모를 일이다.

8월이 되면, 롯데그룹 오너가에 대한 비리혐의에 대한 사실유무 관계가 좀 더 상세하게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지난 1948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유통공룡으로 성장했다. 롯데라는 이름은 문학도였던 신격호 총괄회장이 독일 작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빌려온 것이다. 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샤롯데는 순결, 순수, 정열을 상징했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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