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청년 일자리 문제 분석... 갈길 먼 초과이익공유

대기업은 연일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데 이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추석 명절에도 상여금 등으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절반에 달했다.

이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온도차가 대기업 원청업체가 하도급업체와 이익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원청 대기업 노동자 임금이 100만원 상승할 때 하도급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불과 6700원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9개 국책연구기관장이 청년 일자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연구원은 최근 청년 일자리 문제도 원·하청 불공정거래 관행에서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하도급 단계 내려갈수록 낮아지는 임금
KDI가 2013년 700여개 원청 대기업과 4만8700여개 하도급 업체의 임금격차를 조사한 결과 원청 대기업 A사가 경쟁사인 B사보다 노동자 임금을 100만원 더 많이 줄 때 A사 하도급업체는 B사 하도급업체보다 임금을 6700원 더 많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더라도 하도급업체와는 그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KDI는 이익을 많이 낸 대기업이 임금을 대폭 인상해도 하도급업체와 성과를 공유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이 같은 이중적 노동시장이 고착됐다고 지적했다.
대기업→1차 수탁업체(중견기업)→2차 수탁업체(중기업)→3차 수탁업체(소기업)로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수록 이윤은 더 박해지고 임금수준도 더 낮아진다.

2013년 고용부가 일부 제조업종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임금수준이 100%일 때 1차 수탁업체 직원 임금은 60%, 2차는 30~40%, 3차는 20~30% 수준이었다. 그 결과 2010년 원청 대기업의 평균 임금이 3900만원에 달할 때 하도급 중소기업의 임금은 2800만원에 불과했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 차이가 더 심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 원청업체 근로자 평균 임금은 9700만원인 반면 1차 협력사는 4700만원, 2차 협력사는 2800만원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임금, 대기업 대비 61.6%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는 하청 관계에 있는 기업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체 산업에서 대·중소기업간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상용근로자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1.6%에 그쳤다. 대기업 임금을 100원으로 볼 때 중소기업 임금은 61원인 셈이다. 격차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62.0%)에 비해 0.4%포인트 더 벌어졌다. 2003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은 65.8%였다. 2007년 64.8%, 2011년 62.6%으로 계속 떨어져왔다.

구매력평가 환율 기준으로 해외와 비교한 1인당 실질 연봉에서도 중소기업 평균 연봉은 낮았다. 중소기업 평균 연봉은 3만1008달러로 일본(3만2536달러), 미국(4만287달러)에 비해 낮은 편이다. 반면 우리 대기업의 실질 연봉 수준은 6만2220달러로 미국(5만3218달러), 일본(4만4613달러)에 비해 높았다.

대·중소기업간 임금 상승 격차도 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2015년도 소득분위별 근로자 연봉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 직원의 급여가 226만원 오를 때 중소기업은 40만원 상승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 비율도 4.2%대 1.2%로 대·중소기업 간 차이가 갈수록 크게 벌어졌다.

특히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가중되면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장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 기준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은 53.2%,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34.6% 수준에 그쳤다.

“임금격차 中企취업 기피 심화시켜”
문제는 이 같은 임금 격차가 청년 실업률을 심화시키고,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악화시키는데 있다. 올해 상반기 10.3%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에도 중소기업이 필요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비율은 12.7%에 이르렀다. 대기업은 3.8%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대기업 근로자의 고임금이 중소기업에 전가돼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상대적 박탈감도 커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299인 이하의 중소기업 근로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1.6%가 대기업 노조 파업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복수응답)로는 67.9%가 ‘하청업체 부담이 가중되고 임금 격차가 심화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금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59.3%), ‘중소기업 취업 기피 현상 심화’(34%) ,‘노사분규 부담으로 인한 대기업 채용 축소’(24.8%) 순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노조 때문에 중소기업 근로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시각이 드러난 것이다.

한 대기업 조선사 하청업체 대표는 “대기업 근로자와의 임금차이가 나날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대기업 노조 파업을 바라보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진다”며 “청년층들이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지 않으려는 상황을 고려해 자제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지나친 임금 상승 자제해야”
중소기업계는 대·중소기업간 지나친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대기업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영섭 중기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대기업 연봉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며 “임금을 많이 주면 좋은 것이지만 급여가 손익계산서의 인건비에서 나오는건데 고임금을 지속한다면 기업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라며 임금 인상에 대한 대기업의 자제를 요구했다.

이어 “대기업이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에 맞춰 임금 인상을 해주면 그 사이 중소기업도 노력해서 수출과 매출을 늘리고 급여를 올려주는 방향으로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도 6월 열린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 “대기업 근로자의 고임금으로 경제 토대인 중소기업인의 상실감과 인력난은 더 심해지고 있다”며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5년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 분석에서는 향후 10년간 원청 대기업이 물가 상승률만큼만 임금을 인상하고 2, 3차 하도급업체는 해마다 10% 이상 임금을 인상해야 임금 수준이 대기업의 60%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납품단가 공유가 대기업 임금 상승 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김수환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사업자부터 3차 수탁업체까지 납품 단가 등 정보를 모두 공유해야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하청업체 저임금 등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재와 같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큰 구조 속에서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공무원·공기업·대기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며 “올해 안에 낡은 노동시장의 법·제도·관행 개선 및 격차해소 등의 성과를 도출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물고를 터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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