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고객업무 지원 SW기업 SAP

SAP는 복잡한 백 오피스 소프트웨어(Back-Office Corporate Software·고객업무를 지원하는 부서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이다. SAP가 만든 소프트웨어의 설치와 유지에는 수백만달러가 든다.

시장에서 SAP의 입지는 탄탄하다. 전 세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80%가 재고 관리를 위해 SAP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세계 금융거래의 63%가 SAP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기업 구성원들의 행동방식 변화에 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직장에 가져오면서, 일상에서 즐겨 쓰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온라인 서비스 등을 회사에서도 똑같이 제공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SAP는 온라인을 통한 소프트웨어 제공이나 클라우드 컴퓨팅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존 제품들의 온라인 버전을 개발하려는 소극적인 시도만 몇 차례 했었다.

그 와중에 넷스위트(NetSuite)와 워크데이(Workday),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빈틈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SAP는 전 세계 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CRM. 고객관리 정보 관리·분석을 돕는 프로그램) 제공업체 순위에서 2위로 내려앉게 되었다. 현재 1위는 오라클(Oracle)이 지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SAP의 공동 창업주이자 회사 감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하소 플라트너(Hasso Plattne)는 “우리 회사는 고객관계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였고, 직원들마저 경영진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SAP는 혁신과 성장의 문화를 회복해야 했다”라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소 플라트너는 회사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2010년 2월 빌 맥더멋과 하게스만 스나베에게 전화를 걸어 공동 CEO를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맥더멋과 스나베는 2010년 2월 공동 CEO에 오른 후 제품 개발 주기를 단축하고, 수차례 과감한 인수를 마무리했으며, SAP에 실망한 고객들에게도 다시 친근히 다가갔다.

맥더멋과 스나베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인터넷에 호스팅된 소프트웨어 중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만 선택·사용하는 서비스 형태) 공급을 강화하기 위해 34억달러를 투자해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인적자원 소프트웨어 개발사 석세스팩터(SuccessFactor)를 인수하기로 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모델에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직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 만큼 매달 비용을 지불한다.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매달 안정적인 현금 유입을 창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맥더멋과 스나베는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 더블린에 본사를 둔 사이베이스(Sybase·정보 및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분석 및 모바일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를 58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SAP의 모바일 기기 공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업 인수와 신제품 발표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두사람은 불만을 가진 고객들을 만나러 다녔다. 금융위기 때 많은 논란을 낳으며 단행했던 가격 인상을 철회했고, 사용자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SAP의 고객과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인 맥더멋과 덴마크인 스나베가 찰떡궁합을 과시한다고 말한다.

제품 부문을 담당하는 스나베는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장점을 최고경영자 역할에 접목시켰다. 10대 때 롱 아일랜드에서 식당을 창업하고 훗날 제록스에서 최연소 부장에 오른 맥더멋은 SAP의 판매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까진 SAP의 공동 CEO 체제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직원들의 사기는 올라갔고, 맥더멋과 스나베 취임 이후 주가도 40%나 급등했다. 하지만 SAP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판론자들은 석세스팩터스 인수에도 불구하고 SAP은 여전히 혁신적인 제품을 양산하고 세일즈포스닷컴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는데 필요한 인재와 기업문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맥더멋과 스나베는 여전히 수지타산이 맞는 기존 소프트웨어 설치 사업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많은 일반 직원들이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지지하고, 단일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의 IT부서에선 좀 더 신중한 접근을 원하고 있다. SAP는 변화하는 수입 모델 관리와 함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맥더멋과 스나베가 매일 이해 관계를 조정해 균형을 잡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공동 CEO가 할 일이다.

- 글 : 하제헌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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