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해는 짧기만 하다. 어느새 사위는 칠흙같은 어둠뿐이다. 집을 떠난지 3일째. 무진장 도로를 타고 달리다 장계나들목 부근에서 지도를 펼쳐든다. 덕유산 칠연계곡을 가볼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들목을 나서면서 길을 물어보니 다시 돌려 고속도로를 타고 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국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어둠에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지언정 이 도로도 확인을 해봐야 할터. 장수를 지나면서 토옥동 계곡이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장수 관할인 이곳도 한번 둘러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양악호 저수지 앞에서 차를 돌려 다시 나온다. 낯선 곳에서 만난 물가는 웬지 스멀스멀 소름이 돋는다.
다시 칠연폭포를 찾아 들어간다. 하룻밤을 유하기 위해 숙박동을 찾지만 민박집들은 거의 다 불이 꺼져 있다. 가게에 들러 늦은 저녁을 먹을까 했지만 주인내외는 외출을 서두르고 있다. 그들은 안성면에 가면 모텔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안성면은 크지 않았다. 숙소를 정해놓고 식사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식당은 찾았다. 식당을 찾는 것은 걸어도 될 정도다. 서늘한 밤공기를 맞으며 낯선 소읍을 걷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익숙해 있을 공간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생경하다. 웬지 쓸쓸함이 밀려든다. 겨우 찾은 것이 집순대를 만든다는 허름한 이리 순대국집(063-323-0308)이다. 정육점을 겸하고 있다. 이리라는 지명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지만 오래전부터 써온 간판인 듯 하다.
인근 주민들인 듯한 사람들이 술추렴을 하고 있다. 웬지 거칠 것 같다는 선입견과 술을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방안에 자리를 잡는다. 고기는 빼고 순대국밥(3,500원)을 달라고 했다. 따로국밥과는 500원 차이가 나는데 밥이 따로 나오고 뚝배기에 바글바글 끊여나오는 것이 다르다. 순대국밥에 김치, 깍두기, 양파간장, 파김치가 따라나오고 양념으로는 새우젓과 소금, 고춧가루를 넣은 다대기가 딸려 나왔다. 투명한 소주맛은 웬지 유난히 쓰기만 하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아낙은 이 지역을 잘 아는지 구구절절히 음식점 소개를 해대고 있다. 나중에는 일행이 있느냐고 하면서 혼자라고 하니 그 뒤로는 말문을 닿아 버린다. 여자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들의 시각으로 이상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웬지 술맛은 더 쓰기만하다. 집이 그립기만 하다.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숙박지를 벗어났다. 먼동이 트려면 조금 시간이 남아 있는 듯하다. 전날 들렀던 가게에서 마침 아침 식사를 한단다. 요기를 하고 칠연계곡으로 향했다.
매표소에는 아직 사람이 없다. 매표소 입구부터 칠연폭포까지는 약 1.5km.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다. 천천히 산길을 따라 올랐다. 바스락대는 새소리와 다람쥐 소리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할 뿐 산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멀리 산자락위로 햇살이 비쳐든다. 오늘은 유난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산길은 사람 두세명이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넓다. 돌도 많지 않아 걷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칠연계곡은 덕유산의 서쪽 기슭, 통안마을 뒤에 반석으로 이뤄져 있다. 일면 칠연암동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구천동 계곡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이지만 아기자기하다. 아름다운 문덕소가 나타난다. 더 올라가면 칠연폭포와 향적봉으로 가는 등산로로 나뉘어진다. 곧추 올라가 고갯길을 넘어서면 다시 평평한 구릉길이라 누구나 등산이 가능하다.
멀지 않은 거리에 칠연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가뭄으로 인해 수량은 턱없이 줄어들었다. 자그마한 폭포 위로 굽이굽이 7개의 폭포가 이어진다. 폭포는 희한하게도 자그마한 못을 만들어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칠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어떤 못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도 한다. 여름철 수량이 불면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터인데 아쉽다. 여름철 탁족으로 만족해야 할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이 물줄기는 명제소, 문덕소, 도술담, 용추폭포를 만들어내면서 금강의 상류인 구리향천과 만나게 된다. 가을 단풍도 다 떨어지고 그저 낙옆만 우수수 내린 그곳에 한줄기 아침 햇살이 스며든다.
그 외 항일운동 의병들의 무덤인 칠연의 총과 용추폭포도 둘러볼만하다. 칠연의 총은 1908년 조선 말기의 의병장 신명선과 150여 의병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해 묻힌 묘역으로서 1974년의 정화 사업으로 단장됐다.
용추폭포는 덕유산 매표소 오기 전에 만날 수 있다. 폭포 위에 정자가 있다. 길 밑이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용추폭포는 높이 32m로 꽤 수심이 깊은 용추(龍楸)라는 웅덩이를 끼고 있다. 이 곳엔 전설이 내려져 온다.
‘옛날 구두쇠로 소문난 부자 시아버지와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시주를 구하는데 부자영감은 매정하게 스님을 쫓아냈다고 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을 몇 줌 주다가 그만 들키고 만다. 이에 시주를 구하던 스님은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맞으며 구박 당하는 모습을 보자 도술로서 홍수를 불러 구두쇠 부자영감을 떠내려가게 한다. 그 후 용추폭포 아래 집이 떠내려간 자리에 큰 웅덩이가 생겼다고 한다. 용추폭포 위에는 나무 정자가 세워져 있다.
■자가운전 :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이용. 덕유산나들목을 이용해 안성읍내를 거쳐 들어오면 된다.
■별미집·숙박 : 안성읍내에 있는 이리 순대국밥집은 꽤 많이 알려진 집. 집은 허름하지만 인심이 넉넉해 주민들에게 인기를 누린다. 또 칠연폭포 가는 길목에서는 용추폭포 가든(063-323-0838)이 괜찮기로 소문나 있다. 단체 숙박동도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민박할 곳은 다수 있다. 또 안성읍내에는 동명장(063-323-0216)이 있다. 전라북도 자연학습원(063-323-0380)은 40인 이상이면 신청할 수가 있다.

■이곳도 들러보세요-참나무 숯가마 찜질방
안성면 농공단지를 지나면 언덕위에 참나무 숯가마 찜질방(063-323-1900)이 있다. 이곳은 요새 유행하는 숯가마 찜질을 즐길 수 있는 곳. 만든지 2년정도로 연륜은 깊지 않지만 체험객들은 많다. 여느 집과 다르게 숯굽는 장작가마가 머리 위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탄을 만들기 때문에 완전 연소가 된다는 것도 이 집의 장점. 목초액은 바를 수 있도록 서비스로 준다.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조립식 식당동도 마련되어 있다.

이 혜 숙 여행작가 (http://www.hyes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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