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표심, 선동 아닌 논증 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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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표심, 선동 아닌 논증 택해야
  • 중소기업뉴스팀
  • 호수 2114
  • 승인 2017.04.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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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혁(도모브로더 대표)

1919년 1차 세계대전 후 혼란기의 독일 뮌헨 주에는 110여개가 넘는 소형 정당이 있었다. 말이 정당이지 세상에 불만을 가진 사람 여럿이 맥주집에 모여 불평을 토로하던 수준이었다.

히틀러는 불만 세력의 활동을 감시해야 하는 군부의 밀정으로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했다. 그는 곧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의, 현재로 보면 대변인 또는 홍보책임자 격인 선전부장이 됐다.

그는 독일인은 우수한 민족, 공산당은 나쁜 놈, 베르사유 조약을 거부하지 못하는 현 정권은 무능한 정권이라는 간단하고 자극적인 메시지를 반복하며 지지를 넓혀 갔다.

그가 구사한 △감언이설로 국민의 호감을 얻는다 △적을 만들어 우리를 규합한다 △힘있는 자를 공격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인다는 홍보전략은 레닌 시절부터 위정자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구태의연하다고 할 수 도 있지만, 특히 혼란기의 국민 지지를 얻는 데는 효과적이다. 더구나 그런 종류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반복적이다. 기억되기 쉽다.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런 식의 논리적이지 않은 단순하고 자극적인 선동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외됐던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대표적이다. 트럼프의 주장이 논증적이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표를 주었다.
우리는 어떨까?

유례없이 많은 대선후보들이 경쟁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을 보면 진행방식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다. 깊은 논증이 부족하다.

 30초 발언 제한을 둔 방송3사의 TV토론에는 논증할 시간이 없다. 주장만 많다.

방송사별로 토론 주제를 나눴다면 좋지 않았을까? 각 주제별로 논증 있는 토론을 이끌어 유권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논증 없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듣도록 하는 것은 100년전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케이블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토론이 더 깊이 있고 논증적이다.

이성적인 유권자들은 논증의 부족을 아쉬워하며 판단을 유보할 것이다. 현 세태에 대해 불만의 감정이 강한 유권자들은 자극적이고 단순한 주장에 지지를 보낼 것이다.
이래서는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게 된다.

지지하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사람 간의 갈등은 논증을 통해서 해소해야 한다. 주장만으로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더욱 깊어질 뿐이다.

그렇게 지지를 얻어 당선된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계층 갈등의 해소라는 어려운 과제를 받게 된다. 더 이상 히틀러적인 선동으로는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언론 또한 후보들의 주장을 단순히 뉴스화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논증을 이끌어주면 좋겠다. 역사적인 이번 대선의 과정이 지지세력 간의 다툼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논의의 과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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