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역당국이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농장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

이번엔 계란이다. AI 논란에 이어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국민 먹거리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에서 일제히 계란 판매를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유럽과 똑같은 ‘맹독성 피프로닐’ 검출
지난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닭에 사용이 금지된 ‘피프로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피프로닐은 가축과 애완동물에 기생하는 벼룩과 진드기 등을 없애는 데 이용되는 물질이다. 하지만 닭에 대해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자 피프로닐을 과다 섭취할 경우 간장·신장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피프로닐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또 다른 친환경 산란계 농장 계란에서는 닭 진드기 박멸용으로 사용되는 ‘비펜트린’ 성분이 사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는 관계부처 및 민·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15일 0시부터 전국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가의 계란 출하를 잠정 중단했다. 이는 시중 유통량의 80∼90%에 해당한다. 또 규모에 상관없이 15일부터 18일 오전까지 전국 모든 산란계 농장에 대해 살충제 전수 조사를 시행했다.

살충제 계란 검출 농가 총 49곳
그 결과 총 49곳에서 시중에 유통하면 안되는 ‘살충제 계란’이 검출됐다. 농식품부와 식약처는 지난 18일 오후 세종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개(친환경 농가 683개·일반농가 193개)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조사 대상 농장 중 49개 농가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기준치 이상이 검출되면 안되는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전체 산란계 농장의 약 4%다.
정부는 이들 농가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검출 성분별로 보면 닭에 사용이 금지된 ‘피프로닐’이 검출된 농가 8곳, 마찬가지로 계란에선 검출되선 안 되는 ‘플루페녹수론’ 2곳, ‘에톡사졸’ 1곳, ‘피리다벤’ 1곳이었다. 나머지 37개 농가에서는 일반 계란에 사용할 수 있는 비펜트린이 허용 기준치(0.01㎎/㎏) 이상으로 검출됐다. 이들 49개 농장의 계란은 전량 회수·폐기됐다.
농식품부는 친환경 인증농가 가운데 허용 기준치를 넘지 않았지만 살충제가 조금이라도 검출돼 인증 기준에 미달한 농가는 37곳이라고 밝혔다. 이들 농가까지 포함하면 살충제 성분이 조금이라도 검출된 곳은 총 86곳(친환경 농가 68개·일반농가 18개)으로 집계됐다.
농식품부는 살충제 성분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산란계 농장의 계란 출하를 즉시 허용했다. 허용된 물량은 전체 공급물량의 약 95.7%를 차지한다. 농식품부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49개 농가에 대해 오염된 계란의 회수 및 폐기 상황 등을 점검 중이며, 부적합 농가에서 출하된 계란은 회수해 폐기하도록 했다.
부적합으로 판정된 농가에서 출하된 산란 노계로 생산한 닭고기와 가공식품에 대해 추가로 수거해 검사할 계획이다.

예견된 사태 … 정부 위생관리 구멍
당초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촉발됐을 당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해 농식품부는 ‘국내 계란에서는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당국의 위생 관리에 구멍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농식품부에 따르면 계란 생산 단계에서는 그동안 항생제 등만 검사를 했으며, 피프로닐 등 살충제 성분 검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당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농장 60곳을 표본으로 선정해 피프로닐 검사를 실시했고, 올해 3월 들어서 사실상 제대로 된 정기·체계적 검사를 실시했다. 이후 이달 두번째로 실시된 정기 검사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된 것이다. 이 때문에 피프로닐 검사가 이뤄지기 이전에는 이 물질에 오염된 계란이 얼마나 유통됐는지조차 사실상 파악할 길이 없다.
특히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산란계 농가 중 상당수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정부의 허술한 친환경 인증 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비펜트린이 기준치보다 21배나 높게 나타난 전남 나주의 산란계 농가도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 인증 업무를 민간에 이양한 것이 적절했느냐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기관이 다시 업무를 넘겨받아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앞으로 국민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현재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시행하고 있는 축산물 이력제를 앞으로 닭고기와 계란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력추적 시스템은 축산물마다 고유 번호를 부여해 생산부터 국민이 소비할 때까지 전체 유통단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현재는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시행하고 있다. 김 장관은 “올해 하반기부터 준비와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계란 판매 사상 초유의 ‘올스톱’
살충제 검출 소식에 지난 15일 대형마트 3사와 농협하나로마트, 슈퍼마켓, 편의점들은 계란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쿠팡과 위메프를 비롯한 주요 온라인쇼핑사이트들도 생란과 구운 계란, 과자류 등 계란 관련 제품의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국내 유통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마트 3사와 농협하나로마트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계란 판매가 모두 중단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후 이마트와 롯데마트, GS25, GS슈퍼마켓, 티몬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매 중단 조치 하루 만인 16일부터 문제가 없다고 판명된 계란에 대해 판매를 재개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터진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한판 가격이 7000원대 후반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이번엔 살충제 계란 파문까지 터지면서 추석 성수기를 한달여 앞두고 계란 수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분간은 계란 수급 불안 현상이 가중되면서 가격도 더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계란 성수기인 추석 시즌이 되면 ‘계란 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식품·요식업계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식품업계에서는 계란을 직접 판매할 뿐만 아니라 각종 가공식품 등에 계란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당장 계란을 사용하는 제품 생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제빵·제과업계도 각종 빵이나 과자를 만들 때 계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계란 파동이 계속 될 경우 생산 중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 피해 눈덩이 … 소상공인 시름 커져
소상공인 업계도 또 한번 경영위기에 놓였다. 살충제 공포라는 국민 인식이 확산돼 이와 관련한 소비시장과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은 지난 조류독감(AI) 사태와는 격이 다른 ‘신뢰’ 문제가 작용해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앞서 지난 1월 AI 사태에는 계란을 취급하는 소상공인 93% 이상이 매출이 감소하는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당시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2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복수응답)에는 응답자 93.1%가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소비심리 위축이 가장 크게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계란을 취급하는 중소유통업계 소상공인들도 이번 파문에 대한 정부 지원 대책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생산과 유통은 직결된다. 매번 피해를 통해 경영난을 호소하면 생산지를 중심으로 정부 지원책이 펼쳐졌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계란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 AI 사태는 물론 이번 계란 파문에도 몇몇 잘못된 생산농장 때문에 유통업계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며 “AI와 달리 경영난은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되며, 정부는 전수조사를 철저히 해 생산자들의 관리·감독 체계를 구체화하고 소상공인과 차별 없는 정부 지원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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