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바라는 중소기업 정책-1]‘삼중고’ 직면한 중소기업 노동현장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급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출범했다. 차관급 외청이던 중소기업청이 설립된 지 21년 만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중소기업 관련 정책의 컨트롤타워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첨병이 될 중기부가 닻을 올리면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 방침에 부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과 양극화 해소의 갈 길은 멀고 연이은 북핵 도발로 경제회복 가능성도 위협받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 역시 중소기업계의 기대와는 다르게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다음 달로 다가온 국정감사에서도 새로운 중소기업 정책 비전이 제시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뉴스>는 ‘현장에서 바라는 중소기업 정책’ 기획시리즈를 통해 향후 중기부의 역할과 정책 방향성을 제시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친노동 정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법원마저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노조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앞으로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투자계획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소기업계는 이 같은 정책들이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를 심화시켜 인력미스매칭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청년 일자리 창출 첨병역할을 공헌한 중소기업계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잇따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과속 추진에 ‘임금 폭등’
세달 후면 적용되는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계의 가장 큰 현안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 인상됐다. 16.4%의 인상률은 16.6%를 기록한 2000년 9월∼2001년 8월 이후 최대 폭이다.
2010년 이후 연도별 최저임금 인상률은 2.75%(2010년), 5.1%(2011년), 6.0%(2012년), 6.1%(2013년), 7.2%(2014년), 7.1%(2015년), 8.1%(2016년), 7.3%(2017년) 등 매년 한자릿수로 올랐다. 하지만 2018년 인상폭은 16.4%로 전년대비 무려 두배가 넘으면서 이른 바 ‘임금 폭등’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 폭등에 따라 내년부터 중소기업이 추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무려 15조2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인상폭에 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지급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에 분노와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소상공인연합회도  “소상공인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감소, 서비스 질 하락, 경영 환경 악화로 인한 폐업 등을 우려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시급 1만원 2020년 달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경계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업종별 차등 적용 등 불합리한 현행 제도 개선과 함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계적인 근로시간 단축 추진해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문제도 고민이다. 정부와 여당은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취지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가운데 근로시간까지 줄어들면 운영에 어려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계는 장시간 근로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단계적 시행’과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박성택 중기중앙회장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난자리에서 “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중소기업의 인력부족 문제 해결이 핵심이므로 충분한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자금난과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은 대기업보다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에 업계는 인력난과 준비기간 등을 감안해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 대해선 4단계로 세분화하고 시행시기를 연장해달고 요구하고 있다. 또 시간외·휴일·야간근로에 대한 할증률을 현행 50%에서 25%로 축소해달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할 때 단계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중소기업 현실을 고려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아울러 유예기간 내에 제도를 조기에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임금 소송으로 매년 8조 비용부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추세가 분명해지는 것도 중소기업계의 부담이다. 최근 법원은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3년치 4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3년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을 토대로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액(과거 3년+향후 1년)이 최대 21조9000억원(고정상여금·기타수당 포함)에 달할 것으로 계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 논란이 본격화된 2013년 신의칙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의 추가 비용부담은 최대 38조5509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일시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소급분 24조8000억원과 퇴직급여 충당금 4조8846억원 이외에 매년 8조8000억원의 비용부담이 더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연간 경제성장률이 0.13%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근로자 보수의 증가는 연간 경제성장률을 0.13%포인트 하락시킨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2.8%)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총생산(GDP)은 2조262억원 감소한다.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인력 미스매칭 심화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동시장 문제가 대·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심화시켜 중소기업계의 일자리 미스매칭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급등은 성과급을 중심으로 임금격차를 확대하고 있는 중견·대기업보다 정액급여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을 ‘죽이는 정책’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수 300인 이상 업체의 정규직 평균연봉은 6521만원을 기록, 300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3493만원)의 1.87배에 달했다.
또한 한경연은 지난 2014년 내놓은 분석에서 통상임금 범위에 고정 상여금이 들어갈 경우 제조업 500인 이상 사업장과 1~4인 사업장의 연간 1인당 임금 총액 격차가 당시 3447만원에서 3865만원으로 약 418만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노동 환경이 변화한 만큼 실지급되는 정기 상여금과 각종 수당 등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 시키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최저임금제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김강식 한국항공대 교수는 “저임 근로자보다 대기업 직원 등 고연봉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를 누리고, 이로 인해 임금 격차가 커지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상여금과 수당 및 복지성 급여가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돼야 하고, 아울러 업종별·지역별로 사업여건, 지불능력, 생산성, 생계비 수준을 고려한 최저임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성 강원대 교수도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에는 1개월을 초과해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등이 빠져 있어 결과적으로 연봉 4000만원의 대기업 근로자가 산입 범위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며 “통상임금 범위는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만 협소하다면 문제”라고 역설했다.

납품단가 제값받기 본질적 문제해결
대·중소기업 임금격차의 본질인 납품단가 문제 해결도 필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하도급 공정거래와 대·중소기업 격차 완화’ 자료를 통해 대·중소기업의 임금격차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KDI에 따르면 원청 대기업 A사 근로자가 B사 근로자보다 평균 연봉을 100만원 더 받는다고 했을 때, A사 하도급업체의 임금은 B사 하도급업체보다 겨우 6700원 더 많았다. 원청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더라도 하도급업체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증거다.
임금격차를 좁히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성과공유제’가 꼽히지만 대기업의 참여는 소극적인 편이다.
노동비용이 높아지는 경우 기업은 폐업하거나 근로시간 단축 또는 기계로의 대체를 선택한다. 이럴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임금정책이 펼쳐져야 소득주도 경제성장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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