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바라는 중소기업 정책]中企에 야박한 금융권 대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동맥경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져, 중소기업의 경영 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인 은행들은 여전히 기술력 평가를 통해 우수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손쉬운 담보대출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금리 시대에 대기업은 자금 사정이 좋은 편이다. 사내 유보금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영업이익 흑자가 나면 설비 투자, 신규 인력 채용 등은 줄이고 남는 돈으로 빚을 갚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빌리고 있지만, 여전히 자금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대·중소기업 자금여건 ‘극과 극’
최근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기업 대출 가운데 대기업이 빌린 자금은 164조5555억원으로 2015년 말보다 9조9315억원이나 감소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빌린 자금은 지난해 말 609조4049억원으로 1년 전보다 33조7880억원 늘었다.
한국은행의 기업 경기실사지수 중 자금 사정 항목을 보면 중소기업은 돈을 빌리고 대기업은 돈을 갚는 속사정을 엿볼 수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간 자금사정 지수의 월평균이 약 74.4로 2011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앞선 5년간의 월평균 약 79.5보다 악화됐다. 반면 대기업은 최근 1년간 지수 월평균이 92.5로 그보다 앞선 5년간 지수 월평균 91.5보다 높아졌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자금사정이 나쁘고 100보다 높으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 현황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서 중소기업이 빌린 돈은 2013년 기준 45조9524억이었는데 올해 7월 기준 99조5972억원으로 116.7% 급증했다. 반면 대기업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서 빌린 자금은 같은 기간 13조4893억원에서 17조1150억원으로 26.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이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에서 훨씬 많은 돈을 빌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은 대부분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시중 자금은 이른바 ‘비생산적’ 분야로 꼽히는 부동산 투기 시장에 다수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은행의 전체 대출금 가운데 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에는 72.3%였는데 지난해에는 56.6%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비율은 27.7%에서 43.4%로 상승했다. 산업대출에서 부동산 및 임대업에 투입된 자금의 비율은 1998년 1.0%에 그쳤는데 2016년에는 18.5%를 기록하며 관련 통계 작성 후 최고치가 됐다.
중소기업이 자금난을 겪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었고 일반인들도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비생산의 악순환이 반복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매출액 등 실적 위주로 대출 심사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석자금 수요조사’에서 금융기관이 매출액 등 재무제표 위주로 심사해서 애로를 느낀다는 응답은 37.5%로 지난해 보다 4.3%포인트 늘었고, 신규 대출 기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답변 역시 28.6%로 4.8%포인트 증가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정부의 예금자 보호 등으로 은행이 정책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만큼 산업 자금을 조달하는 공적 역할을 더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진균 중기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은행이 10~20년 거래한 기업에도 담보·보증을 가져오라고 한다”며 “20년 정도 거래했다면 전당포식으로 담보만 받고 거래할 것이 아니라 사업성을 평가해서 대출해야 하는데 그런 기능이 잘 안되니 금융산업이 낙후됐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보증이나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의 사업성 등 재무제표로는 파악되지 않는 요소를 평가하도록 시스템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큰 기업에만 정책금융 집중 우려
국내 중소기업의 외연이 해외 주요국가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넓어 영세한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금융 목표로 지원책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중소기업 정의 국제비교와 정책금융 적격요건 정비 필요성’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분류시 매출액만을 기준으로 해 중소기업의 외연이 해외보다 상당히 넓고, 매출액 기준도 지나치게 높아 민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에 정책금융이 집중될 위험이 있다”며 “정책금융기관들은 프로그램별로 기업의 업력, 매출액, 자본금 등 세부 적격요건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 법 개정으로 중소기업 규모를 매출액 단일기준으로 해 연매출액이 1000억~1500억원 이하(총자산 5000억원 이하)면 중소기업 규모 기준이 충족된다.
반면 해외에서는 중소기업을 분류할 때 다양한 기준을 적용한다. EU, 호주, 터키, 불가리아 등은 중소기업 분류 시 근로자수 200~250명 미만이라는 필요조건을 설정하고 있다. 더불어 EU, 영국, 호주 등에서는 연매출이 13억원 이상, 68억원 이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본은 업종에 따라 근로자수가 50~300명 이하거나 자본금 5~31억원 이하의 기업에 한정해 중소기업 지위를 부여한다.
제조업 매출액 기준만 가지고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상한이 800억~1500억원이지만 EU는 68억원, 영국은 37억원 등으로 설정돼 있다. 임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은 짧은 업력과 신용 이력, 담보 부족, 높은 부실위험 등으로 인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지원제도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좀비기업 양산도 문제점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 대출 10건 중 7건 정도가 일시상환대출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출 규모로 따지면 전체의 82.7%가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갚는 일시상환대출인 것이다.
기업대출로 분류되는 자영업자의 개인사업자대출은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자영업자 일시상환대출 비중이 높은 것은 경기흐름에 따라 소득 변동폭이 큰 자영업자들이 대출금 원리금 분할상환을 꺼리기 때문이다. 대출 기간에 이자만 내다가 자산 가격이 올랐을 때 보유자산을 처분해 수익을 내려는 차주가 많다는 얘기다.
또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중소기업대출도 일시상환대출 비중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6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금액 492조7744억원 중 일시상환대출(391조5338억원)은 79.5% 수준이다. 대출 건수로도 전체 252만4199건 가운데 일시상환대출(172만7334건)이 68.4%를 차지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업대출의 경우 분할상환보다는 대출 연장 시점에 일부 상환하고 다시 대출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시상환 위주의 기업대출이 좀비기업을 양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패경험 창업자 84% “자금조달 열악”
창업 실패를 경험한 기업인들도 재기를 할 때 필요한 중소기업 금융지원 등의 여건이 열악하다.
최근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재창업자 94명과 예비 재창업자 57명 등 1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를 보면 재창업 환경 만족도에 대해 부정적 답변(그렇지 않다 32.5%, 매우 그렇지 않다 24.5%)이 57%에 달했다.
여기에 ‘보통’이라는 대답은 27.2%로 조사돼 전체적으로는 ‘보통 이하’라는 평가가 80%를 넘었다. 만족도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그렇다 10.6%, 매우 그렇다 5.3%)은 15.9%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또 재창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로 절반을 넘는 58.9%가 ‘자금조달 곤란’을 꼽았다. ‘신용불량으로 인한 금융거래 불가능’이라는 대답도 23.2%에 달해 금융 관련 어려움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재창업 지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재창업 지원제도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부재’를 꼽는 응답이 30.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의 지원제도 부족’이라는 응답이 24.5%였고, 19.9%는 ‘효과적인 재창업 지원 프로세스 미비’를 꼽았다.
국내에서는 창업 실패의 경험을 딛고 일어선 재창업 기업의 생존율이 월등히 높았지만 재창업 여건이 불리해 재도전하는 비율이 극히 낮은 수준이다.
재창업기업의 생존율(1~5년)은 전체 창업기업의 약 2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폐업기업의 대표이사가 스스로 재창업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고, 창업기업에 임원 등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4.2%에 그쳤다.
정부는 실패기업인의 재기를 지원해 창업의욕을 고취하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과거 기업경영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기업인에게 투자하는 ‘삼세번 재기지원펀드’를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로 3125억원 규모로 조성되는 ‘삼세번 재기지원펀드’는 내년부터 본격 운영되며 재도전을 막는 각종 걸림돌을 없애고 세제 지원도 해주기로 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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