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의 인문경영학]CEO의 덕목, 설득하고 소통하라<논어> ‘헌문편’을 보면 공자에 대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是知其不可而爲之者)이라고 평했던 글이 실려 있다.
제자 자로가 노나라의 한 성문에 쉬고 있을 때 문지기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혼란한 세상에 오직 ‘사랑의 정신(仁)’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비웃음이다. 공자는 스스로도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이 옳기 때문에 한다는 신념으로 천하의 군주들을 만나고 다녔다.
맹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맹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의 형편은 훨씬 더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7대 강국으로 재편된 전국시대의 강대국들은 약한 나라를 삼키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약소국들은 힘을 키워 복수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맹자>의 맨 앞머리에 나오는 양혜왕의 경우가 그렇다. 양나라는 원래 위나라였는데 잦은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지자 수도를 대량(大梁)으로 옮겨 양나라로 국호를 바꿨다. 양혜왕은 위나라의 가장 뛰어난 군주였던 위문후와 위무후의 대를 이어 왕이 됐던 인물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위나라를 이어받았지만, 자신의 대에서 나라를 크게 위축시켰던 자괴감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맹자와의 대화를 살펴보면 그의 심경을 잘 알 수 있다.
“과인의 대에 이르자 동쪽에는 제나라에 패해 맏아들을 잃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 땅 칠백리를 빼앗겼습니다. 남쪽으로는 초나라에 욕을 당했습니다. 과인이 부끄럽기 짝이 없어 죽은 이를 위해 이 치욕을 씻고자 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양혜왕은 국력을 다시 회복하고 국토를 짓밟은 다른 나라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순우곤, 추연 등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 모았고 맹자도 이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런 군주에게 ‘인의(仁義)’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자는 맹자의 주장은 먹혀들기가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혜왕은 맹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됐고, 오랜 시간 맹자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됐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맹자가 가지고 있던 논변(論辨)의 능력이다.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합리적이고 확고한 이론과 그것을 설득력 있게 말하는 말의 능력을 맹자는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오십보 도망 친 병사가 백보 도망간 병사를 비웃는다’는 뜻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고사는 ‘백성을 다스리는데 남보다 조금 낫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군주의 즐거움은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는 ‘여민해락’(與民偕樂),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다는 뜻의 ‘인자무적’(仁者無敵), 전쟁을 좋아해서 군사와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로부터 원한을 사고 있으면서도 천하의 강대국이 되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의 성어도 있다.
이런 성어들은 맹자가 양혜왕을 비롯한 왕들과의 대화에서 인의(仁義)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비유들이다. 이런 비유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면서 맹자는 비록 ‘되지도 않을 일’들이지만 군주들을 담대히 설득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어떤 일에서든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논변의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 사람과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막무가내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지식과 사람들을 설득할 말의 능력을 리더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 조윤제 《천년의 내공》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