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 미얀마 양곤까지 날아간 2시간 10분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은 되돌아간 듯한 시간이었다.
공항근처 하늘에서 내려다 본 양곤 외곽은 끝없이 펼쳐지는 논이었다. 마을이나 주택지 근처에나 숲이 있었다.
나일강 하류 델타 지역처럼 이곳도 강물을 타고 북부 밀림지대 상류에서 영양가 높은 토사가 계속 내려와 비옥한 농토를 이룬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양곤 국제 공항은 몽골의 울란바토르 공항이나 케냐의 나이로비 공항, 라트비아의 리갈 공항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보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는 기자로서는 자못 비장한 느낌이었다.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외국 기자의 입국을 극히 꺼린다는 것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싱겁기 짝이 없었다. 관광객이 절대 다수였던 입국자들에게 입국심사관은 도장 찍어주기 바빴고, 별도의 ‘관광객 입국 심사대’에 선 기자에게 여자 심사관은 뭔가 물어보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영어가 안 되는 듯 그냥 도장을 찍어줬다.
세관 심사대에서는 미리 준비해간 장비 목록을 제출하자 장비를 확인조차 하지않고 아주 고맙다는 듯이 도장을 꾹꾹 눌러 줬고 여권에 스티커를 한 장 붙여주면서 “입국 후에 누군가가 비디오 카메라에 대해 묻거든, 이 스티커를 보여주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다.

서방언론보도와는 다른 현지 사정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가 미얀마의 군사정권에게 민주화를 요구하며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서방 언론의 보도나 소문이 실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공항에서 고물 일본제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미얀마의 모습은 우리의 60년대 중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고물차들은 주로 일본제로 20년 이상은 굴러다닌 듯 했다. 승용차 택시와 함께 자전거 옆에 좌석을 만들어 손님을 태우는 택시도 눈에 많이 띄었다.
미얀마는 현재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의 경제제재(미얀마산 품목 수입금지)가 결정되자, 일부 외국자본들이 철수하게 됐고 그 여파로 상당수 은행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군사정부는 “풍족한 쌀이 있는 한 미얀마는 건재(?)할 수 있다”면서 ‘우리식으로 잘 살기’를 밀어부치고 있다.
다소 질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내륙에서 석유가 나는 만큼, 이 ‘버티기 작전’은 상당기간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휘발유 가격은 1리터에 우리 돈 200원 정도로 대단히 싸다. 물론 미얀마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 것 조차도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미얀마 정부는 숫자조차도 미얀마 고유의 숫자를 고집할 정도로 국수주의적이다. 교통 표지판에서는 거의 영문자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에게도 외화는 필요한 것이어서 최근 관광산업 부흥에 힘쓰고 있다. 양곤 시내 불교사원 등 관광지에 대한 보수 작업은 상대적으로 활발했다. 다만 양곤 시내외의 도로 포장은 대단히 낡아 있었다.

경제제재로 큰 타격…정부부터 변해야
미국의 경제제재는 어쩌면 허울뿐인 ‘길들이기’용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P 콜라가 철수를 했는데, ‘스타 콜라’라고 팔리는 새 콜라의 맛은 겉포장만 바뀐 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방에 대해 ‘신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가 미얀마 문제에 대해 “아세안의 틀 안에서 아시아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라고 언급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과 영국 등이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은 동남아에 대한 그들의 경제적, 국제정치적 전략일 뿐일 수도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인물인 아웅산 수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으며 수권능력을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군사정부에 대한 반감 역시 적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든 이권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국민들과 나눠 갖지 않는 데 대한 경제적인 불만이었다.
한반도 3배 이상의 국토에 5천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미얀마. 한국전쟁 때 쌀을 원조해 줬고 지금도 쌀이 남아도는 나라. 냉전시대 때 우 탄트 UN 사무총장 등을 배출하며 인도, 인도네시아와 더불어 제3세계 중심국가 중의 하나였던 나라.
이런 사실들조차 알고 있는 국민이 별로 없을 정도로 ‘과거로 되돌아가 멈춰버린’ 오늘의 미얀마지만 국토와 인구, 그리고 ‘결코 게으르지 않는’ 국민성 등은 미래의 용트림을 위한 훌륭한 자산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되돌아오겠다는 미얀마 정부의 결심이 절실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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